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채널·미디어 사업자, 국내 시장 진출 활발

임정수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올 들어 해외 채널들의 국내 상륙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지난 4월에는 소니픽처스텔레비전과 씨앤앰(C&M)의 MPP 자회사인 CU미디어가 합작사를 만들어 론칭한 드라마 채널 AXN, CMB가 론칭한 다큐 채널 디스커버리채널코리아 등이 있었다. 6월에는 세계 최초의 라이브 콘서트 전문 채널 아이콘서트가 KT 올레TV에서 론칭했다. 7월에는 디즈니와 SK텔레콤의 합작 법인인 텔레비전미디어코리아를 통해 어린이 만화 채널인 디즈니채널과 디즈니주니어채널이 국내에서 채널을 론칭하고 방송을 시작했다.

2006년 티캐스트가 론칭한 폭스채널 등 글로벌 미디어 그룹 계열 채널의 국내 유입은 꾸준히 있어온 일이기도 하고, 한국 방송 시장의 규모와 소비수준으로 볼 때도 해외 유명 채널들의 유입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종편, IPTV, OTT, 스마트 TV 등 우리나라의 미디어 환경 변화에 즈음하여 글로벌 미디어의 분주한 움직임에 우리의 방송 시장도 적극 대응해야 할 시점이 됐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미디어 플랫폼은 급속히 늘어났다.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TV 중심이던 방송 산업은 2002년에 위성방송, 2005년에 위성 DMB와 지상파 DMB, 2008년에 IPTV 등으로 서비스가 다채로워졌다. 지상파 DMB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지상파 TV 프로그램을 재송신하거나 재편집한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었지만, 다른 서비스들을 각각 편성할 많은 채널들이 필요했고, 각 채널은 방송 시간을 채울 수많은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방송용 프로그램은 텔레비전을 떠나 인터넷과 유료 방송 플랫폼을 통해 VOD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활동적이고 시간 활용을 다양하게 하려고 하는 욕구가 상대적으로 더 강한 젊은 연령대에서 본방송은 감소하고 VOD 시청이 급증하고 있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거기에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광범위한 보급은 비선형적인 시청 형태를 더욱 자극했다. VOD 서비스는 제한된 시간에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방식과 달리 아카이브 형식이므로 그러한 시장이 필요로 하는 콘텐츠의 양은 과거보다 훨씬 크다고 봐야 한다.


수요 충족 못 시키는 콘텐츠 공급

문제는 그러한 국내 방송 시장의 콘텐츠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의 콘텐츠 생산과 공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방송 시장에서의 콘텐츠 공급 부족은 우리나라 방송 산업 생태계의 불균형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개선될 여지는 많지 않다. 긴 시간과 산업 각 영역 간의 공동 노력이 필요한 사안이다. 한국의 방송 산업은 콘텐츠 수급에서 지상파 방송사에 과다하게 의존하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의 생산, 유통, 분배망의 결합적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지상파 방송사 외부의 생산 체계가 극도로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지상파 방송 중심 시대에는 그럭저럭 문제를 유발하지 않았지만, 지금과 같은 다플랫폼 다채널 시대에는 심각한 콘텐츠 수급 불균형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위성 방송, 위성 DMB, IPTV 등 새로이 도입되는 플랫폼들은 예외 없이 콘텐츠 부족에 허덕이고, 지상파 재송신에 거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한국의 방송 산업은 지상파 콘텐츠로 계속 돌려 막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방송 시장에서 국내 유료 방송 플랫폼과 MPP가 지상파 재송신 혹은 지상파 프로그램 구입 이외에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해외 프로그램 구매와 해외 채널의 도입이다. 해외에서 구매한 프로그램은 지상파 콘텐츠 이외에 양적으로나 시청률로나 유료 방송 서비스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구매해 온 미국과 일본의 드라마, 시트콤, 리얼리티쇼들 중에는 꽤 높은 시청률을 보인 작품들도 있었다. 그런데 개별 프로그램 단위가 아니라 채널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경우에는 해외의 우수한 프로그램 패키지를 함께 들여올 수 있는 효과뿐 아니라 채널 브랜드 가치까지 함께 취하는 것이므로, 해외에서 개별 프로그램을 구매해 편성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의 입장에서도 콘텐츠 수요는 폭증하는 데 반해 공급은 턱없이 모자라는 한국 방송 시장 진출은 승산 있는 전략이 될 것이다.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은 일차적으로는 시장 확장과 규모의 경제 효과를 의미한다. 그것들은 다시 새로운 거래에서 강화된 협상력으로 나타난다. 미국 미디어 기업의 글로벌화는 1970년 전후부터 시작됐지만, 1990년대 이후 자국의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해외 채널의 국내 도입은 한국 방송 시장의 상황과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이해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지만, 국내 PP 사업자 시각에서 볼 때 프로그램의 상품적 가치와 채널의 브랜드가 결합한 해외 채널과의 경쟁은 불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종편 채널이 도입된 상황에서 콘텐츠에 투자하지 않는 PP는 생존하기 어렵게 돼 가자 다소 안정적인 PP들부터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겠다는 전략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콘텐츠 투자의 효과는 해외 채널들을 경쟁자로 맞으면서 반감될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경쟁자의 수가 늘
어나면 채널 사업자는 새로운 콘텐츠 생산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재방송 횟수의 증가와 저가 프로그램 구매에 의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난 7월 1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AXN의 자체 제작 프로그램 ‘어메이징 레이스 아시아(Amazing Race Asia) 시즌3’ 론칭 기자회견에서 AXN 총괄 부사장 앙후이컹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내 PP, 해외 채널과 경쟁 불가피

따라서 유력한 해외 채널이 경쟁에 뛰어든다면 대형 MPP의 일부 채널에서만 해외 채널들과의 직접적인 경쟁을 위해 투자를 확대하겠지만, 투자에 대한 자금 회수가 불명확해진 국내 대부분 PP들의 투자 의욕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물론 투자에 적극적인 전략을 채택하는 일부 PP들도 투자의 회수가 그리 원활한 것은 아니다.

한편 해외 채널의 국내 방송 시장 진입에서 우리나라 방송 산업에 미치게 될 긍정적인 영향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해외 채널의 국내 시장 진입이 대개의 PP에게는 투자 의욕을 저하시키지만, 일부 유력한 PP에게는 콘텐츠 생산 투자를 늘려야 하는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해외 채널이 증가하고 종편 4개 채널이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하면 소수의 유력한 PP들은 지금과 동일한 콘텐츠 투자로는 경쟁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해외 채널들의 도전이 주요 PP들의 제작비 증대로 이어진다면 우리나라 방송 콘텐츠 발전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둘째, 글로벌 미디어 기업과의 합자사는 그들의 한국 방송 시장 진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콘텐츠와 채널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와 실질적인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해 볼 수 있다. 셋째, 개별 프로그램 단위로 구매한 프로그램들이 인지도 낮은 채널에서 시청되지도 않고 사장되는 것보다 브랜드 가치를 지닌 채널에서 패키지로 서비스되는 것이 투자 대비 효율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해외 채널의 직접 론칭은 해외의 인기 있는 프로그램들을 일일이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패키지화된 채널을 선택함으로써 비교적 간편하게 시청할 수 있다.

해외 채널의 론칭이 해외 기업의 약탈적 침략이 아니라 국내 미디어 산업과의 이해 일치 속에서 이루어지는 한 단순히 국산품 애용 차원에서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전제로 한국 방송 산업의 각 영역은 대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국내 콘텐츠 산업 발전 자극제 삼아야

먼저 지상파 방송사와 독립제작사는 작품과 채널 브랜드 공히 경쟁력 높은 지상파 콘텐츠의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방송 콘텐츠에서 언어와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한 문화적 할인은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일정한 수준의 시청률을 올렸던 지상파 콘텐츠는 해외 채널이 제공하는 콘텐츠에 비해 경쟁에서 우위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이러한 이점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콘텐츠 가치를 더욱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MSO, IPTV 등 유료 방송의 플랫폼사들은 해외 채널의 브랜드 인지도에 편승하고자 하는 욕구를 누구보다도 크게 가질 것이다. 지상파 방송 외에도 뭔가 확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력한 해외 채널들을 직접 론칭하는 것도 플랫폼사의 입장에서 볼 때 긍정적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해외 채널이 플랫폼사에 줄 수 있는 혜택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해외 채널에 대한 의존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플랫폼사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게 돼 부정적 효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신설되는 종편의 경우 콘텐츠에 대한 투자 의지가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해외 미디어 기업과의 제휴를 통한 해외 프로그램의 편성이 큰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jTBC에는 TV아사히와 터너아시아퍼시픽벤처스가, MBN에는 일본경제신문사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채널A는 BBC, 컴캐스트, 로이터, 소니, ITV, NHK엔터프라이즈 등과, TV조선은 MTV, ABC방송 등과 프로그램 제휴 관계를 맺었다. 그런 중에 해외 채널과의 직접적인 경쟁은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 규모의 PP에게 해외 채널들이 경쟁 상대가 된다는 것은 위협적인 환경 변화가 될 수 있다. 이들 채널은 종편에다 해외 채널까지 들어오면 유료 플랫폼에서 이용자들의 주요 채널 레퍼토리로부터 완전히 밀려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중소 PP는 경쟁이 과열될 때 투자를 늘리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채널 특화 및 브랜드화를 목표로 한 콘텐츠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여야 생존할 수 있다. 해외 채널의 유입에 대한 이해관계는 방송 산업의 영역에 따라 다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에 의미 있는 자극이 될 것은 분명하다. 또한 변화가 많고 불확실성도 높은 방송 산업에서 현재에 안주하고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기업은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명확하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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