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 자살 보도 내용 분석

정일권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언론 보도가 후속 자살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는 1970년대부터 보고돼 왔다.
그래서 각국에서는 자살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 지침을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도 2004년 한국자살예방협회, 한국기자협회,보건복지부가 함께
‘언론의 자살 보도기준 권고안’을 마련했다.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의 자살률이 1990년대 들어 가파르게 늘어 2009년 현재 OECD 32개국 중 자살률 1위(10만 명 당 28.4명)를 기록했다. 이는 하루 평균 43명, 34분마다 한 명이 자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언론에서 자살에 대한 보도가 늘고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자살한 사람의 사진 싣지 말아야”

그러나 언론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 가치’를 지닌 것만을 보도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살 보도의 증가를 단순히 현실의 변화에 조응하는 언론의 당연한 반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또한 언론의 보도가 오히려 자살을 조장한다거나 자살로 사망에 이른 이의 주변 사람과 유가족을 보다 힘들게 하는 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빈도와 방식에서 우리나라 언론의 자살 보도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2011년 들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자살 사건은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 프로축구 승부 조작 조사 과정 중 전 전북 소속 정종관 선수의 자살 그리고 MBC 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 송지선 씨의 자살, 가수 채동하 씨의 자살 등이다. 이 중 카이스트 학생과 정종관 선수의 경우는 자살 그 자체보다는 자살의 배경이 된 사회적 문제 즉 카이스트의 학사 운영 방침과 프로축구 승부 조작이 언론 보도의 중점이었다. 반면에 송지선 아나운서와 가수 채동하 씨는 개인적 문제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보도된 경우다. 이 글에서는 개인적 차원에서 논의된 송지선 씨와 채동하 씨의 자살 사건에 대한 국내 주요 신문사의 기사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언론의 보도가 후속 자살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1970년대부터 보고됐다. 이에 따라 각국에서는 자살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의 지침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보도 지침의 효용은 이러한 지침에 맞춰 보도할 경우 언론의 보도가 후속 자살에 미치는 영향력이 감소한다는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1978년 오스트리아의 보도 지침 적용 사례). 우리나라도 2004년 한국자살예방협회, 한국기자협회, 그리고 보건복지부가 함께 논의해 ‘언론의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을 마련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자살을 영웅적 행위나 낭만적 해결책처럼 포장하지 말 것, (새로운) 자살 방법을 소개하고 세세하게 설명하지 말 것, 작은 사실에 근거하여 일반화하거나 자살의 원인을 단순화하지 말것, 자살이 아무런 예고나 이유 없이 일어났다고 서술하지 말 것, 자살한 사람의 매력이나 명성에 누가 될까 봐 정신건강 상태나 약물중독과 같은 문제를 감추지 말 것, ‘자살’이란 용어를 헤드라인에 쓰거나 사인(死因)을 자살로 밝히지 말 것, 자살한 사람의 사진을 넣지 말 것, 유명인의 자살을 주요 기사로 싣지 말 것 등이다.

이 기준에 따라 송지선 씨와 채동하 씨 자살 사건의 신문 보도 내용을 분석해 보면 대단히 실망스럽다. 거의 모든 신문이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미명 하에 고인과 유족의 권리는 무시한 채 선정적인 내용을 경쟁적으로 쏟아 냈다. 주요한 문제점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흥미에 치중, 유족의 권리는 무시

첫째, 신문사들은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자살 사건을 다뤘다. 거의 모든 신문이 이 사건을 여러 기사에 나눠 며칠에 걸쳐 다뤘으며 심지어 고인과 사건 현장의 사진까지 실었다. 또한 지나치게 상세히 자살 현장과 과정을 묘사했다. 이것은 모두 독자의 관음증에 호응하는 것으로 신문 열독률을 올리는 대신 고인과 유족의 인권과 감정을 무시한 것이다. 권고안에 따른다면 신문사들은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 자살자와 그 유족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구체적인 예를 보면 송지선 씨의 경우에는 사망시 사용한 이불부터 시작해 추락에 의해 부서진 구조물 사진, 그 구조물에 남은 손자국 등의 사진이 게재됐다. 사건 현장 묘사를 위해 근처 죽집 아주머니의 인터뷰 내용을 기사화했고, 자살 과정에 대한 묘사는 그가 자신의 오피스텔 19층 창문에서 뛰어 내렸다는 것, 뛰어내릴 때 파자마를 입고 이불로 몸을 감쌌다는 것, 추락 시 자동차 타이어 터지는 소리가 났다는 것 등에까지 이르렀다. 채동하 씨의 경우에는 사건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본명(최도식)이 공개됐고, 목을 매 자살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이러한 자살 과정과 현장에 대한 상세한 묘사. 관련 사진은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심각하게 자살을 고려하는 이들에게는 정보로 받아들여져 후속 자살과 모방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기사에서 다뤄지지 말았어야 한다.


제목에 ‘자살’이라는 용어 사용 자제

둘째, 헤드라인에 자살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쓴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5월 28일 자에 “‘SG워너비’ 출신 가수 채동하 자살”이라는 헤드라인을 썼는데 한국자살예방협회에 따르면 헤드라인에 들어가기에 적합한 단어는 사망, 운명, 별세 등이다. 적절한 헤드라인은 5월 27일 자 한국일보에서 발견됐는데, “‘SG워너비’ 출신 가수 채동하 자택서 숨진 채 발견”이다.

해외의 연구 사례를 보면 자살이라는 용어를 헤드라인에 쓰게 되면 독자의 과도한 관심을 끌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모방 자살을 증가시키는 구실을 한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헤드라인에서는 자살과 같은 선정적인 단어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망자의 사진, 유서나 일기 등이 보도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송지선 씨 사건의 경우에는 송 씨의 미니홈피, SNS 내용 등이 공개돼 독자의 과도한 흥미를 이끈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국일보는 5월 23일 자 기사의 헤드라인부터 “송지선 아나운서, 유서에는 어떤 내용이?”라고 썼다.

셋째, 언론은 충분하지 않은 정보로 자살 동기를 판단하는 보도를 하거나 자살 동기를 단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특히 자살 원인을 특정인 또는 특정 사건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내용은 특히 헤드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문제점은 특히 송지선 씨 사건 보도에서 두드러졌다. 거의 모든 신문에서 송지선 씨 자살의 원인을 프로 야구선수 임태훈과의 연애, 둘의 관계를 둘러싼 주변의 반응과 임태훈 씨 본인의 반응에서 찾고 있다. 예를 들면 동아일보 5월 24일 자 기사의 헤드라인은 “끝내 ‘…야구선수와 스캔들’ 송지선 아나운서 자택서 투신”이었다. 그러나 고인이 다시 살아와 증언하지 않는 한 고인이 자살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는 추정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보도 내용대로 임태훈 씨 때문에 자살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언론의 보도에서 임태훈 씨가 보호돼야 할 이유는 명확하다. 이는 제2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다.

넷째, 자살한 사람의 사망 사실에 애도를 표현하는 것과 자살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자살을 미화하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당연한 것처럼 보도해서는 안 된다. 또는 자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문제가 사라지게 됐다는 식으로 묘사해서도 안 된다.

정신과 의사들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너무나 힘들었겠다’ 유의 보도가 자살이 당연한 선택이었음을 은연중에 인정하는 격이라고 말한다. 이는 자살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살이 고통 해방의 방법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송지선 씨에 대한 보도를 보면 연인이었던 임태훈 씨가 사랑하는 관계를 부정하는 경험을 했고, 이에 대한 자신의 감정 표현이 둘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의 평가 대상이 되어 고통받았다. 또한 이 때문에 회사에서는 징계 대상이 되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으며 이러한 송 씨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시청자 혹은 네티즌들이 그를 죽음으로 떠밀었다는 식의 내용을 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일보 5월 27일 자의 ‘인민재판하는 SNS 하이에나들’과 한겨레 신문 5월 24일 자 “송지선 아나운서 투신 왜…”라는 기사다. 이러한 기사는 한편으로는 고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살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자살이 문제 해결을 위한 타당한 혹은 유일한 방법이라는 그릇된 사인을 보낼 수도 있다.

지난 5월 24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1 프로야구 LG-두산의 경기. 관중석에서 LG의 한 팬이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명복을 비는 피켓을 들고 있다.


극단적 선택의 부정적 결과 강조해야

같은 문제는 가수 채동하 씨 기사에서도 발견된다.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는 5월 27일 자 기사에서 소속사 관계자의 입을 빌려 채동하 씨가 “얼마 전부터 상태가 좋아져 우울증 약을 먹지 않기 시작했으며, 자신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라고 썼다. 이는 채동하 씨의 자살이 우울증 이외의 다른 원인 때문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보도 방식은 정신 질환으로 인해 병원에 가서 진료받는 것 자체를 대단히 터부시하는 풍조를 반증한다.

차라리 우울증 환자가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우울증 약을 끊은 것이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일 수도 있다고 보도하는 것이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다른 우울증 환자의 자살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편 자살에 대한 보도가 항상 그릇된 것만은 아니다. 어차피 이제 우리 사회에서 자살은 중요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자살 사건을 보도하지 않는 것이 자살 확산 방지에 기여할 것이라는 수동적 생각에서 벗어나 자살 사건에 대한 보도를 통해 미래의 자살을 방지하는 능동적 보도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언론의 자살 보도기준 권고안’에서는 자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함께 밝혀 줄 것을 권하고 있다. 이에는 자살 이후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겪을 고통과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신체적 후유증(뇌 손상, 사지마비 등)을 입을 가능성 등이 포함된다. 또한 자살 고려자들이 자살의 충동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살률의 추이와 자살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최신 치료법, 그리고 자살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문제 해결의 대안을 알려 줄 것을 권한다.

이를 위해 위기 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의 전화번호와 인터넷 사이트 주소 등을 소개하거나 치료나 상담을 받고 자살 위기를 넘긴 사람의 사례를 보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살 고려자들 주위의 사람들을 위해 자살 징후가 무엇인지, 그런 징후를 발견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보도할 것을 권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최근의 몇몇 기사는 모범적인 자살 보도 기사라고 할 수 있다.


노인 자살 문제 다룬 점은 바람직

한국일보는 6월 1일 자 “‘자살자 유가족 출신 상담사 1호 박인순 씨’, 같은 아픔 지닌 이들과 울며 웃으며 치유”라는 기사에서 자살자 유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소개하며 자살 고려자들에게 상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고 있다. 이러한 기사는 자살을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게 하고 행동 이전에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좋은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일보 5월 30일 자에 실린 경기개발연구원의 ‘자살의 사회경제적 진단’ 보고서에 관한 기사에서는 자살률 추세, 자살 방지 대책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의 연락처 등에 관한 정보가 실려 있다. 또한 이 기사는 자살자들의 생명에 대한 본능적 지향을 지적하며 자살자들이 행복해할 것이라는 신화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한겨레 신문은 새로운 시각에서 우리에게 자살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5월 6일 자 ‘세상읽기’라는 고정 칼럼에서 우리 사회 자살률 상승의 원인을 노인 자살의 증가에서 찾고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노인 자살에 대한 관심의 중요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즉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새로운 의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살은 이제 일부 사회 부적응자들의 개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 풀어 나가야 할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개별적인 자살 사건을 사회적 원인에서 찾아 자살을 정당화하는 시도는 자제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늘어나는 자살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근본적인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언론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송지선 씨의 자살 사건과 SNS를 통한 무책임한 글쓰기, 이를 실어 나르는 언론의 문제를 관련시키고 있는 기사는 올바른 방향을 제
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언론사별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다소 차이는 있었다. 중앙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SNS를 통해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인격 모독적인 내용을 남기는 개인의 문제를 중시하고, 경향신문은 개인 혹은 SNS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보다는 그러한 개인의 글들을 모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시에 퍼트리는 일부 언론의 행위를 더 중시하는 차이를 볼 수 있었다. 한편 한국일보는 위 두 가지 시각을 모두 담아내고 있었다.

송지선 씨의 자살과 SNS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연관시킨 시도가 옳았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충분했다고 볼 수는 없다.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 2008년 안재환, 최진실등 수많은 연예인들의 자살에 대해 보다 깊이 있고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한 기사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왜 하필이면 연예라고 하는 특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집단에 비해 자살률이 높은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했다. 몇몇 기사에서 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짧은 논의들이 있었다.


선택하도록 강요당한 원인을 밝혀야

예를 들면 중앙일보는 연예인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이 무차별적 언어폭력에 노출된 상황을 하나의 원인으로 제시했다(5월 26일 자). 한국일보는 연예인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항상 남을 의식해서, 특히 인기를 고려하며 살아야 하는 환경이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5월 27일자). 이 기사의 한 인터뷰 내용이 이를 잘 대변한다.

“가수라는 직업이 너무 힘든 것 같네요. 잊히면 버려지는 기분, 너무 잘 알기에 가슴이 더 아프네요.”(원투의 송호범). 그러나 이런 수준의 논의는 너무 피상적이다. 본격적으로 연예인들의 생활, 그들의 대화 상대, 대화 방식, 인기를 얻고 유지하는 방식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연예 산업 구조의 문제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이끌어 내는 기사의 부재가 아쉽다.

인기 있는 연예인이기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활하도록 강요되어 온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연예인 이전에 한 인간으로 살아갈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기사가 나왔어야 한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매체 간 경쟁은 보다 심화됐다. 따라서 신문은 물론 인터넷 매체, 방송 매체 모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정보를 포장하는 일에 매진한다. 매체 간 경쟁을 회피하는 것이 현재의 미디어 시장 문제에 대한 해결책일 수는 없다. 이런 시장 환경이 유명인의 자살 사건에 대한 보도가 선정적이 되는 근본 이유일 것이다.

또한 그러하기에 언론사 입장에서 유명인의 자살 사건을 상품화하지 않는 것, 즉 보도하지 않기란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자 본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유족들에게 고통을 주며 모방 자살을 유도할 수 있는 현재의 선정적 보도 방식이 지속돼서는 안 된다. 언론사들은 선정성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경쟁성을 확보해야 한다. 대안적 기준 중 하나는 분석성이다. 즉 한 개인의 자살을 근본적인 사회적 문제와 어떻게 연관시키는가라는 차원에서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

자살은 한 사람이 인생에서 최후로 선택한 행동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행동이 아니라 이를 선택하도록 강요됐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강요의 구체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를 언론사들이 밝혀 주길 바란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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