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93번째 나라’ 남수단의 아이들

박영대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Welcome 193rd country of the world’(세계 193번째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7월 9일 탄생하는 독립국가 남수단 공화국의 수도로 예정된 주바의 공항 청사엔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남수단은 1996년 호세 쿠에르보 데킬라라는 회사가 시작한 독특한 캠페인 전략에서 비롯된 카리브해 인구 1만여 명의 쿠에르보 황금 공화국에 이어 193번째 나라가 된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국가인 수단은 북부 아랍계 민족과 남부 아프리카계 민족이 51년 간 치열한 내전을 치렀다. 그 결과 올해 1월 국민투표를 거쳐 남수단이 독립을 선언했다.

새로운 국가 탄생을 준비 중인 남수단에는 평화가 찾아왔다는 기쁨과 북수단 정부의 지배에서 벗어나 스스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했다. 하지만 내전의 불씨는 남아 있어 북수단과 남수단의 경계 지역인 아비에이를 중심으로 무력 분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독립을 앞둔 남수단 현지 르포 취재는 가는 길부터 녹록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카타르 도하를 거쳐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 도착한 뒤 다시 국내선을 타고 남수단의 수도 주바로 가는 데 이틀이 걸릴 정도로 취재 일정이 빡빡했다. 공항에서 까다로운 입국 수속을 거쳐 주바에 도착했지만 차 안에서 거리 풍경을 찍는 것도 사복 경찰에게 제지를 당할 정도로 사진 취재가 쉽지 않았다. 특히 북수단의 게릴라 공격에 대비해 주바 외곽 대부분 마을에는 실탄을 장전한 군인들이 상주해 있었다. 도로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에서는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주바에서 미스터 김으로 통하는 한국인 김기춘 씨의 도움으로 남수단 공보부에서 취재 허가증을 받고 나서야 어느 정도 취재가 수월해졌다. 물론 군사·산업 시설 사진 취재는 허락되지 않았지만 이방인의 카메라만 보면 취재 허가증을 요구하는 군인과 경찰의 요구에는 적절히 대처할 수 있었다. 고 이태석 신부의 선교 활동을 다룬 ‘울지마 톤즈’, MBC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의 눈물’ 등으로 높아진 독자들의 눈높이를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아프리카에서는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다 작품이 된다”는 선배들의 말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현지 르포나 포토다큐를 시작할 때는 머리로 이것저것 그림을 그리며 쉽게 접근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열심히 발품을 팔고 진심을 담아 사진을 찍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결과물이 나올 때가 많다.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앵글에 넣고 싶은 작은 욕심에 주바에서 이틀간 숨 가쁘게 취재를 마치고 딘카족 출신의 가이드 찬 다우의 고향인 파라크로 향했다. 이곳은 비포장도로를 따라 3~4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였다. 현대식 건물은 하나도 없고 흙으로 지은 전통 가옥이 대부분이었다.

5월 24일 기자가 다우와 함께 찾아간 파라크. 오전 7시가 되자 어린이들은 유니세프(UNICEF) 로고가 새겨진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20여 분을 걸어 학교에 도착했다. 아침이지만 섭씨 40도가 넘는 땡볕 아래서 아이들이 맨발로 공을 차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운동장 한쪽 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칠판 앞에서는 예닐곱 살쯤 되는 어린이 30여 명이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보다 더 뜨거운 학구열로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학교의 아이들처럼 학교에 갈 나이이지만 자기 머리보다 몇 배나 큰 옥수수 자루를 머리에 이고 수 킬로미터 떨어진 시장으
로 옥수수를 팔러 가는 아이들도 도로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마을에는 전기, 수도시설은 물론 우물조차 없었다. 전날 밤 내린 비로 물이 가득고인 길가 웅덩이에서 물을 긷는 아이들도 있었다.



독립이 다가오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 역시 커졌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듯했다. 다음 날 주바 외곽 도로변에서 쇠망치로 돌을 깨는 한 여인 을 만났다. 5년째 돌을 깨서 파는 그녀에게는 6명의 자녀가 있었다. 아이들은 돌을 가지고 놀거나 엄마를 따라 망치질을 했다. 항상 어깨가 아프다는 그녀는 한 바구니에 5파운드(약 1,500원) 하는 돌을 팔아 생활하는데 하루에 한 개도 팔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슈퍼마켓에서 일하지만 한 달 월급이 300파운드(약 10만 원)에 불과하다. “독립 투표를 했는데 앞으로 생활이 더 나아
질 것 같으냐”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난이 갑자기 나아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잘살게 되는 날이 곧 올 것”이라며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다.



9박 10일간의 남수단 취재는 남북 내전 때 버려진 녹슨 탱크를 놀이터 삼아 노는 어린이들 사진을 끝으로 마무리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지만 의욕만 앞서 더 다양한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유니세프의 구호품인 가방과 옷을 입고 나무 밑 흙바닥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사진이 세계 아동 구호를 위해 노력하는 유니세프 모금 활동에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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