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채권 추심·대부업체 위장취업 일주일'

하어영 한겨레21 기자

4월 24일 부산저축은행 VIP 단독 보도를 했다. 한달여를 준비했다. 보도 전 ‘한겨레 21’의 보도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하던 금융 당국은 보도 하루 만에 태도를 바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일간지를 비롯해 방송, 인터넷 언론이 저축은행 사건을 확대재생산했다.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취지로 준비했던 ‘전일’ 저축은행의 직원 사전 인출까지 주간지로는 드물게 연이은 단독 보도를 내보냈다. 각 언론사는 보해, 삼화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과감하게 발을 뺐다. 저축은행 문제의 중심이기도 한(중심축이어야 할) ‘금융 소비자’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기획으로 넘어가기 위해서였다.

이번 추심·대부 기획은 부산저축은행 보도와 한 맥락 안에 있다. 다른 것이라면 더 아래로 내려가 현 장성을 높인 것이다. 금융정책을 지금껏 소비자의 시선으로 접근한 사례는 없었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발표에 의존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저축은행에서 피해 입은 금융 소비자와 개인부채 1,000조 원에 신음하는 금융 소비자는 다르지 않았다. 저축은행 보도를 준비하는 한 달 동안 개인부채 1,000조 원을 해결하기위한 금융 당국의 정책 전부를 검토했다. 정책은 부채가 문제 될 때마다(금융정책의 실패가 있을 때마다) 즉각적으로 새롭게 입안돼 오고 있었다. 하지만 실효는 적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금융정책의 수혜자이어야 할 소비자의 현실을 고려하지 못하는 정책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민·형사책임 검토 후 ‘언더커버’ 결정

형식은 언더커버 리포트로 가기로 결정했다. 신분을 속이고 잠입하는 경우 기자들은 쉽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회사 내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과 언더커버 형식의 취재를 진행할 때의 주의할 점에 대해 논의했다. 장황한 설명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가기로 한다.우선 특정 업체에 신분을 밝히지 않고 취업하는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공익을 위해 취재기자가 학력이나 신분을 감추고 취업을 하는 경우에도 업무방해죄 또는
주거침입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 민사상으로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 법무팀에서는 민사책임은 별론으로 하고 형사책임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주의를 당부했다.

실제로 지난 2009년도 군부대 내 유흥업소 운영 실태를 취재하려는 목적으로 공군 중위인 대학 후배의 신분증으로 충남 계룡대에 몰래 들어가 여성 도우미를 둔 영내 유흥주점의 실태를 촬영해 보도한 기자에 대해 정당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아 초소침범죄를 인정한 바 있다.

물론 이 사례는 군부대라는 특성이 감안돼 있어 모든 잠입 취재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업계의 사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 취재 대상, 취재의도 등 개별 취재에 따라 상황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하다. 최근 취재 윤리가 강조되고 있는 사회적 시선을 감안한다면, 신분을 감추고 취재를 해야 할 때는 자사의 법무팀과 공조해 사전 유의점 등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신중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공익을 위해서는 넘어설 수밖에 없는 선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잠입 취재의 경우 불법 대부 업체의 경우에는 업무방해 등의 형법상 책임을 물을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민사상 손해를 가져올 이유도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현장을 찾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 소개로만 면접 통과

현장으로 들어간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막상 대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매일 아침 거리에 흩뿌려지는 대부·대출 광고의 존재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벽 하나를 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준비 과정에서 팁을 얻었다. 실제 불법 대부 업체의 취직은 기존 업체에서 함께 활동한 지인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이 사장’을 접촉한 것도 그 이유였다. 이 사장은 이전 취재에서 인연을 쌓았던 전직 추심 업체 대표였다. 이 사장에게 취지를 설명했다. 처음에 거절당했다. 우선 자신이 현재는 업계에서 발을 뺀 상태인 데다 기자를 들여보낸다는 것이 일종의 배신행위가 아니겠느냐는 뜻이었다. 설득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약속을 했다. ‘있는 그대로’를 보도할 것, 최대한 업체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도록 배려할 것 등이었다. 그렇게 소개받은 곳이 보도에 등장하는 추심·대부 업체 불곰이다.

불곰은 말하자면 합법의 영역을 벗어난 업체다. 성공 보수 10~20%를 받으며 추심과 대부를 진행한다. 대개의 업체들은 추심을 먼저 시작하든, 대부를 시작하든 결국은 그 두 가지를 겸하게 된다. 주로 신용정보회사 출신들로 구성돼 있다. 지하경제의 한 축을 이루는 이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바는 없다. 업계에서는 10만여 명, 수조 원이 움직이는 것으로만 추정할 뿐이다.



추심업자로서 첫 출근지는 법원

소개받은 불곰의 김 사장도 신용정보회사 출신이다. 이 사장의 소개로 면접을 본 것은 한 역사 앞의 다방에서였다. 흔히 아는 조직폭력배의 모습이 아닌 말쑥한 명품 양복을 입은 40대 초반의 사업가 김 사장이 내 앞에 앉았다. 공무원시험 준비하다 실패하고 대부업에 관심이 있어 일을 배워 보려는 돈 많은 집 아들로 소개를 했다. 물론 내 이력은 상관이 없었다. 이 사장의 소개가 결정적이었다. 일사천리였다. 면접을 받는 자리에서 다음 주 월요일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출근하자마자 신입사원 OJT(On the JobTraining)를 받기 시작했다. 김 사장은 일주일의 신입사원 OJT를 공지했다. 취재 또한 그 기간에 맞췄다. 모든 교육은 현장 경험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불곰 김 사장이 직접 현장 교육을 맡았다. 사실 여기서부터는 노하우가 필요했다. 하지만 주변에 추심·대부 업체를 현장 취재한 경험자가 없었다. 사실 돌이켜 보면 노하우보다 필요한 것은 용기였다.

첫날, 처음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의 두 달 전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가습기가 돌고 있고,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으며, 다섯 개의 책상이 구획돼 놓여 있었다. 책상별로 컴퓨터, 사무용품 등이 가지런했다. 2명이 근무하는 업체라는 설명과는 사뭇 달랐다. “생각해 보라고. 험상궂은 직원들만 있고 음습하면 누가 돈을 빌리겠어? 이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믿을 만하겠거니 하지.” 밖에서 보는 추심·대부업체와 현실의 업체 사이 간극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선입견을 깨는 상황은 반복됐다. 추심 업자로서의 첫 출근지는 채무자의 집이 아닌 바로 법원이었다. 일주일 단위로 짜인 업무계획에 따라 법원에서의 추심 업무가 진행됐다. 추심 업체의 주업무가 채무자를 만나 돈을 받아 내는 것이라고만 생각한 것은 또 하나의 편견이었다. 김 사장은 법원행정직 관련 시험 준비를 했다는 면접 때의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따로 법원 업무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은 이유였다.

판결문과 채권 양도 서류만 있으면 모든 것은 일사천리였다. 채무자의 잔고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부터 채무자의 가족관계, 주소 등 개인 신상을 알아내는 것도 너무 손쉬운 절차였다. 건당 재산 확인, 재판 준비까지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날 하루 동안 법원에서 진행한 업무는 3건이었다. 법원 업무가 추심의 핵심이라는 김 사장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블로그·트위터 뒤져 채무자 소재 파악

업무는 해가 지고도 계속됐다. 김 사장은 인터넷을 통해 채무자의 ‘현재’를 속속 파악했다. 불법 추심 업체까지 내려올 정도의 채무자들은 자신의 주거지를 감추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전은 추심에도 큰 도움이 됐다. 아이러니였다. 미니홈피, 블로그, 트위터 등 존재하는 모든 SNS는 모두 채무자를 찾는 도구가 됐다. 각종 SNS를 통해 친구, 친척뿐만 아니라 채무자의 소재지도 파악했다.

실제로 추심 업자가 숨어 있는 채무자를 찾은 경우 해당 채무자는 정신적으로 무장해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김 사장의 설명이었다. 특히 신상 털기 프로그램은 이들에게 아주 유용한 도구였다.

일주일 동안 법원 업무만 했던 것은 아니다. 방문 추심도 있었다. 취직한 불곰이라는 업체에서는 원칙적으로 방문 추심을 하지 않는다. ‘특별한’ 고객들의 부탁이 있을 때만 진행한다. 그리고 김 사장이 직접하는 게 아니라 오랜 동료인 박 사장과 함께다. 돈이 돌다 돌다 다다르는 끝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TV에서 방영된 대부업체 광고,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생계형 부채는 추심 업자들도 포기

“원칙적으루다가 몸을 건들지 않는 것으로 허고. 대신 초장에 겁먹고 오줌 지릴 정도로 기죽여야 해. 덤빌 생각 못 허게. 그래야 신고도 못허고 조용허게 진행돼. 일도 빨리 끝날 수 있고. 그리고 구경만 허기 뭐하다 싶으면 소리가 크게 나는 걸로 골라서 적당히 부술 게 있으면 부수고. 주로 결혼사진, 가족사진이 좋지. 강아지나 고양이도 좋고. 어찌 돼도 재물 손괴밖에 안 되니께.”

추심 업자 박 사장이 전수한 현장 추심 비법이다. 3년이 다 되도록 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한 김 사장과는 달리 박 사장의 추심은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나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보다는 내보내기 힘들겠다는 판단이 들 정도로 현장은 비참했다.

법과 질서가 있는, 공권력이라는 게 존재해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곳이 바로 이곳인가라는 회의가 들었다. 아니 그 회의가 든 것도 나중 일이다. 무서웠다. 속이 울렁거려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당일 현장 추심은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박 사장은 “하느님도 못 받는다”며 포기했다. 사채가 얹히고 카드로 돌려막다가 기하급수로 불어난 생계형 부채는 추심 업자들도 포기한다. 그래서 김 사장, 박 사장 같은 베테랑들은 생계형 채권을 취급하지 않는다. 이들은 “돈 받으러 갔다가 쌀 팔아 주고 오는 바보짓을 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일주일 동안 추심만 배운 것은 아니다. 추심과 대부업이 함께 이뤄지는 현장이어서 대부업을 진행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대부 업체의 사채를 끌어 쓰는 사람들이 별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장 바탕으로 금융정책 세우길

500만 원이 급하게 필요한데 은행 문턱이 너무 높아서 찾아온 소형 마트 주인, (사실을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아이의 병원비를 대야 하는 엄마 등이 찾아와 김 사장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사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이 서민들의 발걸음을 어떻게 하면 다른 쪽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서부터 찾아야 했다. 우리는 사회악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이들에게는 이 대부 업체가 필요했다.

그래서일까. 놀랍게도 이 사장과 박 사장에게는 직업적 자부심도 있었다. “나라도 못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받지 않으면 공중분해될 채권을, 말하자면 고인 돈을 돌게 하는 것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생계형은 없고 주로 1,000만 원 이상의 악성채권(일반적인 방법으로 받기 힘들어진 채권)만 취급한다는 논리다. 그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다 보니 사회적으로 봤을 때 적절치 않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추심업자들에 대한 판단을 성급히 하려 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그대로 듣기로 했다. 그들은 스스로 “과거를 지우고 싶을 때도 있다”, “다른 일을 찾으려고 한다” 등을 말했다.

일주일로 현장 취재는 마쳤다. 그리고 3회로 나눠 시리즈를 내보내기로 했다. 1회(6월 20일 자 한겨레 21 865호)는 추심업의 일주일, 2회(6월 27일 자 한겨레 21 866호)는 대부업의 일주일, 3회(7월 11일 자 한겨레 21 868호)는 보도 그 뒤의 내용으로구성됐다.

3회가 예상보다 미뤄진 2주 뒤에 나온 이유는 금융 당국이 시리즈가 나가고 있는 주에 “추심 업계를 포함한 대부 업계를 규율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정책을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하려는 결정을 미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금융 당국의 포부와는 달리 현재도 김 사장과 박 사장은 아무 일 없듯 업체를 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현장이다. 금융 당국도 검찰, 경찰 등 사정 당국처럼 지금보다 더 현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경제 원론 수준의 탁상공론만으로는 김 사장과 박 사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이번 보도의 핵심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금융 당국은 여전히 현장이 없는 정책으로 면피하고 있다.

Posted by inhana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