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서울신문 어문팀 차장·한국어문기자협회장


‘어떤 일에서 손을 떼거나 다른 일에 손을 댈 수 없는 겨를.’ 국어사전에 나오는 뜻풀이다. 어떤 단어일까. 얼른 답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뜻풀이 하나. ‘주되는 일을 하는 중에 딴 일을 하기 위해 잠깐 내거나, 딴 일을 할 수 있을 만하게 잠깐 나는 시간적 여유.’ 바로 ‘짬’에 대한 설명이다. ‘짬’은 이렇듯 ‘시간’을 뜻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그러나 본래 ‘짬’은 공간을 뜻하는 말이었다. “돌과 돌이 맞이은 짬에는 물을 부어도 샐 틈이 없을 만큼 조그마한 흠도 없었다.”(박종화, ‘다정불심’) 이처럼 ‘두 물체가 마주하고 있는 틈’을 가리켰다. 그러다 의미가 확대돼 시간을 뜻하는 말로도 쓰이게 됐다. 지금은 대부분 시간을 가리킬 때 쓰이는 예가 많아졌다.

‘한참’이란 단어도 이와 유사하다. 처음에는 공간적 의미만을 뜻했다. 여기에 시간적 의미가 더해졌고, 현재는 시간적 의미로만 주로 쓰인다. ‘참’은 한자로는 ‘참(站)’인데 역참(驛站)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에 관원이 공무로 다닐 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각주와 현에 둔 객사였다. 주요 도로에 대개 25리마다 하나씩 두었다. ‘한’은 ‘하나’다. 그러니까 ‘한참’은 본래 ‘하나의 역참’이란 뜻이었다. 역참과 역참은 연결돼 있었다. 그렇다 보니 ‘한참’은 ‘역참과 역참 사이의 거리’라는 공간적 의미를 지니게 됐다. 25리는 10㎞정도 된다. 지금이야 가깝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예전엔 멀다면 먼 거리였다. 역참 사이를 오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해서 ‘시간이 상당히 지나는 동안’이라는 의미가 생겨났다.

‘한참’과 형태가 비슷한 말로 ‘한창’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종종 잘못 쓸 때가 있다. 대체로 ‘한창’을 틀리게 쓰는 경우가 많다. ‘한창’은 ‘어떤 일이 가장 왕성한 때’ 등을 뜻한다. “예년 같으면 지금이 조업으로 한참 바쁠 때다.”, “1965년 전쟁이 한참이던 사이공,” “이야기가 한참 무르익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따라서 여기 보이는 ‘한참’은 모두 ‘한창’으로 바꿔야 의미가 올바로 전달된다. ‘한참’은 시간이 꽤 지나는 상황에서 쓰인다.

쓰다 보면 헷갈리는 말들이 있다. 이 가운데 시간이나 공간과 연관 지어 생각하면 쉽게 해결되는 예들이 보인다. ‘넘어’와 ‘너머’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산을 넘어 갔다’에서 ‘넘어’는 동사 ‘넘다’의 활용형으로 움직임을 나타낸다. 움직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산 너머 남촌’의 ‘너머’는 명사다. ‘사물의 저쪽. 또는 그 공간’을 의미한다. 즉 너머는 공간 개념이다. ‘산 넘어 산’이란 속담은 ‘산 건너편 산’이 아니고 ‘산을 넘어 산’이란 말이다.

돈을 ‘좇다’라고 해야 할까, ‘쫓다’라고 해야 할까. 답은 ‘좇다’이다. ‘좇다’와 ‘쫓다’는 발음이나 형태는 물론 의미도 유사한 데가 있다. 그렇다 보니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도 ‘공간’이란 열쇠가 쉽게 해결해 준다. 흔히 ‘좇다’는 남의 뜻이나 흐름을 따를 때 쓴다고 한다. 즉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지향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명예를 좇아’, ‘꿈을 좇아서’…. 반면 ‘쫓다’는 물리적인 이동, 구체적인 움직임을 나타낸다. ‘쫓고 쫓기다.’, ‘강아지를 쫓아갔다.’ 이렇듯 공간의 이동이 있으면 ‘쫓다’이고 그렇지 않으면 ‘좇다’이다. ‘그의 시선은 새 떼를 좇았다’에서도 ‘이동’의 개념은 있지만, 공간을 움직인 것이 아니므로 ‘좇다’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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