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 프로그램 새 장 연 KBS ‘한국인의 밥상’

유경탁 KBS 콘텐츠본부 외주제작국 팀장


오늘이 7월 17일. ‘한국인의 밥상’이 1월 1일 개편 때부터 시작됐으니 반년이 조금 지나면서 30회로 치닫고 있다. 여기저기서 책을 출판하자 하고, 글을 써달라고 하니 약간 인지도가 생기긴 한 모양이다. 시청률 10%를 넘나드니 요즘 다큐멘터리치고는 꽤 괜찮은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쑥스럽지만 그동안을 한 번 돌아보고자 한다.

‘Future of Food’
‘Jimmy’s Food Factory’
‘Good Eats’
‘Truth about Foods’
‘일본인과 마구로’

이런 프로그램들이 전 세계인이 즐겨 보는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세울 프로그램이 없는가? 단편적으로는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았나?’ 같은 빼어난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속적이지 않았다.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천지인(天地人) 조화가 프로그램 뼈대

그동안 그리고 지금도 각 방송사의 음식 프로그램들은 다양하고도 넘쳐 난다. 너무나도 가벼운 터치, 초고속 화면 전개와 거칠기 그지없는 앵글들, ‘최고예요’라고 과장되게 외치며 맛을 보는 손님들, 맛집 정보 위주의 프로그램들….

아쉽다. 왜 우리에게는 명품처럼 잘 빚은 음식 다큐멘터리는 없을까. ‘누들로드’ 같은 명품을 정규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데 우리의 능력은 아직 한계가 있는 걸까. 이런 고민 속에서 탄생한 것이 ‘한국인의 밥상’이다. 하나 무엇으로, 어떻게 밥상을 맛나게 차려야 할까?

우선 뼈대를 크게 세 가지로 잡기로 했다. 첫째,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라 일컬어지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사계절 풍광-천(天), 둘째는 전국 어디에나 바다면 바다대로, 산촌이면 산촌 그대로, 농촌이면 또 거기에 딱 맞는 다양하고 특색 있는 먹을거리들이 존재하는 이 땅-지(地), 셋째는 그 속에서 무려 5,000년의 역사를 이어 오며 끊임없이 식문화를 꽃피우고 ‘밥상’을 차려 왔던 우리네 이웃 어른들-인(人).

이런 3골격 ‘천지인’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비로소 맛난 ‘한국인의 밥상’이 차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과 먹을거리와 역사가 담긴 지역민들의 소중한 이야기가 과장되지 않고 깊이 있는 정보와 엄밀한 과학으로 김치처럼 절묘하게 버무려진다면 고품격 음식 다큐멘터리가 탄생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우리 제작진은 이를 ‘Korean Food Geographic’이라 명하였고, ‘한국인의 밥상’이라 부르기로 했다.



매일 먹는 음식은 살아 있는 유물

우리는 언제부터 쌀을 먹었을까? 정확하진 않지만 청동기시대 유적지에서, 삼국시대 유적지에서 탄화미가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 그 이전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 흔히 한 시대의 타임캡슐이라 불리는 유물과 유적 속에는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담겨 있고 우리는 그것을 추적하며 선조들의 생활을 느끼곤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문화가 변하고 역사가 변하듯이 쌀도 밥으로 변하기도 하고 때론 떡으로도 변한다. 이처럼 한 톨의 쌀알 속에도 시대를 넘나드는 조상들의 삶과 철학, 수천 년에 걸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얻어진 지혜가 담겨 있다. 그것을 통해 우리 역사는 오늘도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바쁜 우리는 매일 먹고 있는 음식에 남아 있는 선조들의 철학과 삶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 제작진은 1,000년 전의 황남대총 유물을 발굴하듯 정성을 다하여 우리 음식이 오늘에도 살아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한다.

과거 30년 전 우리는 팝송에 열광했지만, 지금은 케이팝(k-pop)과 드라마가 세계 속에서 한류를 춤추게 하고 있다. 그 한류의 바탕에는 우리 음식이 존재하고 그것이 원초적인 에너지가 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피자에 열광하고 있지만, 케이팝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30년 뒤 우리의 파전이 피자처럼 세계인의 음식이 될 수 있을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식재료와 맛에 담긴 원리와 과학 전달

그 토대를 지금부터 만들고 싶다. 역사와 의미와 대한민국의 스토리를 입혀서….

Korean Food Geographic

그 지역에 가면 그 음식이 있다. 왜 그럴까? 지리적 환경에 사람들의 숨결과 지혜가 어우러져 역사가 되고 문화로 응축된 것이 바로 그 지역의 대표 음식이다. 대표 음식들의 숨겨진 이야기와 역사, 그리고 문화 등을 아름다운 영상과 깊이 있는 취재를 통해 푸드멘터리로 꾸며 낸다.

음식의 원류와 함께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

음식 원류의 맛을 이어 가는 사람들과 긴 생명력을 만난다. 시대가 변하면서 요리 방식과 맛도 변했다지만 옛 방식을 고집스럽게 이어 오며 맛을 지켜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대한민국 최고의 고품격 음식 다큐멘터리를 선사한다

아름다운 영상, 절제된 화면, 그리고 진부하지 않은 음악, 마지막으로 친근감 있는 프레젠터와 내레이터까지 환상의 하모니를 엮어 낸다. 프로그램은 철저한 협업이요, 종합예술이다.

원리와 과학성을 밝혀낸다

모든 음식에는 숨어 있는 과학이 있다. 각각의 풍토, 기후에서 자란 식재료와 그 지역만의 독특한 조리법이 만나서 고유한 맛을 내게 되는데 이 맛 속에는 원리와 과학이 있다. 다양한 실험과 분석을 통해 우리 음식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 그리고 식품과 식재료에 대한 영양학적 고찰로 시청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한다.


영혼을 담아 만드는 베테랑 제작진

우연히 좋은 프로그램이 탄생하진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방송쟁이들은 누구나 뼈저리게 느낀다. ‘한국인의 밥상’ 또한 ‘정에 취하고 맛에 반하다 – 거제도 대구’ 편 1회부터 지금까지 촬영 중 부상과 제작 중 과로로 제작진이 입원하는 등 크고 작은 사고를 먹고 명품으로 성장하는 단계에 있다. 꿈이 너무 크기 때문인지 모른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음식 프로그램을 정립시키면서 우리 음식에도 철학이 깃들어 있고 선조들의 우아한 삶이 녹아 스며 있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보여 줄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되기 때문이다.

역사를 공부하고, 지역을 익히고, 문화를 파악하고, 과학을 담으려니 쉽지 않다.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그러나 제작진은 탄탄하다. 책임 CP는 과거 ‘역사 스페셜’에서 우리 역사를 진지하게 풀어 낸 경험으로 밥상에도 역사를 담아내려 한다. 또 ‘생로병사의 비밀’을 제작한 경험으로 과학적 접근과 합리적 논리를 요구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6시 내 고향’을 담당한 이력으로 전국의 지역 특색과 음식의 산지, 제철을 웬만큼 꿰고 있다.

메인 피디와 작가들도 ‘한식 탐험대’, ‘요리비전’ 등 음식 프로그램과 숱한 다큐멘터리 특집을 제작해 왔다. 경력 10년을 훌쩍 넘긴 베테랑들이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한다. 왜? 아는 만큼만 보여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이력들이 새로움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투명 유리판 위의 음식 요리 방법, 행글라이더 문경새재 촬영, 참게의 육식 실험 등 신선하고 새로운 영상이 시도되고 옛 음식 서적 ‘음식디미방’, ‘수운잡방’에서 요리 비법을 찾아낸다. ‘동의보감’, ‘동국세시기’, ‘조선왕조실록’ 등 서적을 뒤지고, 옛 그림을 뒤적이며 음식에 얽힌 고증을 찾아내어 한 올 한 올 우리 음식에 대한 씨줄과 날줄이 엮어지면서 스토리가 탄생하고 있다.

제작진은 우리 향토 음식의 스토리를 매우 중시한다. 프로그램에서도 줄거리가 있고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제의 강점과 6·25전쟁 그리고 가난 때문에 미처 잊고 살아 왔던 우리 음식들에 대한 의미들을 찾아내고 있는 듯하여 반가움이 한이 없다.

어느 지역 주민들은 처음 섭외 연락을 하면 오뉴월인데도 찬바람이 쌩쌩하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방송이 많기도 많아서 지역민들도 오죽 귀찮겠냐고 이해는 하지만…. 그러나 이젠 달라지기 시작했고환영하는 곳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주민들이 모여서 방송을 보고 나서 만세를 부르며 시내를 돌아다녔다는 얘기도 들린다. 얼마나 좋았으면….



천상천하 절묘한 선택, 최불암 선생님

길 가다 마주친 웬만한 사람도 이젠 프로그램을 알아본다. 그런데 ‘한국인의 밥상’을 정확히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최불암 선생 나오는 거 그거….’ 이렇게 안다.

지난해 12월 프로그램 론칭을 20여 일 남기고 20여 명의 제작진이 왈가왈부 떠들썩하게 프로그램에 대한 첫 논의를 끝마칠 즈음 55분의 명품 다큐를 끌어갈 선장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의견이 대두됐다. 선장이라면 MC나 리포터를 말하는 것인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격이 다른 프레젠터의 역할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 강호동, 유재석부터 수많은 유명인이 논의됐지만, 최불암 선생님이 거론되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거부감이 없는 인물, 이른바 국민 아버지! 칠십이 넘은 연세, 화려한 연기인생에 ‘파-’ 하는 너털웃음으로 친근한 이미지, 시골과 도시, 산간오지 남녀노소 누구나 알아보는 어르신. 다만 건강이 따라 줄까? 전국을 누벼야 되는데, 스케줄은 가능할까? 고민 끝에 부딪쳐 보기로했다. 결과는 대성공.

현장에서도 인기 만점이다. 70년 삶의 노하우를 물심양면 제작을 위해 쏟아내고 계신다. 구수한 톤의 저음 내레이션까지 한국적 음식으로 숙성되면서 금상첨화가 되고 있다.

누군가 이런 말로 표현하는 걸 들었다. ‘10년 전이었어도 아니 되고, 10년 후였어도 아니 될 절묘한 선택의 최불암 선생님, 프로그램 탄생 역시 마찬가지라고.’


세계인이 찾을 때까지 맛있게 차릴 터

모든 건 때가 있기 마련인가 보다. 너와 나를 대신해 우리의 고향을 찾은 최불암 선생님은 특유의 ‘파-’웃음으로 순식간에 지역 주민이 된다. 그는 소달구지를 타고, 조각배를 타고, 지프를 몰면서 때로는 뚜벅이로 그들 곁에 다가가 고향 소식을 전해 주는 맛의 전령사다. 이 세상 누구도 그처럼 동화되기는 쉽지 않으리라.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최불암 선생님과 영원히’를 꿈꾼다.

30여 회에 이르면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잘 알지 못했던 음식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낼 때 그 감회는 좀 다르다. 첫 편에서부터 그랬다. 첫 편 ‘정에 취하고 맛에 반하다 - 거제 겨울 대구’에서는 듣도 보도 못했던 ‘약대구’와 ‘대구갱죽’이 등장하고 ‘대구김장김치’도 나왔다. 난생 처음 접하는 음식들이다. 그런데 100년이 넘은 전통 음식이란다. 아, 감동이다.

제3편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오 - 정선 겨울 밥상’에서는 ‘콩갱이’와 ‘채만두’라는 음식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것 또한 신선하다. 콩갱이는 삶은 콩을 갈아서 감자를 넣고 끓인 음식이고, 채만두는 메밀가루로 피를 만들고 갓김치로 속을 채운 만두란다. 재미있는 우리네 고유 향토 음식이다.

정리를 하다 보니 이런 멘트도 떠오른다. ‘하수구의 미생물도 생명이 있는데 끓는 물을 그냥 버리면안 되죠. 중탕으로 미지근하게 해서 버려야지.’

‘물을 넣지 않아도 익어 가며 스스로 물을 내는 열무김치처럼 우리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는 주옥 같은 멘트들….

흑산도 홍어를 촬영하다 최불암 선생님이 뱃전에서 넘어진 얘기며, 영덕대게를 촬영하다 폭설에 오도가도 못했던 제작진…. 이런저런 사연과 함께 ‘한국인의 밥상’이 시청자 앞에 차려지고 있다. 맛있게 차려져야 하는데 부담이다. 영원히.

희망하건대 요즘 케이팝의 한류처럼 우리의 파전과 김치전, 빈대떡이 이탈리아 피자를 앞질러 세계인의 음식이 될 그날에 ‘한국인의 밥상’이 조금이라도 그 초석의 한 모퉁이를 차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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