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IJ의 경우 8개국 기자 15명이 9개월에 걸쳐 사용이 금지된 석면의 국제 거래를 파헤쳐 찬사를 받았다.
1980년부터 업계가 석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1200억 원을 뇌물 등으로 뿌렸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들의 네트워크를 해부했다. 인터뷰 대상만 8개국 200여 명에 달했다.



장기영 YTN 기자


미국탐사보도협회(IRE·Investigative reporter & editor)가 2010년 한 해 동안 보도된 탐사보도물 가운데 최고의 역작들을 선정해 발표했다. 상이라고 해 봐야 ‘IRE가 인정한 올해 최고의 탐사보도’란 인증서와 우리 돈으로 몇십만 원 정도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기자와 언론사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린 만큼 올해에도 모두 430편이 최고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올해는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인 CPI(Center for Public Integrity)가 지원하는 국제탐사보도 기자컨소시엄(ICIJ·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과 순수 온라인 매체인 프로퍼블리카(ProPublica)가 각각 2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는데 국제 협업 취재 확대와 순수 온라인 매체의 약진이 돋보인 한 해였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LA타임스와 ICIJ, 최고상 공동수상

내용 면에서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언론의 접근이 어려운 의료 보건 등 공공서비스 문제를 다룬 심층보도들이 많았다. 기사를 통한 보도에 머물지 않고 이를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어 언제 어디서든 시청자와 독자들이 관련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공간을 인터넷에 마련한 시도들이 다양하게 있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수상작별로 살펴보면 먼저 최고상인 IRE 메달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앞서 언급한 ICIJ가 공동으로 받았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다’(Breach of Faith)라는 제목의 연속 심층 보도는 지역 공무원들이 주(state) 가운데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county)의 주민 3만 9,000여 명으로부터 거둬들인 세금 수백만 달러를 고액 연봉 등으로 돈 잔치를 벌인 사실을 밝혀내 290만 달러 회수, 이들 공무원의 사임과 체포 등의 결실을 거뒀다. 심사위원들은 이 보도가 많은 장벽에도 불구하고 기자 11명이 끈질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지방자치
단체가 부패했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밝혀낸 본보기라며 이들의 노력과 언론사 경영진의 뒷받침에 가장 높은 점수를 매겼다.


 

최고상인 IRE 메달을 공동수상한 ICIJ의 ‘석면 국제 거래’ 탐사보도.


프로퍼블리카는 온라인 부문에서 수상

공동 수상자인 ICIJ의 경우 8개국 기자 15명이 아홉달에 걸쳐 현재 52개국에서 사용이 금지된 석면의 국제 거래(제목 “Dangers in the Dust: Inside the Global Asbestos Trades”)를 파헤쳐 찬사를 받았다. 1980년부터 업계가 석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우리 돈으로 1,200억 원이 넘는 돈을 뇌물 등으로 뿌렸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들의 네트워크를 속속들이 해부했다.

이들의 노력은 영국 공영방송인 BBC의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는데 등장하는 인터뷰 대상만 8개국 200여 명으로 지금까지 150여 나라, 20개 언어로 번역돼 보도됐다. 파급효과 외에도 정보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중국 정부와 인도 정부, 일반 사기업 등으로부터 관련 문서를 획득한 점, 또 이들 문서를 일일이 번역하고 DB를 만들어 보도에 활용한 점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았다.

ICIJ는 이 밖에도 9개 나라 기자 18명이 참가한 ‘바다의 약탈자’(Looting the Seas)로도 상을 받았다. 우리로 따진다면 대상에 이은 금상 정도에 해당하는 상인데 국제협약을 무시한 채 이뤄지는 참치 암시장을 추적 보도했다. 시장 규모만 5조 원에 육박한다는 이 암시장을 취재하기 위해 참가 기자들은 일본 도쿄 수산시장에서부터 프랑스의 참치 노획 현장까지 각자가 맡은 영역을 심층 취재해 방송과 신문, 온라인 등으로 세상에 불법 사실을 알렸다. 국제기구는 물론 개별 국가들의 규제기관들로부터 관련 법률 재개정 등의 성과를 거둬냈다.

앞서 언급한 프로퍼블리카는 혁신적인 사회감시자 기능 수행(Innovation in Watchdog Journalism·일종의 혁신상) 부문과 온라인 부문에서 수상했다. 미국의 의사들이 제약회사들로부터 뒷돈을 챙기기 위해 해당 회사의 약품을 쓰는지를 캐내고(제목 “Dollars for Docs”), 보도 과정에서 획득한 각종 관련 자료를 활용해 환자나 가족들이 인터넷으로 자신의 주치의가 이 같은 일에 연루됐는지, 이와 관련한 약을 처방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았다. 보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도가 된 이후에도 획득한 자료를 공공의 복지를 위해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한 혁신이 보도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온라인 부문 수상작 역시 의료 보건 분야를 다뤘는데 투석(透析) 문제(제목 “Dialysis: High Costs and Hidden Perils”)를 짚었다. 해마다 수조 원이 들어가지만 정작 환자들은 열악한 치료를 받기 십상이고 심지어 병세를 악화시키는 사례까지 일어난다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이 기사가 프로퍼블리카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공개될 때까지는 27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앞선 사례처럼 온라인 매체답게 미국 내 관련 환자 40만 명 누구든지 웹사이트에서 자신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있는지를 각 병원의 상황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한 점, 보도 직후 미국 상원의원이 상황 개선을 위해 해당 기관들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할 정도로 파급효과도 컸다는 게 IRE의 선정 배경이다.

IRE는 매년 정보공개 청구상과 신문과 통신의 경우 발행부수에 따라 50만 부 이상 신문과 통신사, 25만에서 50만 부, 10만에서 25만 부, 10만부 이하, 방송은 시청 범위에 따라 3개 부문으로, 또 잡지와 책, 라디오 등으로 나눠 우수작을 선정한다. 또 매체 구분 없이 이번 일본 쓰나미 재앙과 같이 속보 발생시 얼마나 빨리 우수한 탐사보도 결과물을 내놓았는지를 평가하는 ‘Breaking News Investigations상’, 미래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Students상’도 시상하고 있다.

눈에 띄는 몇 가지 사례를 더 소개하면 먼저 플로리다 주에 있는 피터즈버그타임스가 보도한 “Under the Rader”를 들 수 있다. 퇴역 군인들을 빙자한 자선 모금행사 사기극으로 수백만 달러를 거둬들인 뒤 정치인들의 뒷돈을 대고 거금을 횡령한 이른바 미국 해군퇴역군인협회(US Navy Veteran Association)의 사기극을 파헤쳤다. 문제의 협회는 아주 그럴싸한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 단위의 이사진까지 갖췄고 미국 41개 주에 사무실과 회원 6만 7,000여 명이 있다고 소개했지만, 취재 결과 이 협회를 만든 이마저 가짜인 것으로 밝혀졌다. 보도가 나가자 연방수사기관이 조사에 들어갔고 문제의 협회장은 횡령과 돈세탁,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시민들이 홈페이지를 각종 판단의 근거로 이용하는 점을 악용한 대규모 사기극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게 IRE 심사위원들의 평가였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도 엉뚱한 치료로 오히려 더 큰 화를 입거나 전염 등으로 환자가 숨지는 것과 같은 병원의 잘못되거나 허술한 치료, 불결한 위생상태 등을 심층 보도한 라스베이거스선의 “Do No Harm: Hospital Care in Las Vegas”도 눈여겨볼 만하다. 기자 2명이 3년간 290만 건의 기록을 분석해 병원들의 은폐와 조작을 고발했다. 정작 관리감독 기관인 지역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조사를 해 왔으나 보도가 될 때까지 지난 8년 동안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문제를 파헤친 기자들은 특히 CAR(Computer Assisted
Reporting)와 통계 분석 등을 활용해 사망 396건, 슈퍼버그에 의한 전염 2,000여 건, 수술 중 과실에 따른 부상 700여 건 등을 밝혀냈다. 지역 병원들 대부분이 앞으로 관련 정보를 공개하기로 했고, 관련 기관이 문제의 병원에 대한 조사에 나섰으며, 의회도 이런 일을 규제하는 법안을 제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1년 반 취재 끝 고용통계 거품 밝혀

방송 부문에서는 WFAA 댈러스와 WTHR 인디애나폴리스가 각각 취재 보도한 “Ground for Removal”과 “Reality Check: Where’s the Jobs?”가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었다. WFAA 댈러스는 의문의 폭발 사고로 주민이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기자와 피디, 촬영기자, 팀장에 해당하는 디렉터 등 4명으로 구성된 한 팀이 4년 동안 텍사스 주 구석구석을 발로 뛰면서 원인을 밝혀냈다. 취재 결과 방치된 낡은 가스관이 폭발하면서 빚어진 일로 드러났는데 주정부가 감독 강화를 약속하고 관련 회사들에게 땅을 파고 낡은 관을 교체하는 데 1조 원을 투입하라는 명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WTHR 인디애나폴리스의 경우에는 취재기자 두 명이 주 정부가 발표한 각종 고용 통계에 거품이 많다는 의심을 갖고 1년 반 동안 12만 8,000㎞에 이르는 거리를 일일이 현장 방문해 가며 일궈낸 성과물이다. 매핑(GIS나 구글 어스 등 지리 정보를 활용한 보도 방법)과 각종 그래픽, 데이터베이스 등 CAR를 활용, 정부 발표가 거짓임을 입증해 정부가 잘못을 시인하도록 했다.

일반 고객들이 약관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허점을 노리고 보험회사들이 교묘한 수법으로 보험금을 산정하는 프로그램을 조작해 고객의 돈을 이런 저런 용도로 유용하면서 배를 불려온 사례를 고발한 플로리다 주 사라소타 헤럴드 트리뷴의 ‘플로리다의 보험 악몽’(Florida’s Insurance Nightmare)도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기자가 단신으로 취재 보도한 것인데 반향도 커서 지역의 경쟁지 8곳이 기사를 받았고 주 정부는 해당 보험회사들에게 고객에 대한 환불 조치는 물론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라고 조치했다. 나아가 이런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관련 법
안이 상정돼 일부는 이미 통과가 됐고 다른 법안도 조만간 통과될 것이라고 한다.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 CPI 등 두각

이 밖에도 워싱턴 주 정부가 정부 예산을 줄이기 위해 고령자를 위한 요양원 보급 대신 민간 업체들에 대체 주거시설 사업을 허용했지만, 이들 시설과 시설에 들어온 입주자들에 대한 유사 의료행위 등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결과 지금까지 숨진 희생자가 236명에 이른다고 보도한 시애틀타임스의 “Seniors for Sale”, 학생 자치활동 등을 위해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내는 학생회비를 자신의 학비와 주차비, 생활비 등으로 전용한 학생회 간부들의 실태를 지적한 대학(University of Memphis) 신문인 데일리헬름스먼의 사례, 범죄에 사용된 총기 3만5,000정이 어느 주에 있는 어느 총기상에서 얼마나 팔렸는지를 추적한 결과 워싱턴 지역에서 범죄에 사용된 2,500정이 한 총기상에서 판매됐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또 이들 총기로 인해 경관 511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등도 수상작으로 뽑혔다.

올해 수상작들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예년과 달리 유난히 현장에서 취재기자들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많았는데도 쉬지 않고 정보공개를 청구하는가 하면 확보한 각종 정보,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는 점, 나아가 이들 정보를 묵히지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재활용할 수 있도록 부가가치를 높인 사례가 늘어나는 등 탐사보도의 영역도 넓어지고 한층 깊어졌다고 평가했다.

또 공공 영역의 감시에 역점을 둔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으로 온라인을 통해 자체 탐사보도 결과물을 출판하고 있는 CPI와 프로퍼블리카도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내놨다. 특히 미국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미디어 환경의 급변과 최근의 경제위기로 탐사보도 조직을 축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영리 재단 혹은 개인의 기부금으로 필요한 예산을 충당하고 취재와 보도는 기존 매체를 떠난 탐사보도 기자들이 주축을 맡고 있는 이들 두 기관의 성과물들은 다양한 지역 단위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의 등장도 촉진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탐사보도 수상작에 대한 시상식은 매년 6월 초에 열리는 IRE 콘퍼런스에서 있을 예정인데(올해는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 열린다), 이들 수상작에 담긴 취재 동기나 계기, 취재나 보도에 사용된 기법 등에 대한 내용들도 이번 콘퍼런스에 참가하는 기자, 미국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1,000여 명의 기자들에게 똑같이 공개된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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