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트루맛쇼’를 통해 본 외주 제작의 문제점

홍경수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방송사에서 피디로 15년여 근무하다 학교로 직장을 옮겼을 때 두 가지 소회를 품게 됐다.

첫째는 방송이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다. 대학 졸업하고 취업 시험에 합격한 20대 후반의 청년에게 지나치게 많은 힘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방송사에 근무할 때는 방송사에서 제작자로 근무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프로그램은 미묘하고 복잡한 것이어서 제작자의 생각이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프로그램 제작자가 누구인가 알려 준다면, 그 프로그램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말해 줄 수 있다. 물론 입사해서 곧바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조연출이 끝나더라도 누구나 10%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프라임 시간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제작자의 영향력은 매우 큰 것임에 틀림없다.

의사나 변호사와 달리 자격증이 따로 없는 기자나 프로듀서가 전문직이라 인정받는 근거 중 한 가지는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이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전문직이라 인정받는 것이다. 핼린과 만치니(Hallin & Mancini)라는 학자는 ‘미디어 시스템 형성과 진화’ 라는 책에서 언론인의 전문직주의 구성 요소로 자율성, 전문직 규범과 더불어 공공서비스 지향성을 들었다. 저널리즘에는 비전적(秘傳的·esoteric) 지식이 결여돼 있기 때문에 저널리스트들이 자율성과 권위를 주장할 때, 그 근거의 상당 부분은 저널리즘이 공익을 위해 복무한다는 자기주장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제작자들을 계몽하고, 충전시키고,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방송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미디어를 전공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좀처럼 TV를 보지 않는 듯하다. 수업을 위해 인기 프로그램을 사례로 들어도 학생들이 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학생들이 보지 않더라도 이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사회를 만들어 가는 권위를 제공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얼마 전 수신료 인상과 관련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여당과 야당이 그토록 다른 입장에서 팽팽히 맞서며, 시청률이 매우 낮은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가지고 논쟁한 것은(라디오 연설의 청취율은 얼마나 될까? 상상 이상으로 미약할 것이다. 주변에 물어보라. 라디오 연설을 직접 들어 본 사람 있냐고) 미디어가 사람들이 얼마나 보느냐에 상관없이 그 자체가 기구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미디어는 사회의 기성체제일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의 삶은 미디어를 통해서 비로소 구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론을 먹고사는 정치인들에게 미디어에 반영되지 않는 행위는 무위와 마찬가지이다. 왜 정치인들이 성금하러 와서 사진기자를 기다렸다가 돈을 넣고, 기념사진을 찍는지 한탄하는 사람은 미디어가 가진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거나, 이상주의자 혹은 초월주의자일 것이다.


맛집 소개는 돈만 주면 가능하다?

결국 두 가지 소회는 미디어가 매우 중요하고 이를 만드는 사람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방송사를 그만둔 지 1년 반이 지나서야 두 가지 소회가 다시 떠올랐다. ‘트루맛쇼’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다. 대중적인 폭발력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조용히 화제를 만들고 있는 이 영화에는 믿기 힘든, 하지만 충분히 믿을 만한 개연성이 있는 혐의로 가득했다. 즉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맛집으로 방송을 타는 것은 돈이 있으면 가능하다는 이야기, 심지어 스타들의 맛집도 진실이 아니며 보여주는 많은 것들이 방송을 위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가 핵심이었다.

이 영화가 방송에 대한 실체적인 진실을 조명하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메뉴는 방송사 제작자의 비리에 관한 기사들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시장의 원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무명이라도 방송 프로그램에 한 번이라도 출연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행사 및 업소에서 출연료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죽자 살자 하고 방송 출연에 목을 매는 것은 예상할 수 있다.


이를 돕는 것은 매니저다. 이들은 제작자와 가수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공식은 ‘트루맛쇼’에 나타난 구도와 일치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무명 식당들 앞에 쓰인 구호들 즉 ‘TV에 한 번도 안 나온 집’이라거나 ‘TV에 나올 집’, ‘꼭 한 번 나오고 싶다’는 주인의 위트 있는 수사학은 무명 가수가 ‘너훈아’, ‘주용필’로 이름 붙이거나 과도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태도와 닮았다. 이들 식당 역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한 달 동안은 밀려드는 손님으로 가득 차고, 그 후엔 출연했던 집이라는 명성으로 평생을 훈장처럼 달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새롭
고 독특한 음식을 만드는 식당이 필요한 제작자 입장에서는 매주 새로운 아이템을 채워 넣어야 하는 것도 큰 일이다.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이 브로커, 홍보대행사 등이다.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처럼 거래를 관장한다. 1,000만 원의 투자로 몇 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개인 사업자로서 혹하지 않을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생활정보 프로그램은 외주를 통해 만들어지고, 이들 중 대부분은 VJ를 활용해 만든다. 급격히 늘어난 외주 비율을 채우느라 방송사도, 외주사도 연착륙하지 못하고 서둘러 방송을 만들어야 했다. 방송사의 외주 관리 피디들은 현장을 뛸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이들 대신 젊고 싼 외주 VJ들이 현장을 누비며 프로그램을 만들어 온다.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를 만든 김재환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를 만든 김재환 감독.

“제작비 현실화해야 문제 해결 가능”


한 프로그램을 얻어 내기 위해 매주 치르는 다양한 외주사끼리의 경쟁과 값싼 생활정보 프로그램의 제작비는 자극적이고 값싼 방송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것이 음식 소개 프로그램이다. 음식 프로그램은 저렴한 제작비로, 손쉽게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식욕을 다룬다. 결국 피해는 그릇된 정보를 진실인 것처럼 믿는 시청자들이다. 이런 불신이 방송 생태계를 멍들게 하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방송 자신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트루맛쇼가 상영된 뒤 많은 관계자들이 해법을 제시했다. 독립제작사협회는 턱없이 낮은 제작비와 지나친 경쟁이 원인인 만큼 제작비의 합리화와 저작권의 인도 등 제작 체계의 합리화를 요구했다. 반면 지상파 방송사는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으나 기각당했다.

방송사의 채널 이름으로 나간 음식 프로그램인만큼 궁극적인 책임을 진 방송사들의 해명과 앞으로의 대책 제시가 마땅하다. 지상파에 종사하는 제작자들은 교양 프로그램 제작비로 부족하지 않은 제작비를 지급하고 있고, 저작권은 자체 플랫폼의 콘텐츠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한다. 또한 영업이익과 관리비까지 지불한 만큼 외주사는 리스크를 헤지했고, 지상파가 리스크를 무릅쓴 만큼 저작권에 대해서는 지상파 소유가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외주사가 저작권을 주장하려면 자체 기획하고 제작해 방송권만 팔면 된다는 것이다.

문제의 궁극적인 책임은 지상파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지금의 외주제작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하겠다. 현재 지상파 방송사들은 나름대로 외주사가 금품수수 등 비리에 연루되지 않도록 1년에 한 번 정도 외주사 교육을 하고 있고, 비리 적발 시 경고 및 해당 연출자 연출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1년에 한 번의 교육으로 외주사에 대한 윤리 교육이 충분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연출자들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연출 금지 조치의 실효성도 약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수많은 외주사들 중에서 윤리적인 인식과 제작 능력이 겸비된 외주사를 발굴하고 인증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문제가 된 외주사는 더 이상 음식, 의료 등 홍보 효과가 큰 장르의 제작을 맡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현재 지상파 프로그램의 30%가량은 이미 외주사에서 제작하고 있다. 이는 실로 엄청난 비중이다. 하지만 외주사를 방송의 중요한 부분으로 보기보다는 아주 적은 부분으로 인식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태도(아직도 외주국은 수십 개의 국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는 외주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 및 점검에 대한 의무를 방기하
는 것이나 다름없다.


입사 후에도 언론 윤리 교육은 소홀

KBS 입사 시험에 방송론이 포함됐다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언론 윤리가 아닐까. 언론학을 공부하지 않은 제작자들이 절반을 넘고, 언론학을 공부했다 하더라도 언론 윤리를 배운 학생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더군다나 입사해서 언론 윤리에 대한 교육을 받을 기회는 좀처럼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상파 방송사가 책임 있는 윤리 의식을 가지고 외주 관리를 하고, 부합되는 콘텐츠를 요구할 때 외주사의 콘텐츠도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제작자에 대한 끊임없는 교육과 계몽이 필요하다. 이는 제작자들이 부족하고 무지몽매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의 교육이나 연수는 단지 회사나 제작자 개인 차원의 일이 아니라 콘텐츠를 공유하는 우리 사회 전체의 일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교육 역시 사회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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