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바란다 - 한국자살예방협회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의사, 한국자살예방협회 대외협력 부위원장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신경정신과 의사,  한국자살예방협회 대외협력 위원장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디어를 통해 자살이 보도된 달과 다음 달의 자살률이
이전의 월별 평균 자살률에 비해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명인의 자살과 관련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언론 보도는
자살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자살 욕구를 강화시킬 수 있다.




자살은 전염된다. 자살의 전염은 다른 질환과 달리 자살에 관한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보도됨으로써 집단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실증적 사례 중 하나가 1962년 8월에 발생한 마릴린 먼로의 자살이다. 그녀가 사망한 달에만 303건의 잇따른 자살이 있었는데, 이러한 자살률은 전에 비해 12%나 증가한 것이었다. 유명인의 자살과 이에 따른 자살의 전염성을 일컫는 베르테르 효과가 널리 알려지게 된 뒤, 언론 매체의 자살 사건 보도가 자살률 증가와 연이은 모방 자살 사이에 일정한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그림1>은 필립(1974) 등이 1947년에서 1968년 사이에 발생한 35건의 자살 사건들을 분석해 자살 보도 전후 4개월간의 자살률 변화를 조사한 것이다. 이 결과를 보면 미디어를 통해 자살이 보도된 달과 다음 달의 자살률이 이전의 월별 평균 자살률 수준에 비해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명인과 동일 연령대서 모방 증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서도 유명 연예인의 자살 사망 이후에 자살률의 급격한 증가가 확인됐다. Fu 등(Fu et al 2009)은 유명 연예인이 자살로 사망한 직후 한 달간의 자살률을 분석했는데, 2003년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이 자살로 사망한 직후 한달 동안의 자살률이 2001년과 2002년 두 해 같은 기간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자살 위험도가 28%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하게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 씨의 자살 사망 후 한 달 동안의 자살률을 이전 두 해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자살 위험도가 2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점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자살한 유명 연예인이 시도한 것과 동일한 유형의 자살 방법, 그리고 유명인과 동일한 연령대와 성별에서 자살 위험도가 더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 이것이 모방 자살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자살로 사망한 사람에 대해 대중의 관심이 클수록 자살 사망률도 더 크게 증가한다.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는 일반인의 자살에 대한 보도에 비해 자살률을 14.3배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방 자살이 증가하는 경향은 자살로 인한 사망이 널리 알려지고, 자살 행위가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경우에 더 높아진다. 대표적인 예가 1774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미친 영향이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랑으로 스스로에게 총을 겨눈 젊은이의 이야기가 소설을 통해 낭만적으로 그려졌고, 이후 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 총으로 자살하는 사례가 폭증하게 됐다. 이러한 자살의 사회적 전염성은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 더 문제가 된다. 굴드와 셰이퍼(1986) 등은 미국에서 자살이 묘사된 텔레비전 드라마 세 편이 방영된 이후 자살률의 변화를 분석했는데, 자살한 자에 초점이 맞추어진 두 편의 드라마가 방영된 후에는 자살률이 증가한 반면, 자살 사건 이후 슬픔에 빠진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 다른 한 편의 드라마가 방영된 후에는 자살률이 증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소년이 성인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

자살에 취약한 사람이 실제 자살을 결행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디어의 부정적인 보도 행태에 관해서는 다양하게 알려져 있다. 유명인의 자살과 관련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언론 보도는 자살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자살 욕구를 강화시킬 수 있다. 대중의 관심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선정적 보도를 하거나, 자살자의 개인적인 침실이나 자살 장소와 관련된 시각적 이미지를 언론 보도에 활용하는 경우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증가한다.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나 행동 기제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히 보도하는 것도 자살에 취약한 사람들을 실제 행동으로 옮아가게 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자살을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묘사하는 보도 행태도 모방 자살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자살이나 자살로 사망한 사람을 미화하거나 영웅시하는 보도는 자살 행동 확산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이와 같은 보도 태도는 자살 위험성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 수 있고, 자살 억제 충동을 약화시켜 실제 행동을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위기 상황에 놓여 있거나 심리적인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유명인의 자살 보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자살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더 높다. 청소년 중에서도 특히 텔레비전을 많이 보거나, 과거에 자살 시도 경험이 있거나, 우울증상이 있는 경우는 자살 위험성에 더 크게 노출된다. 일반적으로 사회 분위기가 침체된 상황(예를 들어 높은 실업률과 이혼율, 사회적 혼란 시기)에서 미디어의 자살 보도가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도 커지게 된다.


‘자살 보도 권고 기준’ 2004년 발표

한국자살예방협회는 지난 2004년 한국기자협회, 보건복지부 등과 함께 자살 보도에 관한 ‘언론 보도 권고 기준’을 제정해 발표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 자살예방협회 홈페이지(www.suicideprevention.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핵심적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자살자와 그 유족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자살자의 이름과 사진, 자살 장소 및 자살 방법, 자살에 이르게 된 자세한 경위를 묘사하지 않아야 한다. (3)충분하지 않은 정보로 자살 동기를 판단하는 보도를 하거나, 자살 동기를 단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4)자살을 영웅시 혹은 미화하거나 삶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오해하도록 보도해서는 안 된다. (5)자살 현상에 대해 보도할 때에는 확실한 자료와 출처를 인용하고 통계 수치에 대해 주의 깊고 정확하게 해석해야 한다. (6)자살 사건의 보도에 있어서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자살 사건을 다루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유명인의 자살에 대한 언론 보도 내용과 보도 행태가 자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심각성을 인지해야 한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알려야 할 부분도 있다. 대중의 생명 보호와 건강 증진을 위한 정보에 대해서는 자세히 보도해야 한다. 자살 그 자체보다는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자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우울증의 진단과 치료에 관한 내용도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자살로 인해 초래된 부정적 결과나 가족과 친구들이 겪게 되는 고통에 관해서도 함께 알려야 한다. 자살의 위험 징후나 자살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치료를 받고 자살 위기를 넘긴 사례들에 대해서도 함께 전달해야 한다.

자살 보도와 관련된 언어 사용에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가능한 한 머리기사에서 자살을 언급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유명인의 사망 원인은 머리 기사가 아닌 본문에서 언급하는 것이 낫다. 또한 기사 본문에서는 사망자에 대해 ‘자살’ 또는 ‘자살하다’라고 쓰기보다는 ‘자살로 사망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살 ‘사망’으로 기술해야지, 자살 ‘성공’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자살률에서 ‘증가’라고 언급하는 것이 실제보다 극적인 증가를 의미하는 ‘유행적’이라는 표현보다 더 정확하다.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지난 2006년부터 2010년 사이에 신문 및 텔레비전 뉴스 보도의 자살 보도 권고 기준 준수율을 모니터링했는데, 결과는 다음과 같다. 2006년 신문 보도 중에서 보도 권고 미준수 사례는 자살 관련 전체 기사 151건 중 48건으로 39.7%를 차지했다. 같은 해 텔레비전 뉴스 모니터링에서는 자살 관련 전체 기사 174건 중 84건(48.3%)이 보도 권고 기준 미준수에 해당했다. 이러한 미준수율은 신문 및 텔레비전 뉴스에서 각각 2007년 29.1% 및 32.5%, 2008년 40.3% 및 47.7%, 2009년 60.1% 및 57.5%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에는 자살 관련 신문 보도 중 54.4%(전체 기사 263건 중 143건), 텔레비전 뉴스 중 74.2%(전체 기사 93건 중 69건)가 언론 보도 권고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모니터링되었다.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이 제정 발표된 후 지난 5년간의 준수율이 향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향후 언론에서 자살 관련 보도 시 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비관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자면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계속하는 한 자살의 전염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살의 전염성에 관한 한 연구에서는 신문사의 파업 기간 동안에 자살과 관련된 보도가 줄어들었고, 이것이 자살률의 감소와 관련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Blumenthal S, 1973). 더욱이 신문이나 텔레비전 같은 전통적 미디어 외에도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자살이 사회적으로 전파되는 것을 완전히 차단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에 가까울 것 같다.

그러나 긍정적인 이야기도 분명히 있다. 1978년 오스트리아 빈의 지하철이 완공된 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하철 철로로 뛰어들어 자살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지하철 투신 자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신문 지상에 그래픽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러자 비슷한 유형의 자살이 급증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자살예방협회는 언론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뒤 이를 준수해 줄 것을 언론계에 요청했고, 신문 지상에 지하철 투신 자살에 관한 내용이 더 이상 선정적으로 보도되지 않았다. 이후 지하철 투신 자살은 6개월에 걸쳐 80%가 줄어들었고, 이후에도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한다.

유명한 록그룹 너바나의 리드 싱어 커트 코베인은 1994년 권총 자살로 사망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그의 자살에 관한 언론의 보도가 자국 젊은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연구했다. 코베인의 자살은 모방 자살을 유발할 만한 요소가 충분했다 (유명인이라는 점과 그의 자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는 것 등). 그러나 그가 자살한 해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자살률은 전년(1993년)에 비해 낮은 수준이었고, 권총을 이용한 자살도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은 전파력 심각성 인식해야

모방 자살의 억제 효과는 죽은 코베인의 부인이었던 코트니 러브의 발언 때문이라고 판단됐다(Martin & Koo, 1997).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낭만적으로 덧칠하지 않았고, 자살에 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코베인이 자살하기 전에 약물 문제가 있었고, 실제 자살로 죽기 이전에도 자살 시도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이 유명 록스타의 죽음을 무미건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비록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내재된 정신건강상의 문제나 약물 남용의 문제 등을 함께 보도하는 것이 자살의 사회적 전파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률과 자살 증가율은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이다. 1일 평균 42.2명이 자살하고, 34분마다 1명이 자살로 생을 달리하고 있다. 자살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이지만, 자살의 원인에는 분명히 사회적 요인이 함께 관련돼 있다. 또한 언론을 통한 자살의 사회적 전파력은 다른 어떤 질환의 전염성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자살의 예방은 의료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살의 전파 가능성, 특히 청소년이나 취약 계층으로의 전파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에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비극이 또 다른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언론매체 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보건기구 및 세계 각국의 정신건강전문가 그룹에서는 자살 관련 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이것은 언론 보도에 대한 검열과 강요가 아니다. 자살과 관련된 사실과 정보를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은 언론매체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동시에 자살 보도에는 대중의 건강 증진과 사회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정보들도 담겨야 한다. 베르테르 효과에 의한 자살의 사회적 전염을 예방하기 위한 핵심적인 방법 중 하나는 유명인 자살의 사회적 전파력을 언론매체가 심각하게 인지하고 책임 있는 보도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언론
매체는 자살 예방의 첨병이 돼야 한다.


<참고 문헌>
Martin, G. & Koo, L. (1997). Celebrity suicide: Did the death of Kurt Cobain influence young suicide in Austrailia? Archives of Suicide Research 3, 187-198.
Phillips, D. P. (1974). The influence of suggestion on suicide: Substantive and theoretical implications of the Werther effect.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39, 340-354.
Stack, S. (2000). Media impacts on suicide: A quantitative review of 293 findings. Social Science Quarterly, 81, 957-971.
Stack, S. (2003). Media coverage as a risk factor in suicide. Journal of Epidemiology and Community Health, 57, 238-240.
Fu K et al. (2009). Estimating the risk for suicide following the suicide deaths of 3 Asian entertainment celebrities: A metaanalytic approach. Journal of Clinical Psychiatry, 70, 869-878.
Sudak H et al. (2005). The media and suicide. Academic Psychiatry, 29, 495-499.
Gould, M. S. (2001). Suicide and the media. In H. Hendin & J. J. Mann (Eds.), Suicide prevention: Clinical and scientific aspects(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pp. 200-224). New York: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Gould M & Shaffer (1986). The impact of suicide in television movies: evidence of imitation.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315, 690-694.
Blumenthal S et al. (1973). Suicide and newspapers: a replicated study.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130, 468-471.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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