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은 정치인의 스캔들에 대해선 관대하지만, 정치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
대해서는 인색한 편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드라마가 화제다.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동시간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최지선 파리2대학 박사과정


2012년 프랑스의 유력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프랑
스의 유명 정치인이자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인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의 성폭행 혐의로 프랑스가 시끌벅적하다. 항상 정치인의 성 스캔들에 대해 사생활이라며 관대했던 프랑스인들에게도 이번 사건은 유력 대선 후보의 단순한 스캔들이 아닌, 범죄 혐의라는 측면에서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다.

프랑스인들은 정치인의 스캔들에 대해서는 영미
권 국가의 국민들보다 관대하지만, 정치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 대해서는 인색한 편이다. 그렇다 보니 제작자나 방송사 입장에서도 영화, 드라마에서 자유롭게 대통령이나 정치인 문제를 소재로 하는 영미권과 비교해 실존 정치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 제작이나 편성에 대해 조심스러운 편이었다. 이러한 프랑스에서 최근 전직 대통령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영돼 화제를 낳았다.


퐁피두 전 대통령의 마지막 11개월 다뤄

지난 4월 프랑스3 채널에서는 ‘대통령의 죽음’(Mortd’un president)이라는 제목으로 갑작스럽게 병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세상을 뜬 프랑스의 19대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의 마지막 11개월을 다룬 드라마가 방송됐다. 시청률이 높지 않은 프랑스3의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같은 시간대 시청자 점유율 14.3%를 차지하면서 의외로 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통령, 대통령을 둘러싼 음모, 막후 공작, 국가기밀 등 성공한 드라마적 요소들을 고루 갖추며 이를 박진감 넘치게 구성했다는 평이다.

퐁피두 대통령 역을 맡은 장프랑수아 발메르.


현직보다 전직 대통령만 소재로

비교적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거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자유로운 프랑스에서 실존 정치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부담을 갖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실제 정치인을 소재로 한 내용은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 또는 다큐 픽션으로 제작되는 것이 일반적인 ‘룰’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프랑스에서 실제 정치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픽션의 등장도 최근의 일이다.

미테랑 대통령의 말년을 다룬 ‘샹드마르를 거니는 자’(Promeneur du champ de Mars)는 2005년에 개봉됐고, 프랑스2 채널에서 드골의 정치 은퇴 이후를 다룬 ‘위대한 샤를’(Le Grand Charles)도 2005년에 방송됐다. 2009년에는 Canal+에서 68혁명 시기에 드골 전 대통령의 일상을 그린 ‘드골, 영원히 안녕’(Adieu De Gaulle, Adieu), 프랑스2에서 정적들에 의해 도덕성을 의심받고 공격당하면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 프랑스 총리 피에르 베레고부아의 이야기를 담은 ‘명예로운 사람’(Unhome d’honneur)을 각각 방송하면서 프랑스에서
도 점점 실제 정치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실제 정치인의 이야기를 다뤄 성공한 프랑스 드라마들은 모두 지금은 이미 세상을 떠난 정치인들로 그들이 권력에서 물러난 후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프랑스에서도 조금씩 현실 정치인들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제작되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현존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제작 방영해 복잡한 문제에 얽히고 싶지 않다는 제작자 및 방송사들의 속내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프랑스에서는 동시대의 정치적 관계들을 균형감 있게 보여 주는 것이 불가능하고 개인 사생활 침해 및 초상권 등 법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실제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터부시되었다. 또한 연출자들에게는 섣불리 대사에서 실제 정치인을 거론해 정치적 스캔들을 일으킬 수 있는 것도 부담이 되는 일로 여겨졌다. 실제로 2003년 Canal+ 드라마 국장인 파브리스 드 라파텔리에르는 아직 프랑스 시청자들이 배우들이 현존하는 정치인들을 연기하는 것을 문화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정치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밝힌 바 있다.


드라마로서 극적 요소도 갖춰 인기

하지만 단순히 제작자 입장에서 정치적 부담 때문에 정치인 드라마를 꺼리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사적인 자리에서 정치적 의견이나 입장을 피력하는 것과 달리 공중파를 이용해 방송되는 경우에는 픽션이라도 정치적 문제가 개입되는 사안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방식이어야 하며, 개인적인 부분들은 공개하지 않고 지켜 줘야 한다는 것이 방송으로서의 공공 서비스적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실존 정치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아니지만, 실제로 2005년 파리 외곽에서 발생했던 소요 사태를 다룬 드라마 ‘소요’(L’Embrasement) 제작자인 파브리스 카즈뇌브는 정치적 사안을 다룬 드라마를 제작한 사람으로서 드라마에서 균형된 시각을 가져야 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드라마는 가족사를 위해 우리가 살아온 동시대의 문제를 말하지 않는다. 이는 공공 서비스로서의 임무이기도 하다.”

한편 이번 프랑스3에서 방영된 ‘대통령의 죽음’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은 것은 균형적인 시각으로 드라마를 구성한 것만이 주요 요인은 아니다. 미국 시리즈 드라마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역시 드라마로서 갖추어야 할 요소가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임기 중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는 점, 이를 국민들에게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대통령 후계를 위해 비밀리에 준비하는 과정 등 드라마적인 요소가 충분히 가미됐기 때문이라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 정치인, 정치적 문제를 다루기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게 정치 드라마다. 드라마적 요소와 더불어 공공 서비스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담은 프랑스만의 정치 드라마가 점점 확대되고 지속적으로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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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ck de piscina 2012.05.07 2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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