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언론통신협의회(IPTC) 정기총회 참관기

김규회 동아일보 지식정보팀장

오! 베를린.

서울에서 베를린까지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출발 전에는 독일발 채소류의 슈퍼박테리아 공포로, 출발 후에는 12시간이 넘는 지루한 비행길로 더 멀게 느껴졌다. 도착 후 베를린과의 첫 만남은 낯설지 않았다. 생각보다 친근하고 포근했다. 1970년대 우리 간호사와 광부들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서일까.

독일은 낮이 길다. 새벽 3, 4시쯤 창에 비친 햇살이 우리나라 아침쯤으로 착각될 정도로 밝다. 저녁 10시가 넘어야 해가 진다. 그제야 먼 이국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와의 시차는 서머타임 때 7시간, 보통 때는 8시간 정도다.

이번에 참가한 회의는 국제언론통신협의회(IPTC·International Press Telecommunications Council) 정기총회(AGM·Annual General Meeting)다. IPTC는 6월쯤 총회를 겸해 결산·예산 수립, 임원 선임 등을 결정하는 AGM을 가진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AGM은 올해로 46번째다. 베를린 AGM은 6월 6일부터 9일까지 4일간 열렸다. 베를린에서 IPTC 회의가 개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PTC는 AGM 말고도 봄(3월)·가을(10월) 두 번의 정기회의를 연다.


한국언론진흥재단도 회원으로 참여

IPTC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영국에 등록된 비영리 법인으로 1965년에 창설됐다. IPTC는 미디어 기술 분야의 대표적인 표준화 기구다. 표준위원회와 워킹그룹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표준을 제정하고 결과를 발표한다. 이외에 ‘Mirror’(newsletter, bimonthly), ‘Spectrum’(annual report) 등의 매체도 간행하고 있다.

IPTC는 남미를 제외한 전 대륙이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을 비롯해 AP·AFP·톰슨로이터·뉴욕타임스 등 70여 개의 세계 주요 미디어 기업과 솔루션 벤더들이 IPTC 멤버다. 멤버는 투표권이 있는 정회원(voting member)과 의결권이 없는 준회원(associates member)으로 구분한다. 정회원은 기여율 계좌(contributary units) 수에 비
례해 총회에서 의결권 등의 권한을 갖는다. 쿼터에 따라 권한에 차별을 두는 IMF와 유사한 시스템이다. 계좌가 많을수록 권한이 많다.

현재 AFP가 3계좌로 가장 많고, 한국언론진흥재단·AP·DPA·일본신문협회·톰슨로이터·세계신문협회 등이 2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의 신화통신과 일본의 교도통신은 각각 1계좌다.


                                                                                  IPTC 회의는 토론식 워크숍으로 진행됐으며 시종 진지했다.

교황 선출 방식으로 최종안 확정

이사회는 회장·사무총장을 포함해 현재 8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이사진(부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자랑할 만하다. IPTC는 유럽이 주류다. 아시아·중동 지역은 비주류다. 회원사가 대부분 유럽에 집중해 있고, 회의도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개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미국이 IPTC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IPTC 총회에는 특별한 의전이 없다. AFP 국제 기술담당 이사인 스테판 게리요 회장의 인사말이 전부였다. 그는 “2017년이 되면 유럽의 인쇄 신문들은 문을 닫게 되는 위기를 맞을 것이며 그 여파는 북미 신문들에도 미쳐 세계적인 미디어 빅뱅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흐름에 IPTC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곧 간단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Let me introduce myself. This is the first time….” 몇 마디 주섬주섬 말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국제회의에서 영어력(力)은 곧 국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초라하지만 이게 내가 AGM 기간에 한 공식 스피치가 됐다.

소개 시간이 끝나자 본론에 들어갔다. 20여 개국에서 온 내로라하는 30여 명의 전문가가 열띤 토론을 벌였다. IPTC 회의는 토론식 워크숍의 전형을 보여 준다. 둥그렇게 서로 마주 보게 앉은 의자도 그렇고, 사회자가 순서와 필요한 부분만 간략하게 설명할 뿐 멤버 간 토론에 관여하지 않는 것도 그렇다. 워킹그룹 팀장이 그동안의 경과에 대해 발표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코멘트를 하는 식이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토론을 한 후에 쟁점들을 하나하나씩 마무리한다. 손을 들어 찬반을 결정하기도 한다. 최종안을 확정하는 방식이 꼭 교황을 선출하는 방식과 흡사했다.

                                                 독일 DPA 편집국의 내부 모습. 소통을 위해 타원형의 뉴스센터를 중심에 두고 취재 부서를 마주 보도록 배치했다.

소통 고려한 DPA 편집국 구조 특이

IPTC 회의에서 노트북은 필수 장비다. 노트북 없는 회의 참석은 때 타월 없이 목욕탕에 가는 것과 같다. 노트북은 말귀를 따라잡을 수 있는 요긴한 도구다. 어떤 멤버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밤을 새워서라도 끝장 토론을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제껏 봐 왔던 세미나·회의와는 전혀 다른 생경한 사고(思考)였다. 흔히 보던 회의를 위한 회의가 아니었다. 전문가 참여 실무형 국제회의가 바로 이런 것인가 싶었다. 멤버들은 휴식·점심 시간에도 온 비즈니스(on business) 상태를 유지했다.

출근식 회의는 총회 기간 내내 계속됐다. 회의장은 숙소에서 100m가량 떨어져 있었다. 우리 일행은 매일 아침 걸어서 회의장으로 갔다. 회의는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6시쯤 끝났다. 당일 발표자는 해당 세션에만 참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회의는 시종일관 진지함, 그 자체였다.

‘BMT(Business Meets Technology) Day’는 이번 총회의 하이라이트였다. BMT는 DPA(독일 통신사)가 주최했다. 이날 일정은 오전과 오후의 세미나, 그리고 만찬으로 이어졌다. 여러 명의 발표자가 나와 뉴스 산업의 미래에 대해 설명했다. 이 중 NLA(News Licensing Agency)의 발표는 큰 주목을 받았다. 영국의 8개 신문사가 출자해 2006년 설립한 NLA는 정부 차원의 지원으로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있었다. NLA는 영국 내 약 150개 신문사의 기사를 전송받아 콘텐츠 단위의 PDF 서비스를 대행하고 있는데, 영국 내 약 8,000개(전체의 89%) 기업이 NLA의 서비스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20여 개의 프랑스 신문사가 NLA에 서비스를 의뢰했다고 한다.

주빈인 DPA는 자사 편집국 견학 코스를 마련했다. 편집국은 한 층의 전체 길이가 무려 약 100m(폭약 16m)에 이르는 사무실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 중심부에 본부 격인 타원 형태의 뉴스센터를 두고 정치·경제·스포츠·연예 등 취재 부서를 마주 보게 해 상호 커뮤니케이션(샤우팅해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거리)이 원활하도록 배치한 점이 퍽 인상적이었다.

선상 만찬은 또 다른 베를린을 느끼게 해 주었다. 뱃길에 오르니 흥이 절로 났다. “슈프레 강 위 선상에/ 낯선 이방인이/ 창가에 펼쳐진/ 물길을 보며/ 세상을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하고/ 지구를 생각하고/ 홀로 담는 추억 보따리가/ 더욱 정겹다.”


뉴스 유통의 기술표준은 생존에 필수

베를린 총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DPA가 개최한 BMT는 향후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돼 큰 도움이 됐다. BMT는 오프라인 신문사 붕괴에 대비한 IPTC의 역할을 재조명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히 온라인계에서 활용되는 콘텐츠의 의미기반(Semantic base)을 강화하기 위한 기술인 rNews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됐다. EventML을 최초로 업무에 적용한 DPA의 실제 응용 사례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다. EventML은 G2(NewsML의 최신 버전) 표준의 하나로 취재가 수반(취재 계획도 포함)되는 이벤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유통의 기술표준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표준 없이는 발전도 없다. 표준에 대한 필요성은 어느 산업에나 존재한다. 뉴스 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뉴스는 진행형이다. 이 순간에도 생성된다. 뉴스를 글로벌하게 공유하기 위한 뉴스 교환 표준 포맷이 필요한 이유다. 표준은 그때그때 재해석되고 재규정돼야 한다. 그래서 표준의 팔로업(follow-up)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제적 감각을 지닌 전문 엔지니어 양성이 필요하다. 주요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은 하나같이 연구개발(R&D) 투자에 인색하지 않았다. 한국은 그동안 IPTC 총회에 적극 참여해 한국의 특수성이 반영된 표준 제정에 노력을 기울여 왔고,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 2009년 IPTC 서울 총회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뉴스ML포럼의 역동적인 활동을 IPTC가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글로벌 표준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자기 연구와 IPTC 멤버 간 소통이 지속돼야 한다. ‘The show must go on.’ 한국의 NewsML 연구는 계속된다. 베를린에서의 여정은 짧았지만 IPTC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보는 것이 아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되새겨본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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