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디지털포럼(SDF) 2011
김용철 SBS 미래부 차장


지난 5월 25일 새벽 3시 30분 미국 CNN 방송의 전 앵커 래리 킹은 78
세의 노구를 이끌고 난생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뉴욕을 출발한 킹은 편서풍의 도움으로 예정 시간보다 조금 일찍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킹은 일등석 안까지 영접을 나온 대한항공 요원의 안내로 입국 수속을 마친 뒤,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SBS 미래부로 향했다.

킹과 킹의 동생 그리고 프로듀서, 이렇게 셋으로 이뤄진 킹 일행은 고급 세단과 SUV에 나눠 타고 새벽 어둠 속을 달렸다. 킹이 평소 좋아하는 SUV에 몸을 싣고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숙소인 서울 광장동 W호텔이었다. 한강을 내려다보며 밝아 오는 동녘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오전 7시가 되자 서울디지털포럼 스태프들이 문을 두드렸다.


래리 킹 “기술 발달해도 직접 접촉이 중요”

서울디지털포럼 2011의 첫날 기조연설을 위해 킹이 향한 곳은 분장실인 워커힐 아이다룸. 분장사는 메마른 킹의 피부를 적셔 가며 얼굴 만들기에 나섰다. 나이 든 킹의 피부색을 방송용으로 바꾸는 분장은 오래 걸렸다. 이어 SBS 윤세영 회장을 비롯한 VIP들과 미팅을 하고, 8시 에는 포럼이 열리는 비스타홀로 향했다.

제8회 서울디지털포럼 개막식이 시작된 것은 오전 8시 20분. SBS TV를 통해 생방송 되는 가운데 래리 킹은 8시 50분 첫 기조연설에 나섰다. “한국에 오게 다아 영종입니다(한국에 오게 돼 영광입니다).” 대공황이 유럽과 미국을 휩쓸던 1933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 근처에서 유대인 이민자의 가족으로 태어난 킹은 애써 서투른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청중들과의 연결에 나선 것이다.

1,000여 명이 홀을 가득 메운 가운데 진행된 기조연설과 질의응답에 이어 킹은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했다. 200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은 인터뷰의 달인 킹에게 뜨거운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기자회견에 이어 SBS 한수진 앵커와의 대담, SBS 경영진과의 오찬까지 잠시 쉴 틈도 없이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한숨 돌린 래리 킹의 일정은 저녁 7시 연사 만찬으로 재개됐고, 만찬은 10시가 돼서야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은 60년째 세월이 멈춰 있는 판문점을 견학하고 네트워크 만찬에서 디지털 포럼 참석자들과 건배를 주고받았다. 마지막 셋째 날 오전 10시 숙소인 W호텔을 떠나기 직전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와의 짧은 인터뷰로 킹의 한국 일정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 사이의 직접 접촉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뉴욕 사무실에서 위성으로 연결해도 되는데 제가 왜 한국에까지 왔겠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위험에 맞서십시오. 그러면 연결을 할 수 있습니다. 저널리즘은 5W1H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이것이 전부입니다.” 래리 킹은 이렇게 57년 동안의 방송 인생을 통해 얻은 지혜를 한국 땅에 쏟아냈다.


집단지성을 통해 진화 속도 더 빨라져

인류 문명의 역사는 연결의 역사였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100명 남짓한 단위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연결의 범위는 그만큼 작았다. 문자가 발명되고 농경사회가 되면서 대규모 도시가 생성되기 시작했고, 산업혁명 이후 수백만 또는 수천만의 도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연결의 규모는 곧 문명의 고도화로 이어졌고, 연결의 규모가 커질수록 문명 발달의 속도도 빨라졌다. 연결의 수단인 미디어는 문명 형성에 꼭 필요한 핵심 기술이었다.

무선통신 기술의 발달로 이제 70억 지구인이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는 초(超)연결사회가 됐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급속히 확산하고,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스스로 인지 능력을 갖춘 똑똑한 스마트 기기, 대용량 컴퓨터가 없이도 언제 어디서나 데이터와 영상은 물론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꺼내 쓸 수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더욱 분간하기 힘들게 할 4세대 이동통신(LTE) 등 첨단 정보통신 기술은 초연결사회를 구현했고, 이제 집단 지성을 통해 스스로 진화의 속도를 더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들은 사람들의 고된 노동을 대신하던 단계를 넘어 스스로 지능을 가진 생명체로 진화하고 있다. 한 개인 또는 일부 소수가 주도하던 지적인 탐험은 이제 사이버 세계를 통해 여럿이 함께 만들어가고 스스로 진화하는 위키(wiki・하와이말로 ‘빨리빨리’)의 세계가 됐다. 지난해 10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작은 도시 시디부지드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이 이집트와 중동을 거쳐 순식간에 베이징으로 확산되듯이 디지털 세상을 통한 연결 혁명은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 5월 25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제8회 ‘서울디지털포럼(SDF) 2011’ 개막식 모습.


인간의 행동을 통제할 수준까지 발전

“뉴미디어는 현대인들의 모닥불입니다(Modern media are just our current campfires).” 서울디지털포럼 2011의 셋째 날 기조연설에 나선 세계 여성계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말대로 손안의 작은 스마트 기기들은 사람들의 혼을 빼내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 소통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 문명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정보의 바다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지식은 어디로 갔는가(Where is the knowledge that we lost in information… T.S. Eliot).” 둘째 날 기조연설에 나선 니컬러스 카의 말대로 인터넷은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데이터에서 정보, 지식 그리고 이제는 지혜까지 제공하는 컴퓨터를 보고 마냥 자랑스러워하기에는 디지털 세상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SDF 2011에 주요 연사로 참여한 복잡계 네트워크의 창시자 앨버트 라즐로 바라바시는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남기는 디지털 데이터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할 정도로 풍
부해졌다며, 앞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하는 단계를 넘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경고 아닌 경고를 던지고 있다.

초연결사회. 남미에 있는 작은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베이징에 폭풍우를 몰고 온다는 ‘나비효과’는 이제 진부한 단어가 됐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 위기는 아직도 세계 경제를 옥죄고 있고, 동일본의 쓰나미로 촉발된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독일의 원자력 발전소들을 모두 멈추게 할 태세다. 사이버 테러와 해킹, 프라이버시 침해, 이제 우리는 소리 없이 다가온 빅브러더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날 공간을 잃어버렸고, 초연결사회의 위험은 갈수록 대형화 · 광역화되고 있다.

“우리는 대화할 때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이 싸워 왔습니다. 더 많은 연결이 필요합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사마 빈라덴 등 세계적인 악당들을 만나 그들이 왜 악한의 행동을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는 래리 킹의 말처럼 오늘날의 미디어는 사람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진정한 연결자가 돼야 한다. 그런 진정성과 개방성이 녹아 있는 대화를 통해서만이 난마처럼 엮여 있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하는 미래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비공개로 진행되는 첫날 연사 만찬과 둘째 날 네트워크 디너를 포함해 32개 세션, 68명의 연사, 그리고 중복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2,000여 명의 현장 참여자들이 꾸민 서울디지털포럼 2011은 이런 희망의 메시지를 남기고 폐막했다.

서울 여의도에서 목동으로 사옥을 이전한 SBS는 2004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디지털 방송을 시작했다. 영상을 마그네틱테이프에 녹화하고 아날로그 선형 편집기로 편집해 방송하는 전통적 프로그램 제작 방식에서 탈피했다. 디스크와 컴퓨터 스토리지에 영상을 저장하고, 비선형 컴퓨터 편집기로 편집해 전송하는 방송의 대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2004년 출범… 매년 세계 명사들 초청

서울디지털포럼은 이 같은 디지털 방송 시대를 맞아 디지털 기술을 전파하고 선도하는 국제 포럼으로 2004년 5월 7일 공식 출범했다. 포럼의 주요 테마는 ‘TIME’. 기술(Technology)과 정보(Information), 미디어(Media),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분야의 세계적 명사들을 초청해 식견을 공유함으로써 지식 격차를 해소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며, 경제발전에 기여하자는 취지였다.

SBS 목동 본사에서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회 서울디지털포럼의 주제는 ‘컨버전스 혁명’(Digital Convergence), 초대 기조 연사였던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미국 MIT 미디어랩 창립자 겸 회장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디스플레이가 될 것이다. 모든 일상 생활용품들은 컴퓨터적인 요소가 포함될 것이며, 우리는 컴퓨터를 먹고 입고 마시며 살 것”이라며, 이제현실이 돼 모두가 당연시하고 있는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를 예고했다.

2005년 ‘쿠오바디스 유비쿼터스’(Quo Vadis Ubiquitous)를 주제로 열린 제2회 SDF부터는 규모 있는 호텔에서 열렸고, 현장 참여자들도 1,000여 명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2006년 ‘디지털 인텔리전스’(Digital Intelligence), 2007년 ‘미디어 빅뱅(Media Big Bang)-세상을 바꾼다’, 2008년 ‘상상력(Imagination)-기술 정보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우주’, 2009년 ‘스토리(Story)-새 장을 열다’, 2010년 ‘신르네상스(Renaissance Now)-또 하나의 세상을 깨우다’로 서울디지털포럼은 지평을 넓혀 갔다. 초기 SDF의 주제가 기술적인 면에 치우쳤다면 최근 SDF는 기술이 초래하는 사회문화적인 변화와 파장, 그리고 기술에 내재한 철학과 라이프스타일로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제8회 서울디지털포럼 개막식 연설을 하는 우원길 SBS 사장.

미국 CNN방송 전 앵커 래리 킹의 기조연설.


세계 언론사 중 유일하게 미래부 운영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SDF 연사들의 면면도 다양해졌다.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사장(2006년),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2007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2008년) 같은 세계적인 IT 업계 거물들은 대부분 서울디지털포럼에 다녀갔다. 2005년 기조연설자였던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금속활자가 한국에서 처음 발명됐다는 ‘불편한 진실’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진이 계속됐던 2009년에는 위기를 미리 예고해 일명 ‘닥터 둠’으로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기조연설에 나서 세계 경제가 ‘경제위기의 끝’에 와 있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3D 열풍으로 2차원의 은막이 무너져 내렸던 2010년 SDF에서는 영화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5년 이내에 안경을 쓰지 않고 볼 수 있는 3D 시대가 오겠다고 말하면서 팬들을 열광시켰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서울디지털포럼에 기조연설자로 참여해 달라는 SBS 미래부의 요청을 받고, 세계적인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미래부(Future & Vision Desk)가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지만 미래부가 있는 곳은 SBS밖에 없었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미래부라는 이름도 그렇지만 방송사로서 세계적인 포럼을 운영하는 곳도 SBS가 유일하다. 기자 6명과 프로그램 매니저 1명, 피디 1명, 웹 디자이너 1명으로 구성된 단출한 부서가 봄에는 2박 3일의 서울디지털포럼, 가을에는 국내 어젠다를 중심으로 미래한국리포트라는 포럼을 개최해 내는 데 놀라는 사람
도 많다.

서울디지털포럼은 행사 기간 내내 오전 한 시간동안 SBS TV를 통해 생방송된다. 3일 동안의 모든 포럼 내용은 SBS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 웹 캐스팅된다. SBS 8시 뉴스는 포럼 전후 일주일 동안 포럼 관련 내용을 집중 보도하고, 하루 동안의 행사를 한 시간 하이라이트로 편집해 당일 밤 방송한다. 포럼 관련 한 시간 다큐멘터리, 시사 토론, 앵커 대담을 통해 주요 이슈를 심층 논의한다. 미디어 파트너로서 CNBC는 SDF가 열리는 서울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을 연결해 포럼의 내용과 연사 인터뷰를 방송한다.

미국 여성운동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기조연설.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IT 전문가 니컬러스 카의 기조연설.

SDF, ‘디지털 세상을 보는 뉴플랫폼’

2011년 워커힐 포럼 현장에서 SDF에 참여한 사람은 2,000여 명. 2만여 명은 인터넷을 통해 SDF가 전하는 메시지를 함께했다. 해가 갈수록 현장 참여자들의 포럼 참여도도 높아져 첫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빈 좌석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매년 포럼 장을 찾아 그해의 강의 노트를 준비하거나 사업 구상에 자료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20년 전 ‘삑~~~’ 소리를 내며 몇 개의 문자를 주고받던 PC통신은 인터넷과 무선 이동통신으로 발전했고, 이제 이동하면서 몇 기가바이트의 음성과 영상을 자유자재로 주고받는 ‘스트리밍’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올가을 4세대 이동통신 LTE가 상용화 되면 자유자재로 화상통화를 할 수 있게 되고, 3D를 넘어 홀로그램 영상을 실감나게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에서 보듯 스위치만 누르면 상대방이 눈앞에 나타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초연결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와 아이디어, 지식 즉 집단지성을 함께 나누는 클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을 가능케 하고 있다. 그리고 말 그대로 꿈속에서나 존재하던 미래를 재빠르게 현실 세계에서 구현하고 있다.

서울디지털포럼은 이처럼 꿈이 현실로 구현되는 모습을 기록하는 저널리즘이자 디지털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천착하고 함께하는, 미래를 향한 제 3의 길을 제시하는 화타가 되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모방을 넘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창조자의 길을 요구받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고,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되기 위해 SBS 보도국 미래부 식구들은 앞으로 우리가 맞게 될 10년 후를 꿈꾸고 있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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