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BS 3D 입체 다큐멘터리 ‘신들의 땅, 앙코르’

김유열 EBS 편성기획부 프로듀서



‘앙코르와트’란 소재를 정하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간단한 인터넷 검색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캄보디아를 가본 적도 없다. 그냥 ‘앙코르와트’였다. 우리(공동 연출자 김동준 피디)에게 캄보디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 두 장에 불과했다. 한 장의 스틸은 ‘거대하고 신비한 앙코르와트’고 또 하나는 할리우드 영화에 의해 이미지화된 ‘킬링필드’다. 이미 결론은 나 있는 상태였다. 논의와 논쟁도 없이 즉시 ‘앙코르와트’였다. 무연고의 나라 캄보디아. 베트남처럼 원죄적 기연이 있는 나라도 아닌 캄보디아에 원인 모를 원죄 의식 같은 것이 숨어 있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나라에 원죄 의식이 작동된 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식민지를 경험한 동류의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서구에 의해 과장된 이미지를 거부하고 싶은 충동이 작동한 것이다. 그것도 순식간에 무의식의 세계는 ‘앙코르와트’로 이끌었다. 대학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한 전력도 그 세계로 가게 했다.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사실 소재의 선택은 즉각적이고 즉자적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소재가 시청률 좌우… 3D로 승부수

소재에 대한 지나친 천착이 방송의 문제라고 비판해 왔다. 보통 소재에 살고 소재에 죽는다. 소위 소재주의가 그것이다. 요즘 방송은 더욱더 소재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다. 시청률 경쟁이 소재주의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작품의 성패를 소재 선택에 맡기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실 소재주의에 집착하지 않으면 쉽게 소재를 잡을 수 있다. 좀 과장하자면 중국에 관한 다큐멘터리 소재를 5개 정하라고 하면 10분 내에 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다큐멘터리 피디에게 좋은 소재보다 좋은 행운은 없을 것이다. 소재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한반도에서 사라진 걸로 돼 있는 호랑이를 촬영하면 그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 족하다. 길 가던 기자의 눈앞에서 희대의 대형 사건이 터진다면? 기사의 질은 사건의 질을 따라갈 수 없다. 특정 소재만 다루면 시청률이 나온다. 그러나 ‘앙코르와트’는 이런 시청률과 대박을 보장해 주는 소재는 아니다. 어쩌면 진부한 소재일 수 있다.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 로마 하면 콜로세움, 중국 하면 만리장성과 자금성, 바빌론 하면 바벨탑 등등. 모두 초등학생 정도의 식견으로도 생각해 낼 수 있는 평범하고 흔한 것이다. 초등 아이템인 셈이다. 그러니 판단도 순간이고 간단했던 것이다. 한반도의 공룡도 똑같았다. 소재 자체에는 고차적 판단이 요구되지 않았다.

‘EBS 3D 입체 다큐멘터리-앙코르와트’는 진부하고 평범한 소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진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진부함을 참신함으로 바꾸는 혁신. 우리는 바로 3D 입체라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3D 입체 프로그램의 송출과 수신이 불가능한 시점이지만 3D 자체는 분명 참신했다. 처음 시도하는 자가 누리는 특혜랄까. 그러나 그런 결정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송출되지 않을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세간의 야유를 감수해야 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자의 필연적 과정이라 애써 자위하지만 머리 아픈 일이다. 약소 방송사인 EBS는 과감한 도전과 실험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평소의 소신이다. 누가 아나? 혹시 초유의 대박이 터질지. 최초 시장 진입자는 대박이란 과실을 따먹을 자격과 기회가 있다.

3D로 결정할 수 있었던 데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이미 2009년 12월 16일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가 국내에 개봉되기 1년 전쯤인 2009년 1월 ‘한반도의 공룡2’를 45억 원의 제작비로 3D 입체로 제작한다는 결정을 하게 된다. 입체 개봉관이 고작 50개이던 시절이었다. ‘한반도의 공룡1’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았던 나와 연출을 맡았던 EBS의 한상호 피디, 그리고 CG를 담당했던 올리브 스튜디오의 민병천 대표는 2009년 1월 초 서울 한남동 모 식당에서 모험적 결정을 한다. 2008년 11월 EBS TV를 통해 방송한 ‘한반도의 공룡1’의 반응이 워낙 뜨거웠기 때문에 어린이 관객만 확보해도 흥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반도의 공룡1’의 성과에 힘입어 내부 의사결정 라인에서의 결정도 ‘한반도의 공룡1’보다 수월했다.


‘아바타’로 본격 3D 영화시대 열려

그 후 1년. 2009년 12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는 영화의 새로운 지형을 형성한다. 본격 3D 영화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 세계 영화사에서 흥행 1위, 관객 1위라는 신기록이 달성되면서 여기저기서 3D로 난리가 났다. 콘텐츠 제작자, 3D 연구가, 정부, 디바이스를 만드는 업계, 글로벌 TV 수상기 제작사 등 온통 3D를 외치고 다녔다. 3D 자가 붙으면 어려운 기술 세미나도 1,000여 명이 넘는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3D로 천지가 개벽할 기세였다. 마치 곧 전면적인 3D 세상이 임박할 것 같았다. ‘한반도의 공룡’이란 초유의 3D 영화를 1년 전부터 준비해 왔고 ‘아바타’가 정점을 찍은 상태에서 ‘앙코르와트’는 기획됐다. 편성기획부장으로서 2008년 봄 EBS 지상파 TV를 교육 다큐멘터리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면서 제작의 열망도 싹터 올랐다. 밤 9시부터 12시까지 교육 다큐멘터리로 전면 개편하면서 저녁 시간대 시청률이 급상승하고 사회적 찬사도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피디로서의 본능, 제작의 열망이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3D란 형식미는 이렇게 가미됐다.

‘3D’란 형식을 취해 놓고 보니 험난한 길은 이제
시작이었다. 막상 3D로 촬영한다는 전제하에 여러가지 기술 여건을 조사하니 앞길이 막막할 따름이었다. 100분을 제한된 시간 내에 모두 3D로 촬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국내에는 전무했다. 수입된 특정사의 시스템도 야외 촬영을 효과적으로 하기에는 불가능한 중장비였다. 60㎏이 넘는 장비로는 실질적인 야외 촬영이 불가능했다. 높이 65m에 각도 50도 이상의 가파른 앙코르와트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국산 장비는 이제 개발 단계라 크기와 무게가 엄청난 데다 정교함까지 문제가 됐다. 결국 장비란 복병을 만나 좌충우돌하게 된다. 결론은 수입을 통한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었다. 예산 확보부터 장비 선정까지 첩첩산중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싱겁게 문제가 해결됐다. EBS 특유의 발 빠른 의사결정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IT와 뉴미디어 전공인 곽덕훈 사장은 3D 투자에 전향적이었고 EBS의 간부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기술본부장, 정책기획센터장, 편성센터장, 평생교육본부장, 영상미술센터장 등 관련 부서장들은 단 한 번의 회의로 4억 원 상당의 수입을 결정했고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시스템의 정확도와 기동성을 기준으로 전 세계 장비를 모두 조사했다. 김동준 피디, 김용상 촬영감독과 직접 장비 조사에 나섰고 최종 장비가 결정났다. 일본의 P1 카메라와 3D 박스, 좌우연동 줌렌즈, 독일의 프리스타일 직교 리그로 압축한 것이다. 좌우 카메라가 거의 완벽에 가깝게 동기화가 이뤄졌고 거의 불가능했던 줌인까지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사실 이 시스템 구성의 장점은 정확도만은 아니었다. 가장 신경을 쓴 것은 기동력이었다. 독일의 프리스타일 직교 리그는 핸드 헬드 촬영까지 가능할만큼 가벼웠다. 야외 촬영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조사를 위해 김동준 피디와 김용상 촬영감독을 미국, 일본, 독일로 급파하기도 했다. 장비 수입 결정부터 구성까지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그래서 2010년 5월에 장비 셋업이 완료된다.

장비 구축은 물론 기획 초기부터 3D 전문 인력을 투입했다. 재야에 숨은 신예 스테레오 그래퍼 소현수 감독을 발굴, 2010년 4월부터 투입했다. 100분 분량의 3D 촬영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콘티단계부터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입체값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3D 형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한 ‘앙코르와트’는 전개 방식도 혁신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역사 다큐멘터리처럼 당시의 시대 상황을 사실처럼 재현하는 것이었다. 앙코르와트를 건축하는 데 37년의 세월에 매일 2 명 이상이 동원됐다. 건축물만도 축구장 10개 이상의 넓이를 가졌다. 60만 개 이상의 암석이 40㎞ 떨어진 먼 곳에서 뗏목과 코끼리로 이동됐다. 당시 전쟁에는 700척의 배와 수만 마리의 코끼리 부대가 동원됐으며 영토도 인도차이나 반도 대부분을 크메르 제국이 차지하고 있었다.

크메르족의 전통무용인 압사라 댄스 촬영 메이킹.

캄보디아에서 왕실 의상 등 수송

앙코르와트가 위치한 크메르 제국의 수도 ‘앙코르톰’에는 인구 100만 명이 살고 있었다. 런던 7만 명, 파리 10만 명과 비교해 세계 최대 도시였던 것이다. 대규모 몹신이 불가피했다. 2,000여 명이 등장하는 즉위식과 육지와 호수에서의 전쟁 장면, 수만 명이 동원된 앙코르와트 건축 장면을 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스펙터클 영화에서 사용하는 실사 촬영물과 컴퓨터 그래픽 합성 방식을 쓰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런 인프라를 갖춘 촬영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국영방송사 TVK와 공동제작을 했지만 촬영 인프라는 우리나라 60년대 수준도 안
됐다. 나라 전체 크레인 장비가 2대에 불과했다. 영화 인프라가 선진국 수준으로 갖춰진 태국에서 재현 장면을 촬영하는 것을 검토하던 끝에 좋은 영화 종합 촬영소를 찾아냈다. 태국 방콕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칸차나부리의 종합 촬영소 필름 미트르 스튜디오가 그것이었다. 동남아의 전통 영화를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곳이었다. 13세기 크메르 왕궁, 태국 왕궁, 버마 왕궁 세트와 전통 의상, 대도구, 소도구는 물론 전쟁 소품, 코끼리, 말 등 거의 대부분의 것을 갖춘 종합 촬영소였다. 처음 이곳을 발견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동안의 소망이 일거에
이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이 촬영소는 태국 중심의 역사를 촬영하기 위해 태국 왕실 감독이 지은 것이었다. 크메르 왕실과 관계된 세트장은 태국, 버마 왕실에 비해 협소하기 짝이 없었고 왕실 의상 소품은 거의 전무했다. 과연 캄보디아 정부가 이것을 용인할 것인가.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겨났다. 크메르 제국의 영광과 번영을 다루려는 다큐멘터리 목표가 수정되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의 공동 제작사인 캄보디아 국영방송사 관계자를 태국으로 초청, 실사를 하고 설득시키기로 했다.

캄보디아 내 거의 모든 코디네이션을 맡았던 TVK
의 팔 낫 부국장을 이곳으로 초청, 간곡히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가부를 결정하지 않은 채 캄보디아에도 크메르 제국 왕실의 의상, 소품이 있다고 답하고 돌아갔다. 김동준 피디는 이것들을 조사하기 위해 다시 프놈펜행 비행기에 몸을 맡겨야 했다. 결국 촬영이 시작되면서 김 피디는 캄보디아 문화부가 소장한 소도구, 대도구, 의상을 컨테이너로 수송하게 된다. 크메르 전통 행사 재현에 사용되는 것들이었다. 수집하고 수선해 프놈펜에서 태국 칸차나부리까지 1,000㎞의 수송 작전이 펼쳐진다. 수출입 통과 절차가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수송 작전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벽에 부딪치고 만다. 한 컨테이너에 달했던 물품이 국경 세관에서 발이 묶이고 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물품 중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중 한 왕인 자야바르만 7세의 동상 소품이 문화재 반출로 오해를 받아 오해가 풀릴 때까지 세관이 억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품과 함께 캄보디아 출연자가 버스로 국경을 넘었다. 캄보디아 정부는 왕, 왕비, 장수, 주요 신하 등 주요 배우는 캄보디아 배우를 출연시켜야 촬영을 허가하겠다는 것이었다. 사극과 드라마가 거의 없는 나라에서 전문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배우를 캐스팅해야 하는 것이다. 태국과의 불행한 역사 관계를 갖고 있는 캄보디아로서는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자국 배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디션을 하기로 했다. 프놈펜에서 김 피디는 캄보디아 문화부 차관이 주관하는 오디션을 치렀고 캄보디아 배우 10여 명을 캐스팅했다. 캄보디아 유명 배우가 모두 캐스팅된 것이다. 그중에는 국민 여배우로 추앙받는 촌 찬나케나도 끼어 있었다. 이들은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영광된 자국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인 만큼 애국심으로 연기하는 것 같았다.

새벽 4시 기상, 5시 스탠바이, 해가 뜨는 6시면 슈팅.
촬영은 가혹하리만큼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됐다. 촬영소와의 계약 기간 13일 만에 모든 촬영을 끝내야 하는 것은 연출진에게 가장 큰 압박이었다. 제작비 잔고 부족 상태에서의 촬영 연장은 끔찍한 일이었다. 모든 스케줄이 꼬이고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돼 있는 구조였다. 가공할 만한 제작 스케줄 때문에 연출진은 물론 촬영감독을 비롯한 스태프, 출연자 등 100여 명이 생고생을 했다. 4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전 스태프가 새벽 4시부터 밤까지 묵묵히 강행군을 했다. 매
일 내리는 스콜까지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촬영을 했나 싶다. 이런 폭염 속에서 강행군하는 한국 스태프들을 보며 태국과 캄보디아 스태프가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더위에 익숙한 자신들도 쩔쩔 매는 악조건에서 쉼 없이 지치지 않고 전진하는 우리를 괴물로 보았던 것 같다. 3D 카메라로 하루에 30~40컷을 촬영하면서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 이것이 가능하구나. 출국하기 전에 3D 촬영 전문가들은 하루에 5컷도 힘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때 그러면 우리는 망한다고 답하곤 했다. 하루에 5컷을 촬영해서는 100분짜리 다큐멘터리 촬영을 한 달 만에 끝내는 게 불가능했다. 150컷으론 다큐멘터리 구성이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목표로 한 콘티상 컷수가 1,500컷은 됐다.

늪지위에 건설된 앙코르와트의 기초 공사인 터닦기 공사 장면.

 
세계 최초로 CG통해 앙코르 복원

이런 기준으로 장비를 구성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용상 촬영감독과 소현수 스테레오 그래퍼는 촬영 1년 전부터 다져진 팀워크로 촬영 속도를 거의 2D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기획의 승리였다. 촬영 스태프만 해도 태국, 캄보디아 촬영 장소를 두 번 이상 사전 답사해 촬영 전에 철저한 준비를 끝내 놓았다. 연출부의 이선영 조연출 겸 라인 프로듀서의 공도컸다. 촬영 한 달 전부터 태국 촬영소 관계자 집에 머물면서 수많은 소품, 대도구, 출연자, 동물 등을 셋업했다. 각종 촬영 요소와 일정 출연 계획이 담긴 100여 장의 콜시트를 영문으로 완성하고 사전에 준비했다. 5척의 전투선, 길이 100m, 높이 10m에 달하는 초대형 블루 스크린, 축구 운동장 3개를 합친 규모의 전투장과 즉위식장, 수십 개의 인공 바위, 각종 공사용 및 전투용 장비 등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것을 한 달 전부터 세세히 준비했다. 엄청난 강행군, 악조건 속에서 진행됐음에도 출연자는 물론 스태프들 모두 열심이었다. 정말 감사했다. 모두에게 첫 경험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캄보디아 배우는 이런 영화 규모의 작품이 처음이었고 국내 스태프들은 3D로 이런 스펙터클이 처음이었다. 1,000여 명의 엑스트라, 80여 명의 스턴트맨, 60여 마리의 코끼리와 말, 각종 특수 효과 모두 처음이었다. 연출부도 마찬가지였다.


수리야 바르만 2세 즉위식 재현.

태국에서 15일, 캄보디아에서 20일의 촬영 일정을 마치고 이렇게 100분 분량의 ‘앙코르와트’ 3D 입체 다큐멘터리는 촬영됐고 컴퓨터 그래픽과 합성돼 완성될 수 있었다. 세계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통해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이 복원됐다. 20여 명의 세계적인 전문가를 통한 과학적·고증적 복원과 영화 수준의 촬영, 3D 등등에 힘입어 이 작품은 미국에 국내 최고가에 선판매되는 신기록을 수립한다.

세계 최대 박물관인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소유한 스미스소니언 채널에서 미완의 4분짜리 트레일러 영상을 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스미스소니언을 위해 탄생한 작품 같다는 찬사를 보내면서 첫 만남에서 놀랄 만한 가격을 제시한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미주 시장에 높은 가격에 판매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 것이다. 스미스소니언 측은 벌써 EBS가 진행 중인 3D 입체 다큐멘터리 ‘위대한 바빌론’ 3부작과 ‘위대한 로마’ 2부작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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