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서울신문 어문팀 차장, 한국어문기자협회장

친구에게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때 대부분 “그러지 않아도(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고 했는데…”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러지 않아도”라고 말한 사람은 ‘네가 전화하지 않아도’, “그렇지 않아도”라고 한 사람은 ‘네가 전화하지 않고 있었어도’라는 의미를 전한 게 된다.

좀 더 풀어 이야기하면 “그러지 않아도”는 ‘전화하지 않아도’라는 ‘행위’를 대신한 표현이다. “그렇지 않아도”는 ‘전화하지 않고 있었어도’ 혹은 ‘전화하지 않은 상태였어도’라는 ‘상태’를 대신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심리 상태를 ‘그렇다’로 받아서 ‘그러한 상태가 아니더라도’ 정도의 뜻을 지닌다. 상대방이 생각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다’와 ‘그렇다’의 차이가 이렇게 뜻을 가른다. ‘그러다’는 ‘그리하다’의 준말이고, 품사는 동사다. 동사는 알다시피 ‘움직임’을 나타낸다. ‘그러다’는 ‘그렇게 행동하거나 말하거나 생각하다’ 등을 대신 나타내는 말인 것이다. “밥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이를 닦았다.” 여기서 ‘그러고’는 ‘밥을 먹었다’를 대신했다.

‘그렇다’는 ‘상태, 모양, 성질 등이 그와 같다’는 말이다. 품사가 형용사이니 ‘움직임’이 아니라 ‘상태’ 등을 대신하는 말로 쓰인다. “꽃이 참 예쁘죠?”라고 물었을 때 “그러죠”라고 답하지 않는다. “그렇죠”라고 대답한다. ‘예쁘다’는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일만 더 쌓인다”에서도 ‘그렇지’는 ‘상태’를 표시한다.

다음 예문에서도 ‘그러다’와 ‘그렇다’의 쓰임새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웃어라. 그러지 않으면 슬프다.”, “지도력을 발휘하여 리드 일당의 반대를 꺾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미국 핵발전소의 연료 저장시설에서 후쿠시마와 비슷한…”(그러다), “조금 유사한 느낌이 있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백옥 피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그렇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될 것임을 뜻한다. 속전속결식 후계 구도 확립 그 자체가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을 뒷받침하는 징표이기도 하다. 그러지 않아도 누적된 경제난에다…”에서는 ‘그렇지 않아도’가 오는 게 자연스럽다. 앞의 상태를 대신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음 예문은 좀 따져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1월 평균 거래 가격은 이미 배럴당 90달러 선을 넘어섰다. 그렇지 않아도 고공행진 중인 기름값이…” 여기서 ‘넘어서다’는 동사이고 ‘움직임’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이 ‘그렇지 않아도’는 ‘그러지 않아도’가 돼야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앞의 상황이 이미 일어난 과거형이다. ‘과거’는 형용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움직임’이 아니라 ‘상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렇지 않아도’가 잘못된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움직임’인지 ‘상태’인지 잘 살핀 뒤 ‘그러지 않아도’, ‘그렇지 않아도’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는 ‘그러잖아도’, ‘그렇지 않아도’는 ‘그렇잖아도’로 줄여 쓰기도 한다. ‘그렇찮아도’는 틀린 표기다. ‘그러다’는 ‘그러고, 그래, 그러니’ 등으로, ‘그렇다’는 ‘그렇고, 그래, 그러니’ 등으로 활용된다. ‘그래, 그러니’ 등 같은 활용 형태도 보인다. 그래서 좀 헷갈리는지 모르겠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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