- 타인 간 통신비밀 관련 보도 시 주의할 점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정책연구팀장, 변호사

지난 3월 17일 대법원은 속칭 ‘안기부 X파일’ 사건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내렸다. 결론은 유죄. 2심에서 이미 형을 선고받은 기자들(이상호 MBC 기자와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국장)의 상고를 대법원에서마저 기각함으로써 원심에서 선고한 형이 확정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권력에 대한 감시기능을 담당해야 할 언론의 부당한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법부의 권한은 실정법을 해석하여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하는 것이지만, 법원의 판결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특히, 향후 모든 법원의 언론보도 관련 재판에 일정한 준거가 될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기자들이 느끼고 있을 심적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사안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렇게까지 위축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이 제대로 기능할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 대화의 내용을 보도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대법원 2011년 3월 17일 선고 2006도8839 판결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MBC는 실명에 직접 인용 보도,
월간조선은 전문 게재

사건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12월에는 제15대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대선을 앞두고 분주한 곳은 정치권만이 아니었다. 같은 해 4월과 9월, 그리고 10월 당시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장과 중앙일보 사장은 서울시내 한 호텔 식당에서 만나 여야 대선후보에 대한 삼성그룹 측의 정치자금 지원 문제, 정치인과 검찰 고위 관계자에 대한 이른바 추석 떡값 지원 문제를 논의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2005년, 어찌된 일인지 이 은밀한 대화가 세상에 공개된다. 충격적이게도 1997년 당시의 대화가 국가정보기관에 의해 도청(盜聽)되었던 것이다.

도청자료, 즉 녹음테이프와 녹취보고서는 그야말로 도청이라는 독나무에 달린 열매였다. 그러나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권력과 자본의 유착을 증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이 독이 든 열매를 입수하게 된 MBC로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2005년 초 도청자료를 확보하고 그 진정성까지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안기부의 불법도청 ‘X 파일’ 보도와 관련 검찰에 소환된 이상호 MBC 기자의 기자회견 장면.


그 사이 언론계에는 MBC가 ‘안기부 X파일’을 입수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같은 해 6월에 이르러서는 한 인터넷신문에서 MBC가 침묵을 깨고 도청자료를 공개하도록 촉구했다. 7월이 되자 몇몇 중앙일간지들도 도청자료의 존재와 그 내용에 관하여 비실명 요약보도 형식으로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마침내, MBC는 도청자료를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방송이 나가기 직전, 돌연 문제의 대화 당사자들이 MBC를 상대로 방송금지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녹음테이프 원음을 직접 방송하거나 대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당사자들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지 말 것’을 내용으로 하는 가처분결정을 내렸다.

가처분결정이 내려진 당일인 2005년 7월 21일, 마침내 MBC는 ‘9시 뉴스데스크’에서 ‘안기부 X파일’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이 날 보도에서 MBC가 주로 다룬 사항은 ‘모 중앙일간지 사주와 대기업 고위관계자 간의 대화가 담긴 녹음테이프를 MBC에서 입수했다는 것, 위 녹음테이프에는 해당 대기업이 1997년 대선 당시 여야 후보 진영에 로비를 하고 고액의 추석떡값을 보낼 정치인 및 검찰 고위 관계자들의 리스트를 검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 법원에서 내린 가처분결정에 따라 당사자의 실명과 육성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MBC의 보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인 7월 22일부터 MBC는 후속보도로 도청자료를 입수하게 된 경위를 비롯하여 녹음테이프에 수록된 내용을 대선자금 제공, 여야 로비, 검찰 고위인사 관리 등으로 세분하여 상세히 보도하면서 대화 당사자의 실명은 물론 로비 내지는 관리대상으로 언급된 관련 인사들의 이름까지 공개했다.

녹음테이프의 원음을 방송에 내보내지는 않았지만 가처분결정에서 금지시킨 대화 내용의 직접 인용까지도 감행했다.

한편, 이상호 MBC 기자와 공동으로 기소된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국장은 편집부 소속 직원을 통해 도청자료를 입수한 다음 MBC 보도가 나간 이후인 같은 해 8월 ‘월간조선’에 녹취록 및 녹취보고서 전문(全文)을 게재했다.


명예훼손이 아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

 ‘안기부 X파일’ 보도에 관한 검찰수사의 초점은 이상호 기자와 김연광 편집국장 두 사람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모아졌다. 언론보도라는 것이 여러 사람의 협력에 의해 공동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된 언론사당 한 사람만을 기소했다는 점은 특이하다.

특히, MBC의 경우 ‘안기부 X파일’ 관련 특별취재팀까지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 데스크도 아닌 이상호 기자만 기소되었던 것이다. 이상호 기자가 MBC의 도청자료 입수에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다.

이번 사건에 검찰이 명예훼손죄를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생각해볼 만하다. 만일 ‘통신의 비밀 대 공공의 관심사’ 구도가 아닌 ‘명예 대 공공의 관심사’ 구도로 갔다면 그 결론이 어찌 되었을까. 유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아무튼, 검찰의 기소로 기자 두 명에 대한 형사재판이 2006년 3월 7일 개시되었다. 1심 법원은 같은 해 8월 11일 이상호 기자에게는 무죄를, 김연광 편집국장에게는 유죄를 선고했다(2006고합177). 1심 판결에서 피고인에 따라 유・무죄가 갈린 이유는 MBC와 월간조선의 보도 양태가 달랐기 때문이다. 도청자료 전문을 그대로 게재한 월간조선에 대해 1심 법원마저도 통신비밀보호법위반으로 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1심에서의 판단이 번복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같은 달 23일 개시된 2심 재판은 정확히 3개월 후인 같은 해 11월 23일 종료되었고, 재판부는 피고인 모두에게 유죄를 인정, 각 징역 6월에 자격정지 1년의 형 선고를 유예했다(2006노1725). 형의 선고유예는 무죄가 아닌 이상 가장 가벼운 처벌이기는 하지만 엄연한 유죄판결의 한 종류다.

그 해 12월 7일, 피고인들의 상고로 대법원에서의 3심 재판이 개시되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1, 2심 재판과는 달리 대법원에서는 4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2011년 3월 17일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함으로 2심에서 내린 유죄판결을 확정했다.


실명과 대화의 상세한 공개는 위법

가. 굴지의 재벌그룹 경영진과 유력 중앙일간지 사장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문제나 정치인과 검찰 고위 관계자에게 이른바 추석 떡값을 지원하는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는 것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논의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공적인 관심사항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 이 사건 보도가 행하여진 시점에서 보면 위 대화는 이미 약 8년 전의 일로서 그 내용이 보도 당시의 정치질서 전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고, 제15대 대통령선거 당시 기업들의 정치자금 제공에 관하여는 이 사건 보도 이전에 이미 수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위 대화 내용의 진실 여부의 확인 등을 위한 심층, 기획 취재를 통해 밝혀진 사실 및 그 불법 녹음 사실을 보도하여 각 행위의 불법성에 대한 여론을 환기함으로써 장차 그와 유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 확인 작업도 없이 곧바로 불법 녹음된 대화 내용 자체를 실명과 함께 그대로 공개하여야 할 만큼 위 대화 내용이 ‘공익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로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 위 피고인이나 문화방송은 … 그 대화의 주요 내용을 비실명 요약보도하는 것만으로도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불법 녹음 사실 및 재계와 언론, 정치권 등의 유착관계를 고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 당사자 등의 실명과 대화의 상세한 내용까지 그대로 공개함으로써 그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을 일탈하였다. 더욱이 이 사건 보도가 나가기 전에 법원이 이 사건 도청자료의 전면적인 방송 금지가 아닌 녹음테이프 원음의 직접 방송, 녹음테이프에 나타난 대화 내용의 인용 및 실명의 거론을 금지하는 내용의 가처분결정을 하였는바, … 피고인이나 문화방송이 이를 따르지 아니하고 대화 당사자들의 실명과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그대로 공개한 행위는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을 결여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 이 사건 보도가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불법 녹음행위를 폭로하고 아울러 재계와 언론, 정치권 등의 유착관계를 고발하여 … 공익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이와 같은 공익적 효과는 비실명 요약보도의 형태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대화의 내용이 이를 공개하지 아니하면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도 어려운 이상, 이 사건 대화 당사자들에 대하여 그 실명과 구체적인 대화 내용의 공개로 인한 불이익의 감수를 요구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 위에서 다룬 대법원 판결을 비롯해 ‘안기부 X파일’ 보도 관련 법원 판결에 대한 언론의 입장은 비판적이었다.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다음날인 3월 18일자 조선일보 14면 관련 기사의 제목은 “대선 후보들에 불법자금 제공 논의가 공적 관심의 대상에 해당 안된다?”였다. 3월 23일자 미디어오늘 관련 기사의 제목 역시 “대법, 정권-재벌-언론 ‘부당거래’ 면죄부”였다.
사실 이번 사안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찬반론이 모두 존재할 수 있다. 이미 대법관 중에서도 5명이 무죄취지의 의견을 제시했으며, 1심 법원 역시 이상호 기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문제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언론의 관점이 다소 거칠다는 데에 있다.

3월 18일자 조선일보 기사가 제기한 의문이기도 하지만, 국내 굴지의 기업이 대선 후보를 비롯한 권력자들에게 검은 돈을 건네고자 논의를 했다는 사실은 당연히 공적 관심의 대상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대법원 역시 이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법원이 주된 문제로 삼은 것은 MBC의 ‘보도방식’이다. 판결문에는 ‘비실명 요약보도’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대법원은 왜 MBC가 ‘비실명 요약보도’에 그치지 않았는지를 거듭 묻고 있다.

‘안기부 X파일’ 사건을 다룬 언론사는 MBC만이 아니다. 몇몇 중앙일간지의 경우 MBC 보도에 앞서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이들과 MBC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당사자들의 실명을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불법도청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녹음테이프의 대화 내용을 직접 인용했다는 것이고, 전자는 비실명 요약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핵심은 사안 자체가 공적 관심의 대상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아니라 사안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 지였다고 할 수 있다.


대화 내용의 직접 인용 필요성 검토해야

이번 사건의 1심 재판을 맡은 재판부는 이상호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는 이유로 판결 선고 당시 언론의 자유를 신장시킨 명판결로 칭송이 자자했다. 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김연광 편집국장에게는 유죄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피고인 김연광의 행위 역시 공적인 관심사에 대하여 중대한 공익상 필요에 의하여 부득이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피고인 김연광이 주도하여 이루어진 월간조선의 보도는 앞서 본 문화방송의 보도와는 달리 녹취록 및 녹취보고서의 전문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도하였고, 그 내용 중에도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와 관계가 없는 내용 또한 그대로 포함되어 있다. … 월간조선의 전문게재는 이러한 점에서 그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될지라도 수단, 방법에 있어서 상당성 내지 비례성을 갖지 못하므로 위법성의 조각이 인정될 여지가 없다”고 했다.

기자는 스스로의 감에 의지하여 자신이 보도하고자 하는 사안이 공공의 관심사에 해당하는지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런데 실제 기사문을 작성하는 과정에 이르러서는 사안 자체에 대한 거시적인 판단에 더하여 미시적으로 해당 사안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지 또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굳이 관련자들의 실명까지 적시할 필요가 있겠는지, 대화 내용을 직접 인용할 수 있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저 그런 보도로 묻히지 않기 위해, 남다른 보도로 각인시키고자 보다 구체적인 묘사를 하고 싶을 때 ‘비실명 요약보도’를 언급했던 ‘안기부 X파일’ 관련 대법원 판결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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