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서울신문 어문팀 차장, 한국어문기자협회장


‘이’(以)는 우리말 속에 깊숙이 박혀 있다. ‘이전(以前), 이후(以後), 이상(以上), 이하(以下)….’ 그럼에도 ‘전(前), 후(後), 상(上), 하(下)’ 등처럼 의미가 선명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홀로는 쓰이지 않는다. 우리말 어휘 목록에 없다는 얘기도 된다. 그래서일까. 이 ‘이’는 관심 밖인 듯하다. 예를 들어 ‘이전’이란 말에서 ‘전’만 보고 ‘이’는 본체만체하는 예가 흔하다.

“설(2월 18일) 이전에 6자회담이 속개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북한과 미국 간 물밑 협상이 급진전되고 있다.”

이 기사 문장에 보이는 ‘설(2월 18일) 이전’은 얼핏보면 아무런 의심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문제가 없지 않다. ‘이전’에서 ‘이’에는 ‘부터’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이전’은 ‘어느 일정한 때부터 그 전’을 가리킨다. 제시된 날짜나 시간 등을 포함한다.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6자회담이 설날 열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설 이전’이 아니라 본래 ‘설 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기사의 제목은 ‘6자회담 설 전에 열릴 듯’이다. ‘이전’이 아니라 ‘전’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기사에서 이렇게 달리 표현한 것을 보면 ‘이전’과 ‘전’을 같은 의미로 본 듯하다. ‘이전’과 ‘전’은 다르다. ‘3일 이상’에서 ‘이상’이 ‘3일’을 포함하고, ‘3일 미만’이 ‘3일을 포함하지 않는 것과 같은 차이다.

“25일로 예정된 우리금융 주주총회 이전에 열리는 각 은행 주총에서 차기 행장들을 확정하기로 했다.” 여기서도 ‘이전’이 아니라 ‘전’일 가능성이 높다. ‘이전’에서 ‘이’를 무시하고 ‘전’으로만 생각하고 쓴 것이다. 다른 기사들을 확인하면 ‘주주총회 전’으로 분명하게 표현했다. ‘주주총회 이전’이라고 하면 25일을 포함하게 된다.

‘이후’도 마찬가지로 엄밀하게 쓰지 않는 예가 많다. “설 이후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될까”, “설 연휴 이후 개각”…. ‘이후’도 ‘이전’처럼 제시된 날짜나 시간을 포함한다. 설은 휴일이니 엄밀히 말하면 모두 ‘설 후’, ‘설 연휴 후’가 정확한 표현이다. 여기서는 어감이 별로 안 좋을 수 있으니 ‘후’ 대신 ‘뒤’가 괜찮겠다.

위 예들에서는 ‘전’이나 ‘후’ 대신 ‘이전’과 ‘이후’를 썼어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넓게 보아 넘어갈 수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 상황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7월 6일 이전까지 반드시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7월 6일 이전’이 아니라 ‘전’이었다면, 그러니까 7월 6일을 포함하지 않는 것이었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래’(以來)는 ‘건국 이래’, ‘1998년 드라마에 출연한 이래’ 등처럼 쓰인다. ‘지나간 어느 일정한 때로부터 지금까지’를 뜻한다. ‘이전’이나 ‘이후’처럼 기준이 되는 때를 포함한다. 이 ‘이래’와 연관성이 좀 있는 말 가운데 ‘년래’(年來)가 있다. “동유럽, 수십 년래 최악 홍수”, “10년래 최악 공직자 부패 특단대책 세워라”…. 이처럼 이따금씩 신문 등에서 보인다. ‘10년래’
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르는 동안’ 정도를 뜻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다른 곳에선 그리 잘 쓰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정체가 불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보니 전달력이 좀 떨어진다. ‘지난 수십 년간’, ‘2000년 이래’ 등이 더 잘 통한다.

‘년래’는 국어사전에 보이는 연래(年來)와 밀접해보인다. 그러나 쓰임새가 약간 다르다. ‘연래에 보기 드문 더위다.’ ‘연래’는 ‘여러 해 이래’란 말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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