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는 ‘3•15’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수년 전부터 외자기업 리스트를 뽑아 정보수집 및 장기 심층취재 등을 통해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CTV는 이번 금호타이어 보도와 관련해 2010년 6월과 7월,
2011년 1월까지 세 차례 넘게 현장에 잠입해 취재를 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주춘렬 세계일보 베이징 특파원

해마다 3월 15일이 되면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들은 바짝 긴장한다. 국영 중국중앙방송(CCTV)이 이날을 맞아 ‘3•15 완후이’(晩會)라는 소비자 고발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때문이다. 3월 15일은 중국에서 ‘국제소비자권익일’로 지정된 날이다. CCTV는 이날을 기념해 주로 외자기업의 품질불량 문제를 심층 취재해 고발해 왔다. 이 프로그램에서 한번 도마에 오른 기업은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3•15 완후이’는 그야말로 중국 외자기업에 공포의 대상이다. 올해는 중국 대륙에서 타이어 시장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해 오던 한국의 금호타이어가 걸려들었다.

CCTV의 보도는 금호타이어 톈진(天津) 공장이 타이어 제조 과정에서 재생고무(제조 공정에서 나온 자투리 고무)를 규정 이상으로 사용했다는 게 핵심이다. 원래 작업 규정에는 재생고무와 새 고무의 배합비율이 2 대 1로 정해져 있는데 생산 라인에서 3 대 1의 비율이 적용돼 품질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언론 대 한국 기업

CCTV는 현지 직원의 말을 인용해 생산원가를 줄이기 위해 재생고무를 쓰고 있다며 고무 배합비율을 위반한 타이어를 사용할 경우 주행 과정에서 펑크가 나거나 바람이 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타이어는 차량 성능에 직결되며 소비자의 인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부품”이라면서 “금호타이어는 소비자 안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 날 금호타이어 측은 반박 성명을 발표하며 즉각 대응에 나섰다. 금호타이어 측은 성명에서 “재생고무를 사용하는 것은 타이어 산업에서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공정으로 규정된 표준검사를 거쳐 합격한 고무가 생산되고 있다”며 “안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정면 반박했다. 나아가 성명은 배합비율 위반에 대해 CCTV의 보도에 나온 것처럼 수량이 아니라 무게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이라며 국가 관련 검사기관의 검사 및 사실관계 확인을 거쳐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호타이어는 불과 사흘 만에 꼬리를 내렸다. 회사 측은 사내 작업 표준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으며 자발적 리콜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금호타이어 측은 또한 톈진 공장의 관리감독 책임을 물어 총경리 등 간부 직원 3명을 해고했다. 이한섭 금호타이어 중국법인사장은 3월 21일 CCTV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소비주장’에 출연해 머리 숙여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소비자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계신 CCTV가 저희에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가 바짝 몸을 낮추며 ‘백기’를 든 셈이다.


가공할 중국 언론의 위력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금호타이어의 말 바꾸기는 큰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금호타이어의 자발적 리콜과 공식 사과에도 중국 언론의 맹렬한 비난은 끊이지 않고 있고 톈진 공장도 한 달 이상 가동이 중단되고 있다.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차이나데일리 등 유력 관영 매체와 바이두(百度), 시나(新浪), 텅쉰(騰訊) 등 주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CCTV 보도를 인용하면서 금호타이어의 저질 타이어 문제를 집요하게 추궁했다. 네티즌과 자동차 소비자들 사이에서 ‘저질 타이어를 즉각 리콜하라’는 비난이 폭주했고 금호타이어 중국 업무는 거의 마비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4월 초 금호타이어는 2008년 3월~2011년 3월 톈진 공장에서 생산된 타이어 가운데 30만 2,673개를 리콜하겠다며 파문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신경보 등 중국 언론들은 사설까지 동원해 ‘리콜 기준이 너무 애매모호하고 자의적이며 리콜 규모도 턱없이 적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금호타이어 측에서 중국의 매체 현실과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섣불리 ‘한국식’으로 대응했다가 매를 더 벌었다는 분석이 많다. 베이징 자동차 업계의 한 인사는 “금호타이어 측의 경영진이 바뀌는 과정에서 사태의 심각성이나 중국 언론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며 “특히 프로그램 방영 후 확인절차 없이 반박 성명을 제기한 것은 중국의 권위에 도전한 것으로 여겨져 파장이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중국 매체는 자본주의 사회처럼 경쟁관계가 아니라 엄격한 ‘위계’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베이징의 한 언론인은 “중국 매체의 핵심 콘텐츠는 대체로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CCTV가 정부의 통제와 풍부한 취재 자원을 통해 만들어 낸다”며 “그 외에 수만, 수십만 개의 신문과 잡지 및 인터넷은 이 콘텐츠를 그대로 옮기거나 때로는 윤색, 채색해서 시차를 두고 재생산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뉴스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도마에 오른 기업 비리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해당 기업에 치명적 타격을 가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CCTV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소비주장’.

중국 언론 위계질서와 표적 보도 논란

또한 관영매체는 곧바로 정부와 공산당의 공식•비공식 지지와 감독을 받으며 선전•선동의 역할에 충실한 게 현실이라 할 수 있다. CCTV의 이번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도 최고인민법원, 최고인민검찰원, 전인대 상무위원회 법제공작위원회, 공업정보화부, 공안부, 사법부, 농업부, 상무부, 위생부,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 국가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 국가지식재산권국,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 중국소비자협회 등 중국의 14개 주요 국가기관이 공동기획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CCTV는 ‘3•15’ 프로그램 제작 때 이미 수년 전부터 외자기업 리스트를 뽑아 정보수집 및 장기 심층취재 등을 통해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CTV는 이번 금호타이어 보도와 관련해 2010년 6월과 7월, 2011년 1월까지 세 차례 넘게 현장에 잠입해 취재를 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 마당에 해당 기업이 섣불리 맞섰다가는 여론의 뭇매와 정부의 압력 등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실제 1년 전에는 휴렛팩커드(HP)가 CCTV의 표적이 됐다. 당시 CCTV의 보도는 HP 특정 노트북의 액정 화면이 검게 변해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었다. HP는 리콜 조치 등에 나서며 파문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기업은 지난해 중국 시장 점유율이 9% 포인트 이상 내려가면서 순위가 작년 초 2위에서 4분기 4위로 추락했다. 대신 토종 컴퓨터 업체이자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인 롄샹(聯想•레노보)이 그 사이 반사이익을 누리며 더욱 약진했다.


소비자 고발의 복합 메시지

최근 빈발하고 있는 외자기업을 겨냥한 중국 매체의 소비자 고발에는 중국 당국의 복합적인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CCTV는 최근 자라와 허시퍼피 등 해외 유명 브랜드에 대해 품질조사를 벌여 40%가량이 품질 기준에 미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당국도 올 초 프랑스계 대형 유통업체인 카르푸와 미국계 유통업체인 월마트에 대해 가격사기 혐의로 중징계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아울러 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외자기업의 세금혜택을 완전히 폐지한 데 이어 중국 베이징 시가 처음으로 외자기업의 최저임금을 국내 기업보다 1.5배 이상 높게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중국의 경제정책이 외자기업의 혜택 폐지에 그치지 않고 역차별에 나서는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베이징 경제계의 한 고위 인사는 사석에서 “중국이 과거처럼 더 이상 저자세로 조건 없는 외자 유치에 매달리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이제는 외자도 질을 따져 옥석을 가리고 있어 차츰 외자기업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어 “금호타이어 건은 한국 기업에도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라며 “당국과 언론에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 이외에 별 도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언론이나 방송 프로그램에 고스란히 공산당과 정부의 정책 의지가 투영돼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일부 중국 언론은 소비자 고발 기사를 앞세워 기업과 돈거래에 나서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 들어서도 한 중국의 매체는 다국적 기업인 A에 자사와 관련된 보도에 대해 1억 2,000만 위안(약 200억 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상당수의 외자기업들은 사안마다 금액이 다르긴 하지만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매체가 당과 정부의 선전선동 수단뿐 아니라 때로는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물론 매체와 기업 간 돈거래가 당국의 묵인 혹은 방조하에 이뤄지고 있는지 진위를 확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중국 매체는 당의 정치논리와 경제정책 노선에 충실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생존 혹은 수익을 위해 은밀한 검은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 매체의 이중성은 경제의 고율성장 추세에 따라 더욱 심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패가 매체 영역에도 만만치 않을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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