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카레이싱과 F-1의 대부였던 막스 모슬리
전 국제자동차연맹 회장의 성행위 동영상을 신문과 인터넷에 보도했다. 동영상 내용도 놀랍지만 언론인들을
정말 놀라게 한 건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전부 공개한 뉴스 오브 더 월드의 대담함이었다.




황진우 KBS 기자


한 개인의 남다른 성생활과 표현의 자유. 별다른 연결 고리가 없어 보이는 이 두 말은 그 사이에 유명인사가 서는 순간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하며 뜨거운 사회적 이슈를 생성한다. 맥스 모슬리 전 국제자동차연맹 회장도 그런 유명 인사들 중 한 명이다.


F-1 대부의 남다른 성 취향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 버금가는 스포츠 권력가이며 카레이싱과 F-1의 대부로 렸던 그는 지난 3년 동안 영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섹스 스캔들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자신의 사적인 성생활을 보도한 신문사로부터 6만 파운드의 손해 배상은 받았지만 땅에 떨어진 명예는 회복할 수 없었던 그는 유럽인권재판소에 소를 냈다가 지난 5월 패소했다. 신문사들이 유명 인사의 사생활을 폭로할 때 사전에 그 사람에게 ‘사전통보’를 하게 만들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모슬리의 남다른 성적 취향을 보도한 신문은 ‘뉴스 오브 더 월드’였다. 숱한 영국 유명 인사의 휴대전화 음성 사서함을 몰래 청취한 것으로 최근 드러난 바로 그 루퍼트 머독 계열의 타블로이드 신문이다. 대중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폭로성 기사를 전문으로 하는 이 신문은 2008년 3월 모슬리의 성행위 장면을 몰래 담아 신문과 인터넷으로 보도했다. 이후 불거진 사회적 파장은 이런 기사에 으레 뒤따르기 마련인 파장의 규모를 뛰어넘는 압도적 규모였다. 모슬리의 남다른 성 취향이 옥스퍼드 대학교 를 졸업한 인텔리 변호사 출신으로 세계 자동차 스포츠를 쥐락펴락하던 노신사의 그것이라곤 상상할 수 없었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뉴스 오브 더 월드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5시간짜리 풀 동영상에는 모슬리가 직업여성 5명과 함께 나눈 집단 성행위가 담겨 있다. 런던의 고급 주택지인 첼시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을 몰래 촬영한 이 동영상을 보면 모슬리와 직업여성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수용소를 흉내 낸 것으로 보인다. 직업여성들이 독일군 여장교의 옷을 입고 있거나 수감자 옷을 입고 있고, 모슬리 역시 수감자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동영상에서 모슬리는 옷이 발가벗겨진 채 고문을 받는데 엉덩이가 시뻘겋게 부어오를 정도로 심한 채찍질을 당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죄수복을 입고 심하게 두들겨 맞던 모슬리는 다시 나치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사디스트로 변신한 다음 독일어를 사용하며 직업여성들과 병정놀이가 섞인 집단 성행위를 즐긴다.



손해배상액 6만 파운드 받아

이런 그의 모습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대표적 파시스트로 활동했던 그의 부친 전력과 맞물리면서 영국 사회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나치즘에 누구보다 더한 반감을 갖고 있는 영국에서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불처럼 번졌고 유대인들의 항의 성명이 잇따랐다. 자동차 스포츠 업계를 대표하는 각국의 레이서들과 스폰서들도 줄줄이 그의 사퇴를 압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모슬리는 사생활 때문에 문제가 된 일로 사퇴할 수는 없다고 버텼으며, 결국 2009년 7월까지 잔여 임기를 다 채우고 국제자동차연맹 회장직에서 내려온다.

동영상에 담긴 내용 자체도 놀라운 일이지만 언론계 종사자들을 정말 놀라게 하는 것은 그렇게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전부 공개하는 뉴스 오브 더 월드의 대담함이다. 언론 역사에 남을 대표적인 황색 언론 사례로 꼽힐 정도다.

개인의 성적 취향이라는 사적인 공간을 겨눈 뉴스 오브 더 월드는 결국 영국 법원으로부터 모슬리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게 된다. 첫 보도가 나가고 모슬리가 법적 다툼에 나선 지 넉 달 만인 2008년 7월의 일이다. 손해배상 액수는 6만 파운드(환율 1,800원 적용 시 1억 800만 원)였는데 ‘사생활 침해’와 관련한 영국의 소송에서 가장 높은 손해배상액이었다.

판결을 내린 판사는 “보통과 다른 성적인 행위라 하더라도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하며 집단 성행위가 나치와 관련돼 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성행위가 녹화되거나 보도되어야 할만한 공공의 이익이나 다른 정당성을 찾아볼 수 없었고 보도로 인해 모슬리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 당했다”며 모슬리의 손을 들어줬다.

모슬리는 판결 후에 “뉴스 오브 더 월드를 박살낸 판결에 매우 기쁘며 그들의 나치 거짓말은 완벽하게 날조된 것이고 어떤 정당성도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반겼다.

또한 “뉴스 오브 더 월드가 사적인 공간에 침투해 누구의 일도 아닌 성인인 당사자들의 활동을 촬영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증명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뉴스 오브 더 월드 측은 이 같은 판결로 언론 자유가 더욱 위축됐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유럽에서 불기 시작한 사생활 보호 우선 판결 바람에 영국의 판사들이 편승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영국 의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를 거치지 않은 법 해석 때문에 언론이 사살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독자들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자신들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모슬리는 분명 나치 역할 놀이에 가담했기 때문에 이를 고발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에 분명히 부합하는 보도였다고 맞섰다.


사전통보 제도 도입 소송 제기

이렇게 법적인 공방에선 ‘나치 놀이’였느냐와 ‘사생활 보호권’을 놓고 양측이 논쟁을 벌였지만 대중의 관심은 이미 그 공방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F-1의 대부가 마조히즘과 사디즘을 동시에 즐기는 성적 취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빼도 박도 못하는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모슬리 입장에선 억만금을 받는다고 해도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를 받은 셈이다. 그 가족이 받은 상처까지 생각한다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상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손해배상 재판에서 승리한 뒤 모슬리는 사생활 보호권을 지키기 위해 언론과 맞서 싸우는 한 상징이 돼 버렸다. F-1의 대부였던 이미지에서 마조히즘과 사디즘을 즐기는 노인네로 추락했다가 사생활 보호를 지키기 위해 언론과 대립하는 인권 운동가의 이미지로 변한 것이다. 모슬리는 사건이 벌어지고난 이후 이런 주장을 펴 왔다. “손해 배상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땅에 떨어진 명예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기사가 출고되기 전에 사생활 보호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그가 ‘사전 통보 제도’를 들고나온 이유다.

모슬리는 결국 유럽인권재판소에 소를 제기했다. 신문사들의 사전 고지를 의무화하지 않은 영국의 법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뉴스 오브 더 월드의 기사 출고 계획을 몰랐기 때문에 기사를 멈추게 할 조치를 취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서 영국의 신문사가 유명 인사와 관련된 기사를 출고할 때 사전에 해당 유명 인사에게 출고 사실을 통보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전 통보’를 받게 되면 법원에 기사 출고를 금지하거나 연기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냄으로써 사생활 보호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논리다.

모슬리의 소 제기는 영국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또 하나의 화두를 던졌다. ‘개인의 사생활과 언론의 표현의 자유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우선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슬리의 사례는 인권법 8조가 보장하고 있는 사생활 보장 권리와 10조가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슬리 측은 ‘사전 통보 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나서면서도 언론의 자유는 분명한 민주주의의 근간이므로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는 언급을 빠뜨리지 않았다. 자신들이 문제 삼는 것은 불법을 일삼는 대중지들의 막무가내 식 보도 행태지 일반 신문사들의 정상적인 보도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전 통보 제도’는 발상 자체만으로도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라는 반론과 비판에 부딪히게 된다.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 해악 과소평가”

논란 속에 유럽인권재판소는 심리를 진행해 왔고 마침내 지난 5월 10일 “모슬리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의 ‘사전 통보’ 의무는 없다”고 판결했다. 모슬리가 패소한 것이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유럽 인권법에 따르면 언론은 사전고지를 할 의무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영국에서 사생활이 보호될 수 있는 권리는 언론의 자기 규제와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법원의 가처분 조치 등으로 이미 보호받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신문사들과 언론인들은 이미 충분히 어느 경우에 사생활 보호권이 침해당할 수 있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어 ’사전 통보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공공의 이익에 직면한 문제는 예외로 해야 하며 신문사들이 ’사전 통보‘를 하지 않거나 ’사전 통보‘ 대신 벌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슬리는 실망스러운 결과지만 재판부가 뉴스 오브 더 월드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또 재판부가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의 해악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다는 불만도 드러냈다. 모슬리는 이어 이 사건의 본질은 신문사들이 단순히 신문을 많이 팔기 위한 목적으로 공공의 이익과는 아무 관련 없는 개인의 사생활을 파헤칠 권리가 있느냐에 관한 문제라며 사생활 보호권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유럽인권재판소의 결정은 사생활 보호권과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준 결과라기보다는 두 개념의 균형을 잘 갖출 것을 주문한 판결로 해석하는 게 타당할 듯하다. 이로써 2008년 3월 한 대중지의 거침없는 섹스 동영상 보도로 촉발된 파장은 일단락되는 듯하다. 하지만 사생활 보호권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개인과 언론의 갈등은 언젠가는 다시 터질 휴화산 상태로 접어들었을 뿐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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