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프로그램 포맷 거래 활기

배진아 공주대 영상학과 교수


최근 국내 방송 시장에서 프로그램 포맷 거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은 물론 방송 관계자들에게조차 생소했던 ‘포맷’이라는 용어가 신문, 방송 등 매체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으며, 일상의 대화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포맷이란 제작자가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하고자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배진아, 2008)으로서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일종의 가이드라인(Moran, 2009, p.21) 내지 어떤 프로그램을 다른 장소와 시기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와 노하우의 총체적 집합체(Moran & Malbon, 2006, p.6)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를 종합해 보면 포맷은 TV 프로그램이 담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하나의 프로그램에 대한 또 다른 버전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러한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나열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요소 추가해 상품 가치 높여

포맷이 거래된다는 것은 포맷에 대한 권리(license)를 팔고 사는 것으로서, 포맷이 하나의 상품으로서 거래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해외의 포맷을 모방하는 관행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이에 대해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인식은 없었다. 아이디어와 지식, 정보, 문화 등 추상적인 가치가 상품화되는 포맷 거래 현상은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미디어 기업의 고도화된 전략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포맷이 거래되는 방식은 구매자와 판매자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단순한 포맷상품은 프로그램의 내용과 형식을 공식적으로 모방할 수 있는 권리 정도에 머문다. 이전에는 무단으로 모방하던 것을 저작권 침해의 우려와 방송사의 자존심 등을 고려하여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공식적으로 아이디어를 차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거래는 구매 비용이 저렴하며, 컨설팅은 물론 포맷 바이블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포맷이 좀 더 상품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것은 포맷 판매자가 적극적으로 상품을 포장하고 다양한 구성 요소들을 추가하여 상품 가치를 불어넣으면서부터이다.


‘도전 골든벨’, ‘우결’ 포맷 해외 수출

포맷이 상품으로 가공되어 판매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Altmeppen, Lantzsch & Will, 2007, p.102). 아이디어로서의 포맷,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장르, 표현 방식, 대상 수용자 속성 등이 서술되어 있는 문서 포맷(paper format), 콘셉트와 제작 규칙, 컨설팅, 제작 바이블, 그래픽 디자인, 데모 테이프, 음악, 무대장치 등이 포함된 포맷 패키지(format package)가 그것이다. 실제로 어떤 수준에서 포맷이 거래될 것인지는 포맷 판매자의 마케팅 전략과 구매자의 필요와 요구 등에 의해 결정되는데, 포맷의 다양한 하위 구성 요소들은 포맷의 상품 가치와 가격을 높이는 장치가 된다.

국제 시장에서 포맷 거래는 엔데몰(Endemol), 프리멘틀미디어(Fremantle Media), BBC(BBC World Wide) 등 유럽의 포맷 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있다. 엔데몰의 ‘Deal or No
Deal’과 ‘Big Brother’, 프리멘틀 미디어의 ‘Pop Idol’과 ‘The Apprentice’, BBC의 ‘Strictly Come Dancing’은 세계적으로 널리 유통된 바 있는 대표적 포맷들이다. 국내 방송사의 포맷 수입 사례는 ‘브레인 서바이버’(MBC, 일본 TBS의 ‘전원 정해 당연한 퀴즈’)를 비롯하여 ‘1대 100’(KBS, 엔데몰의 ‘Ein tegen 100’),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온스타일, 프리맨틀미디어의 ‘Project Runway’)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2011년 들어 새롭게 포맷을 수입하여 제작한 프로그램들로는 ‘댄싱 위드 더 스타’(MBC, BBC의 ‘Strictly Come Dancing’), ‘코리아 갓 탤런트’(tvN, 프리맨틀미디어의 ‘Got Talent’), ‘사소한 도전 60초’(MBC, NBC의 ‘Minute to Win It’)가 있다.

포맷의 수입에 비해 수출은 아직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KBS의 ‘도전 골든벨’이 중국과 베트남에, MBC의 ‘우리 결혼했어요’가 터키와 미국에, SBS의 ‘진실게임’이 인도네시아에 판매된 것이 대표적인 수출 사례로 꼽힌다. 컨설팅과 파견 피디 (flying director)까지 포함하는 풀 패키지의 포맷이 수입되는 최근의 경향과 대조적으로 대본과 기획 의도 수준의 포맷이 수출되고 있는 형편이어서, 포맷이 국내 방송사에 높은 부가가치를 가져다 주는 콘텐츠로 부상하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케이블채널 온스타일의 패션 디자이너 선발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사진 왼쪽)는 영국 프리맨틀미디어의 ‘Project Runway’ 포맷을 수입해 제작한 것이다.

브랜드 가치와 명성도 함께 거래

국가 간의 포맷 거래를 통해 전 지구적으로 표준화·규격화된 콘텐츠가 생산된다는 점과 다국적 기업의 브랜드 가치와 명성이 거래된다는 점, 포맷의 국제적 유통이 불균형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 등은 포맷 거래가 문화적 지구화를 가속화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먼저 대규모의 다국적 포맷 기업들은 표준화와 규격화를 통해 전 세계의 방송 시장에서 생산되는 지역 프로그램의 품질을 관리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포맷일수록, 초국적 기업의 치밀한 전략에 의해서 잘 다듬어진 포맷일수록, 더 세련되고 적용하기 쉬운 형태로 표준화돼 있다. 세계 각국의 수용자들이 표준화된 틀에 맞추어서 제작된 방송 프로그램을 거의 동시에 즐기게 되는 이러한 현상은 문화적 지구화 현상으로 지칭될 수 있다.

둘째, 포맷 거래에서는 단순히 프로그램의 내용과 형식뿐 아니라 프로그램이 지닌 브랜드 가치와 명성이 중요한 거래 대상이 된다. 포맷에 대한 구매 결정은 프로그램의 아이디어와 기획 의도뿐 아니라 프로그램의 국제적 명성이 충분히 구매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처럼 높은 비용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브랜드와 명성을 구매한다는 점에서 포맷의 유통은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같은 다른 산업 분야의 프랜차이즈 시스템과도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포맷은 대부분 미국, 영국, 서부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극히 일부 포맷만이 성공을 해서 오랜 기간 동안 인기를 유지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국제적인 포맷 거래의 불균형은 국제적인 포맷 거래 시장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NATPE(National Association of Television Programming Executives)와 MIPTV(World Market for Television Programs), MIPCOM(World Market for Television, Video, Cable and Satellite Films and Programs)은 포맷의 국제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이들 시장은 TV 프로그램과 포맷의 전 지구적인 트렌드를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마치 뉴욕이나 파리에서 세계적인 패션쇼 컬렉션이 개최되면 그해에 유행하게 될 패션의 트렌드와 아이콘이 확인되고 그러한 흐름이 여타 지역의 상품에 반영되는 것처럼 대규모 포맷 시장은 포맷의 유행과 흐름을 알려 주고 다른 지역의 프로그램 제작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구매국 취향 반영해 문화 융합

지역화(localization)를 통해 구매국의 취향과 정서를 반영함으로써 콘텐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은 포맷 거래의 가장 큰 장점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방송 콘텐츠의 거래와 달리 지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역의 미디어 기업이 스스로 지역적인 요소들을 불어넣어 지역 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으로 다시 제작한다는 점이 포맷 거래의 핵심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포맷 지역화 전략의 궁극적인 목적은 포맷을 수입한 국가에서 높은 시청률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문화적 할인이 높고, 내국인이 출연했을 때 더 높은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으며, 현장성과 생방송의 특성이 강조되는 장르의 경우(예를 들면 리얼리티나 오디션 장르) 완성된 프로그램이 아닌 포맷을 수입하여 재가공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하게 된다.

이처럼 지역화의 궁극적 이유가 경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지역화 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가 접합 및 융합됨으로써 새로운 지역적 가치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이 제작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포맷 거래는 지역 고유의 역사적 체험과 문화적 특성, 시민 정서를 글로벌 형식에 융합시킴으로써 문화적 혼종성을 생산할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전 지구적으로 표준화된 포맷에 지역의 색깔을 덧입힘으로써 문화 다원화의 가능성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포맷 거래는 문화적·산업적 차원의 ‘지구화’를 가속화하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문화 상품에 특정 지역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화’를 초래한다. 이런 점에서 포맷 거래는 지구적인 것(표준화된 보편적 가치)과 지역적인 것(지역화된 특수한 가치)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국내 방송 산업이 포맷 거래를 통해 바람직한 방송 문화를 만들어 가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포맷 거래의 본질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포맷 수입의 과정에서는 지역화 과정을 통해 국내 수용자의 가치와 정서를 최대한 반영
해야 할 것이며, 포맷 수출에서는 보편적인 가치들을 표준화된 포맷 형식에 담아냄으로써 포맷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이 원고는 2011년 한국언론학회 언론과사회 분과 기획 세미나에서 발표되었던 논문(지구적 미디어 환경 변화와 포맷 거래; 배진아, 2011)의 일부를 수정, 인용하였음.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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