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신문 ‘서울의 지하세계 사람들’

도준석 서울신문 사진부 기자



어느 날 서울의 지하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했다. 전쟁에 대비해 대피할 수 있는 터널이 있을 거란 떠도는 이야기부터 지하에 있는 시설과 사람들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마침 기획 순번이 돌아와 취재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동안에도 물론 토종이나 무형문화재 등 사진기획 취재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 기획은 처음부터 나 스스로 해야 했다. 더욱더 조심스러웠다.

서울의 지하라는 곳을 대부분 다녀봤다. 이 가운데 하수 박스를 정비하는 분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총길이 1만 300㎞에 달하는 하수암거는 서울의 오폐수를 흘려보낼 뿐만 아니라 큰비가 올 때 홍수를 막아 주는 중요한 시설물이다.

작업복을 입고 헬멧과 마스크를 착용한 뒤 작은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맨홀로 내려갔다.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다. 작업자들은 1.25미터 높이의 하수 박스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노후된 콘크리트를 분쇄하는 장비의 굉음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작업 전에 환기를 시키지만 시큼한 냄새와 악취가 코를 자극한다. 과거 국과원에서 부검 취재를 할 때 맡아 본 냄새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사명감은 투철했다.

“사람이 밥 먹고 배설을 못하면 병에 걸리지 않습니까? 서울 시민들이 병들지 않도록 하수암거(下水暗渠) 보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수박스 보수업체 ESP 건설 김서영(40) 차장은 이렇게 말하며 작업을 계속했다.



서울의 지하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설은 지하철이다. 1974년 8월 15일 서울역~청량리간 7.8㎞ 1호선 개통을 시작으로 서울의 지하 개발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발전을 거듭한 서울의 지하철은 현재 315.4㎞ 구간에서 하루 650만 명을 수송한다. 서울 대중교통의 주역이 된 것이다. 지하철역 주변에는 아시아 최대 쇼핑몰인 코엑스몰을 비롯한 다양한 상가와 문화공간이 들어섰다. 시민들에게 비바람, 혹한, 혹서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학동과 삼성동 주변 지하 40m 아래 9호선 지하철 건설 현장도 찾아갔다. 예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지하 건설 현장이었다. 셀 수도 없는 철빔이 땅을 지탱하고 있고 지상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대형 중장비들이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작업을 한다.

폭약에 의한 발파 작업도 하루에 두 번 있으나 시민들은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이뤄진다.

또 하나의 중요한 지하 시설물은 공동구와 전력구다. 아쉽게도 공동구는 보안시설로 분류돼 있어 취재를 할 수 없었다.

지하 공동구와 전력구 및 관로 등에는 15만 4,000V의 지중 고압선이 거미줄처럼 깔려 있다. 길이가 2만 1,574㎞에 달해 서울에서 부산을 26회 왕복하고도 남는다. 지상으로 전선을 빼면 건설 비용이 20분의 1로 줄어들지만, 시민들의 안전과 미관 등을 고려해 지중 시설을 계속 늘리고 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취재였지만 땅이 좁은 우리나라의 지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소중한 공간이었다. 지하 공간을 개발하면 지상 공간을 녹지 등 새로운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상의 교통난을 덜고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다.



서울시도 지하 공간 네트워크 활성화, 동부간선 도로의 지하화, 서울 시설물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지하 공간 개발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적인 도시로 발전한 서울의 화려하고 멋진 모습 이면에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지하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이 순간에도 ‘땅속 현장’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그들의 노고에 갈채를 보낸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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