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기업들은 기자를 초청하면 보도 자료에 현금을 넣은 ‘홍바오’를 함께 건넨다. 문제는 홍바오가 뇌물이나 뒷돈으로 변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들도 홍바오는 관행으로 여긴다. 기업들은 기자간담회나 마케팅 행사 때 기자들에게 300~500위안(방송기자는 1,500위안)의 홍바오를 건네 왔다.


주춘렬 세계일보 베이징 특파원


수년 전 한국 언론사의 한 기자는 베이징에서 중국 기업이 주최하는 행사를 취재하다 홍바오(紅包) 때문에 황당한 일을 당했다. 기업 홍보 직원이 건네준 홍바오를 무심결에 받았는데 그 이후 한동안 ‘기사는 언제 나가느냐’는 전화를 수차례 받았기 때문이다.

홍바오란 빨간 봉투를 뜻하는 중국말로 복을 기원하거나 감사를 표시하는 중국의 전통문화에 속한다. 중국인들은 명절이나 결혼 등 경사 때마다 우리의 세뱃돈이나 축의금처럼 홍바오를 건넨다.

중국 언론계에도 홍바오 문화가 만연해 있다. 통상 중국에서 기업들은 기자를 초청하면 보도 자료에 현금을 넣은 ‘홍바오’를 함께 건넨다. 문제는 홍바오 금액이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어나면서 뇌물이나 뒷돈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홍바오가 기사를 쓰지 않는 대가로, 또는 홍보성 기사를 게재하는 압력 수단으로, 혹은 단순히 교통비 혹은 수고비로 건네는 공돈으로 쓰이고 있다. 중국 언론에서도 자본주의 사회 못지않게 홍바오라는 전통문화를 통해 돈의 힘이 맹위를 떨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탄광 사고 때 홍바오는 ‘입막음용’

중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탄광 사고는 홍바오의 병폐를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 준다. 탄광주들이 기자들의 입을 막기 위해(봉구비·封口費) 홍바오를 건네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한때 수백 명의 기자가 봉구비를 받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 2008년 7월 14일 허베이(河北)성 위(蔚)현에서 35명이나 숨지는 대형 탄광 사고가 발생하자 탄광주가 홍바오를 남발해 물의를 빚었다. 탄광주는 보도를 막기 위해 현장 취재에 나섰던 기자들에게 모두 260만 위안(약 4억 3,542만 원)의 홍바오를 뿌렸다. 이 과정에서 망락보(網絡報)·대중열독보(大衆閱讀報)·하북경제일보(河北經濟日報) 소속 10여 명의 기자가 특집광고 비용 명목으로 25만 위안을 받거나 4만~5만 위안의 개별 홍바오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현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결국 이 탄광 사고는 85일이 지난 후에야 간신히 보도
됐다.


지면도 돈으로 살 수 있어

그해 9월 중순 산시(山西)성 린펀(臨汾)시에서 발생한 탄광 사고 때도 23개 언론사의 기자 28명이 몰려와 봉구비를 챙겼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사이비 기자로 각각 300~500위안(약 5만~8만 4,000원)을 받았고 일부 언론사의 경우 금액이 2,000~5만 위안에 달했다. 앞서 2005년 허난(河南)성 루저우(汝州) 탄광 사고 때에는 사이비 기자를 포함해 모두 450명의 기자가 몰려와 20만 위안의 홍바오를 챙기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도 일부 지방에서는 탄광 사고 발생때마다 입막음용 홍바오 관행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자들의 일상적인 취재 활동에서도 홍바오는 이미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통상 중국에서 기업들이 기자간담회나 마케팅 행사 때 기자들에게 300~500위안(방송기자의 경우 1,500위안)의 홍바오를 건네왔다.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서 액수가 500~800위안으로 올랐다고 한다. 물론 행사 시간이 길어지거나 장소가 멀면 금액은 더욱 많아진다. 베이징의 한 외국 업체 홍보 담당자는 “홍바오의 경우 기업마다 이미 공정가격이 형성돼 있다”면서 “홍보대행 업체가 필요한 만큼의 중국 기자를 충분히 동원해 준다”고 말했다. 중국 기자들의 경우 우리와
같은 출입처 담당제가 아니어서 행사 때 한 매체에서 4~5명의 기자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대체로 홍바오는 기사 압력 혹은 보험용이라기보다는 거마비 혹은 사례비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일부 대행사들의 경우 행사가 끝난 후 기사 보도 여부를 확인하며 기자들에게 문의 전화를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기업들은 특집 기사를 게재하는 형식으로 중국 언론의 지면을 쉽게 사들일 수도 있다. 유력 신문의 경우 매입 가격이 자당 4위안 정도다. 이에 따라 2,000자 분량의 2단짜리 기사 가격은 8,000위안이며 한 면 전체는 10만~15만 위안에 이른다. 이 경우 기업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기사를 게재할 수 있으며 심지어 홍보 담당자의 이름으로도 보도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기업이 보내온 기자간담회 초청 행사 초청장에 1,000홍콩달러(14만 160원) 상당의 쿠폰을 동봉한 사실을 공개했다. 베이징에서 활동 중인 홍보 자문가 유진 선은 “중국 대륙의 기업들은 해외시장에서 국제적 마케팅 관행을 따라야 한다”면서 “법체계에 따라 기업 활동이 이뤄지는 나라에서는 유료 뉴스가 수용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막인팅 홍콩 기자협회장은 “홍콩의 기자들은 이러한 홍바오를 받는 데 익숙지 않다”면서 “대신 중국의 많은 기업이 이에 상응하는 기념품을 주
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홍바오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뭘까. 일단 기자나 기업의 탓으로 돌리기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가 발행하는 주간지 ‘빙점’(氷點)의 편집장 출신 리다퉁(李大同)은 “중국에서 기자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명예나 자긍심도 박탈될 수밖에 없다”면서 “주범은 바로 이러한 언론 체계”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매체들은 보도의 질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기자들도 공익 보호나 부패 스캔들 폭로를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승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도덕적 가치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으며 홍바오는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선전 당국이 홍바오 관행을 금지하는 규칙을 발표하
지만 아무 효과가 없다.

경제적 요인도 홍바오를 부추기는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된다. 1990년대 경제성장 때 많은 기업이 재화와 서비스 판매에 나섰지만 상대적으로 광고·홍보 업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인민일보 웹사이트인 인민망(人民網)의 칼럼니스트 리훙은 “당시 기업들은 제품 판매에 도움이 될 만한 이들에게 돈을 주는 것 이 외에 딴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유료 뉴스, 유료 기자간담회, 유료 기자 여행 등이 언론계의 관행으로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30대 기자 급여 5,000위안 불과

중국 기자들의 수입이 신통치 않은 점도 특기할 만하다. 30대 혹은 40대 초반의 기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 달 급여가 5,000위안에 불과하다고 한다. 다만 신경보처럼 유력한 신문이나 대표적 관영 매체의 기자는 6~7년 차의 경우 1만 위안 정도에 이른다. 드물긴 하지만 기사 게재량 등 인센티브에 따라 2만 위안가량까지 받는 기자도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자로서도 홍바오의 유혹을 쉽사리 뿌리치기 힘들다. 중국의 한 기자는 SCMP와 가진 인터뷰에서 “인턴 시절 홍바오를 받고 깜짝 놀랐다”면서 “인민대회당에서도 이 관행이 비일비재했고 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이어 “그러나 선배 기자들은 다시 돌려주면 다른 기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거라며 그냥 받으라고 조언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기자는 “하루에 3~4개가량의 기자회견 장소에 다니곤 한다”면서 “요즘처럼 기름값이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홍바오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주목할 대목은 중국 기자 사회에서도 홍바오 관행을 반성하며 언론의 품위와 자율성 찾기에 나설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와 관영 신화통신사 등 유력 매체의 기자들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에게 보내는 공개 서신을 통해 “기자들의 ‘무면지왕’(無冕之王·면류관 없는 왕)의 지위를 확립해 달라”고 요청했다. 500명에 육박하는 기자들이 연서한 이 공개 서신에는 ‘기자들을 존중해 달라’, ‘중국 영토 내에서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언론에 대한 기업 입김 더 거셀 듯

그러나 중국 언론의 홍바오 관행이 당분간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을 듯하다. 중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아직 요원한 가운데 최근 들어 민영화가 급류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출판 정책을 총괄하는 중국 신문출판총서는 최근 올 연말까지 정치 분야 및 주요 당 기관지를 뺀 6,000여 개의 당·정부·공기업 산하 신문 및 정기간행물을 민영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신문출판총서의 류빈제(柳斌杰) 서장은 “이미 1,300여 개가 민영화됐으며 나머지도 올해 중 모두 민영화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류 서장은 “이들 출판물 가운데 3분의 2가량이 적자를 내고 있지만 좀처럼 그 수가 줄어들고 있지 않다”면서 “민영화 조치로 소형 출판물은 대규모 미디어 그룹에 통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잔장(展江) 베이징 외국어대 교수는 “이 같은 민영화 조치로 당 기관지를 비롯해 언론·출판계 전반이 적자생존의 경쟁체제에 돌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 자유의 부재 속에 앞으로 경쟁 원리가 미디어 산업을 더욱 지배하게 되고 이에 따라 기업의 입김도 더욱 세질 듯하다. 일부 대형 미디어 그룹을 뺀 상당수 신문은 수익성 저하에 시달리고 덩달아 기자의 취재 환경은 더욱 나빠질 개연성이 크다. 결국 이 같은 언론 안팎의 과도기적 여건에 비춰볼 때 홍바오가 기자 사회에 여전히 필요악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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