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 경쟁과 무신경으로 얼룩진 보도 행태

황수현 주간한국 기자


현재 노출되고 있는 자살 보도의 80% 이상이 ‘언론의 자살 보도 권고 지침’을 위반하고 있다.
심지어 그런 기준조차 있는지 모르는 기자도 있다.
자신의 손을 거쳐 나온 잘못된 보도가 실제로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실감하지 못한다.




얼마 전 한 젊은 여자 아나운서의 죽음으로 인해 한바탕 사회가 떠들썩했다. 그가 죽기 전 온라인상에 올린 글과 글 속에 언급된 인물의 유명세로 인해 해당 아나운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최고조에 올랐고, 바로 그 순간 그는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연예, 스포츠, 치정, 사망 등 가장 자극적인 요소들이 얽힌 그의 사망은 오사마 빈라덴 사건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고 당연히 언론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미디어의 자살 보도 행태는 현재 국내 언론이 고수하고 있는 자살 저널리즘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수백 개의 기사들은 그 아나운서가 자살한 시간과 장소, 뛰어내릴 때 뒤집어 쓴 이불, 그리고 그가 떨어지면서 무너진 구조물의 모습까지 세세하게 묘사했다. 매체들은 경비원의 말을 인용해 떨어질 당시 타이어 터지는 소리가 났다는 것, 근처 죽집 아줌마의 입을 빌려 그가 사망 며칠 전 밥을 제대로 입에 대지 못했다는 것까지 낱낱이 보도했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사진을 찍지 못하자 사건 현장에 모여든 기자들은 부서진 주차장 덮개의 사진을 실시간으로 올려댔고 그중 한 매체가 덮개에 찍힌 고인의 손자국을 포착했다는 기사를 내면서 ‘송지선 손자국’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후속 기사를 보도하는 행태 역시 다르지 않았다. 빈소에 죽치고 앉은 기자들은 유명인들이 줄줄이 들어오는 풍경이 연출되지 않자 ‘썰렁한 빈소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포토 뉴스를 내보냈고, 한 매체에서는 ‘두산 임태훈, 송지선 빈소 조문 올까?’ 같은 헤드라인으로 네티즌들을 낚았다. 발인 날에는 정신을 놓고 절규하는 고인의 어머니가 모자이크 처리 하나 없이 다양한 각도로 찍혔으며 사진에는 ‘아이고, 내 새끼~’, ‘오열 또 오열’ 등의 타이틀이 붙었다.

송 아나운서의 전 애인으로 알려진 한 가수가 ‘나는 가수다’ 녹화에 참여한 날짜가 사망 날과 겹쳤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디테오, 전 여친 송지선 사망 날 나가수 녹화’라는 제목의 기사가 수십 개씩 올라왔으며 ‘임태훈 2군행, 송지선 사망 후폭풍’과 같은 신중하지 못한 헤드라인은 현재까지 아무 제재 없이 유통되고 있다.


자살 보도 기준이 뭐냐고요?

한국자살예방협회가 보건복지부, 한국기자협회와 공동으로 ‘언론의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을 마련한 것은 지난 2004년 7월이다. 기준에는 헤드라인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 것, 어떤 방법으로 자살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지 말 것, 자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함께 밝혀줄 것 등이 세세하게 나와 있다.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현재 대중에 노출되고 있는 자살 보도의 80% 이상이 권고안 지침을 위반하고 있다.

권고가 잘 지켜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충헌 KBS 의학전문기자는 지난해 말 열린 언론의 자살 보도 관련 세미나에서 ‘과도한 경쟁’과 ‘기준이 제대로 숙지되지 않은 점’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독자의 관심을 원동력으로 하는 미디어의 속성상 스스로 절제된 보도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스포츠연예지에서 근무하는 한 기자는 “군소 언론의 난립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한다.

“내가 안 쓰더라도 어차피 인터넷 언론에서 다 쓰니까 나도 쓸 수밖에 없다. 일단 자살 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출동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독점적인 내용을 하나라도 건지기 전까지는 사무실에 들어갈 수 없다. 현장에 나가 보면 소규모 인터넷 매체 기자들은 대부분 거기서 밤을 새우다시피 한다.”

또 다른 기자는 아예 그런 권고 기준이 있다는 것 조차 몰랐다는 반응이다. 그는 ‘헤드라인에 자살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자제하라’는 사항에 대해 “그럼 자살을 자살이라고 쓰지 뭐라고 쓰느냐”고 반문했다.

기자들이 권고 기준을 어기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손을 거쳐 나온 잘못된 보도가 실제로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과의 김현정 과장은 자살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일반인과 평소 자살 충동에 자주 시달려 온 잠재적 자살자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는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다고 말한다.

“자살 방법과 현장에 대해 세세하게 묘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정보가 되기 때문입니다. 피가 묻어 있고 엉망으로 어지럽혀진 현장은 일반인에게는 그저 공포감 또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지만, 자살을 고려하는 이들은 그것을 보며 자신이 자살할 때의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리게 됩니다. ‘어느 정도의 고통과 혼란이 있겠구나’라고 예상할 수 있는 거죠. 이번 송 아나운서 사건의 경우 이불을 덮어쓰고 뛰어내린 사실이 널리 알려졌는데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죽는 사람이 또 나타나지 않으리라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
니다.”

자살 방법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행태는 군소 언론이나 대규모 언론이나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최진실 사건 당시 그가 사용한 압박붕대의 가격과 구입 경로까지 상세히 보도한 것은 다름 아닌 국내 최대 일간지 중 하나였다. 그해 두 명의 중년 여성이 압박붕대로 목을 매 숨졌으며,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탤런트 안재환의 일산화탄소 질식 방법 역시 올 6월 초 또다시 재연됐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2008년 11월 13일 제주 칼호텔에서 보건복지부, 한국자살예방협회와 함께 ‘자살보도 개선 방향’이란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언론의 자살 보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을 이해하는 태도는 안 돼

자살 방법을 묘사하는 것이 선정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사실 거의 이견이 없다. 이는 언론사 자체 내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규제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언론이 고인과 죽음을 옹호하는 경우다. 보도 기준 중에는 ‘자살을 미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문제는 기자가 스스로 미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데 있다. 한국의 끈끈한 정(情) 문화에 고인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좋은(?) 마음이 더해지면서 어떤 매체들은 종종 객관성을 잃고 마치 가족이나 친구처럼 자살자를 옹호하고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살을 이해하는 듯한 태도는 안 됩니다. 자살을 선택한 것은 어리석은 결정이었으며 그로 인해 유족들이 상당히 당혹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사에 언급해야 합니다.”

송 아나운서 사건 당시 그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곧 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 밥도 못 넘길 정도로 힘들어했다는 사실이 보도되고, 이어서 그녀가 남긴 경위서의 내용 ‘가슴이 깨질 것 같은 우울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줄줄이 공개되면서 웹상에서 는 고인에 대한 동정론이 들끓었다. 지나친 애도 분위기는 은연중에 ‘죽을 만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자살에 합당성을 부여한다. 이는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이 죄책감을 덜고 ‘나도 그래도 된다’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살을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으로 여기게 할 가능성도 크다.

어설픈 사회 탓도 마찬가지 이유로 위험하다. 사건 직후 수많은 기사들 중 ‘송지선 아나운서 자살…결국 SNS의 비극이었다’는 제목이 있었다. 자살 보도 기준에는 ‘자살이 사회적이거나 문화적인 변화 내지 타락 때문에 일어났다는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언급을 삼가라’는 내용이 있다.

자살이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가 만든 일이라는 식의 해석은 자살로 인해 야기될 모든 책임에서 당사자를 해방시켜 자살에 대한 마음을 좀 더 가볍게 만들어 주고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격이다. 심하게는 ‘부패한 사회에 항거하는 영웅’이라는 심리까지 심어 줄 수 있다.

혹여 사회 구조상의 문제임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할지라도 언론은 섣부르게 원인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자살은 한 가지 이유가 아닌 대인 관계, 가족 내 불안, 정신 질환, 약물 남용, 선천적 기질 등 수많은 요인이 얽혀 최종적으로 발생한다. 진짜 이유를 아는 것은 당사자뿐이다.

이중 언론이 명백히 밝혀야 할 일은 자살자의 정신적 문제에 관한 것이다. 자살예방협회에 따르면 자살자의 90% 이상이 사망 당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쉬쉬하기 때문이다. 권고 기준에 따르면 ‘고인의 매력이나 명성 때문에 정신건강상의 문제나 약물 남용 문제가 가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살이 슬픔이나 운명 같은 ‘드라마의 영역’이 아닌 ‘뇌 과학의 영역’이라는 것을 주지시킴으로써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


정신적인 문제 짚어 줘야

노컷뉴스는 송 아나운서 사건에 대해 우울증을 전면에 언급한 몇 안 되는 매체 중 하나였다. 기사는 송 씨의 담당 의사 멘트를 인용해 ‘그가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여서 입원 치료를 권했으나 본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퇴원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런 보도는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정신과에 도움을 청해야 할 필요성과 충분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비극적인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계심을 심어 준다.

자살에 대한 기자 개인의 가치관도 점검해야 할 부분이다. 정신과에서는 자살심리치료를 맡는 이들 중 스스로 자살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려한 적이 있다면 그가 절대로 치료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치료자들 사이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이는 저널리스트에게도 해당된다. 자살에 대한 기자 개인의 신념이 사회적으로 건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관련 기사를 쓰지 않는 것이 윤리적이다. 평소 “죽을 사람은 어차피 죽게 돼 있어”라는 식의 가치관을 가진 기자라면 그것이 기사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되게 마련이다.

현재 나와 있는 자살 보도 기준이 규제나 금지가 아닌 권고에 그치는 이유는 언론이 가진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때문이다. 자살은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건이고 매스컴 역시 그것을 알릴 권리가 있으며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나 그렇기 때문에 모든 형태의 보도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실만 전달하는 무미한 보도 필요

특히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유족들의 얼굴 공개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다. 헌법 제 17조 ‘사생활 보호’ 부분에는 ‘언론이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으며, 이어서 ‘사생활 침해를 일으킬 수 있는 타인의 성명, 초상, 음성 등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공표하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의 보도에는 고인을 둘러싼 일반인들의 얼굴과 신상 정보가 여과 없이 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며 이들 중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극소수다. 확실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해 시간과 돈만 낭비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다 보니 언론의 태도에는 점점 더 조심성이 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빈소를 찾는 유명인들의 사진과 울부짖는 유족들의 사진을 경쟁적으로 올리는 등 자살이 불러오는 모든 화제가 마치 장터에서 사고파는 행태처럼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작금의 사태에 대해 “언론사가 자율적으로 권고 기준을 준수하도록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들은 각 언론사에서 권고 기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소극적인 조치 외에도 시정 권고 후 해당 언론사가 이를 공개하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최근 KBS에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경고 조치를 받은 뒤 방송을 통해 사과를 하고 자살 보도에 대한 지침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등의 대책을 세운 바 있다. 이처럼 앞으로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띠는 것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자살 공화국의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의 현재를 생각하면 이는 더욱 시급한 문제다.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렇다면 자극적인 기사에 길들여져 건전한 보도를 외면하는 대중을 언론은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할까? 김현정 과장은 언론이 먼저 제안하고 끌고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권장하는 것은 ‘재미없는’ 보도다.

“제일 좋은 것은 짧고 건조한 보도입니다. 제목에 ‘○○○ 사망’, 그리고 기사 말미에 ‘사인은 자살로 추정’ 정도로만 언급하는 것입니다. 대중이 아무리 더 원하더라도 미디어에서 이런 식의 보도를 계속한다면 기대치는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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