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EU 언론 교류 프로그램 참가기

정철환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


“당신 여기서 뭐해? 죽고 싶어?”

키는 160㎝쯤 될까. 통통한 몸매에 딱 붙는 반팔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은 까무잡잡한 이탈리아 남자가 내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을 걸어 왔다. 실룩거리는 오른쪽 입가가 “너 같은 놈 하나 지중해의 퍼런물에 내던져 봐야 표도 안 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불쑥 튀어나온 생존 본능이 최대한 비굴한 표정과 말투로 나를 이끌었다. “그냥 신기해서…. 아내한테 보여 주려고… 정말 죄송합니다.”


가짜 명품 사진 찍다 혼쭐

지난 5월 말 나폴리에서 길거리에 널려 있는 가짜 명품 사진을 찍다 벌어진 일이다. 물건을 파는 세네갈 이민자(물론 불법체류다) 얘기가 “중국인들이 이탈리아에 와서 만드는 이른바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 짝퉁”이라고 했다. 서울에 남겨 놓고 온 줄만 알았던 기자 본능이 왜 하필 이럴 때 발동이 걸렸는지.

조금만 더 윽박지르면 울어 버릴 것만 같은 내 표정을 보던 그 남자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더니 검지를 튕기며 ‘얼른 사라져’라는 손짓을 했다. 속으로 만세삼창을 하며 100m쯤 도망가다 뒤를 돌아다보니 그는 반쯤 벗은 모델의 사진이 내걸린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를 둘둘 말아 자신의 목덜미를 툭툭 치면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한마디로 정말 진귀한 경험들의 연속이었다. 지난 4월 17일부터 7월 18일까지 12주간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으로 벨기에 브뤼셀의 유러피언 저널리즘 센터(EJC·European Journalism Center)에서 연수를 했다. 유럽 전반에 대한 이해와 EU의 정치·경제 구조와 현안에 대한 공부가 목표였는데, 다소 방법은 달랐지만 나름 소기의 목적을 이루고 왔다. 좌충우돌하면서 말이다.

월요일부터 목·금요일까지는 계속 세미나에 참석하고, 주말에는 허겁지겁 유럽 도시를 탐방(探訪)하는 일정을 반복했다. 내 일정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마누라가 “네가 아직도 30대 초반인 줄 아느냐. 그러다가 쓰러진다”며 냉소 섞인 조언을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유럽 방방곡곡을 가보랴” 하는 욕심에 나는 눈이 멀었다. 외국에서 살아 본 것도 처음,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 본 것도 처음인, 평생 처음으로 누리는 자유였다. 가능하면 가 보기 힘든 곳을 가 보려고 애썼다. 나폴리가 그랬고, 마르세유가 그랬다.


유럽인 생각과 삶, 날것 그대로 맛봐

마르세유는 거의 무정부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공공질서가 부재(不在)한 곳이었다. 길거리에는 트레이닝복 차림에 머리를 박박 깎은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특유의 이 지방 사투리로 온갖 욕설을 내뱉고 있었고, 낙서로 뒤덮인 시내 중심가에선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빈민가 아이들이 골목 축구를 하고 있었다. 싼 맛에 예약한 호텔마저 홍등가 한가운데 위치한 바람에 나는 늙은 매춘부와 불량배들의 조소 섞인 농담을 뒤집어쓰며 호텔 앞을 오가야 했다.

이 와중에 겪은 소중한 만남들이야말로 큰 행운이었다. 호기심에 먼저 말을 건 것보다는 원치 않은 경우가 더 많았지만 말이다. 유럽 열차들은 서로 마주 보도록 앉는 자리가 많다. 항상 싼 기차, 싼 자리만 찾다 보니 하필이면 이런 애매한 자리가 걸리기 일쑤였다. 덕분에 창밖만 내다보고 가다 잠깐 눈이 마주치는 사이에 말을 터야 하는 난감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대화들이 유럽인들의 진짜 생각과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시위대가 점령한 마드리드의 엘솔(El Sol) 광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백수 청년, 프라하 운송노조 파업 때문에 드레스덴에서 프라하까지 승합택시를 타면서 만난 독일인 노부부와 캐나다 히피, 또 피렌체에서 만난 베네수엘라 출신의 이민 여성, 밀라노에서 파리로 가는 싸구려 야간열차에서 만난 포르투갈인 일가족 등.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정말 소중한 인연이었다.

유럽이 아니면 이렇게 다양한 국적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동시에 만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실로 유럽은 다양한 문명의 ‘샐러드’였다. 각자의 맛과 색깔을 유지하면서 서로 뒤섞여 있는 상태. 브뤼셀은 이런 유럽의 전반적 분위기를 파악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유럽연합(EU)의 주요 정치·행정기관들이 죄다 모여 있고, 자연히 유럽 각국의 정치인과 행정가, 국제기구, 그리고 이들을 상대로 활동하는 수많은 로비스트와 전문가 집단이 있다. 브뤼셀의 EU 건물들 주변에 가면 네댓 명이 모여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2~3개의 언어로 떠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보면 브뤼셀이 상당히 국제화된 도시 같지만 실생활은 또 딴판이다. 주택가에는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슈퍼마켓에서 영어로 뭘 물어보면 바로 “나 영어 못한다”며 대번에 쏘아붙이는 게 보통이다. 도착한 다음날 휴대폰을 개통하러 갔다가 점원과 내가 서로 말귀를 못 알아들어 20여 분을 헤매기도 했다. 어설픈 프랑스어 한두마디 들이댔다가 총알처럼 튕겨 나오는 프랑스어 세례에 망신을 당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 상대방의 표정을 보면 ‘프랑스어도 할 줄 모르는 게 여기는 왜 왔냐’ 하는 것 같다. ‘학교 때 프랑스어 책꽤나 읽었다’면서 자신만만하게 갔지만, 현실 프랑스어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아마도 내가 가장 유창하게 구사한 프랑스어는 “나 프랑스어 못 하니 영어할 줄 아는 사람 불러 와라”였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비(非)프랑스어권 사람들이 비슷한 고충을 갖고 있었다.

브뤼셀이라는 한 동네에 유럽과 왈롱(프랑스어를 쓰는 벨기에 지역)이 충돌했던 것처럼 연수 기간 내내 ‘유럽은 모순 덩어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단적으로 게르만어를 쓰는 사람들은 로만어 쓰는 사람들을 “저 대책 없는 인간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으냐”라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반대로 로만어(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쓰는 사람들은 게르만 쪽 사람들을 보고 “니들 언제 사람같이 살아볼래”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서로 한 울타리 내에서 살아가는 걸 보면 신기할 지경이다.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사고를 쳐도 결국 독일이 나서서 막아 주듯이 말이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본부 주변 모습.

내부 경쟁으로 문화·경제적 힘 키워

결국 거대한 인종과 문화의 패치워크 같은 것이 유럽이고, 이들을 엮어 주는 솔기는 정치·경제적 이득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EU라는 공동체를 통해 세계 최대 시장을 만들어 내고, 또 미국과 중국 같은 강국과 정치적 영향력으로 경쟁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다.

우리 같으면 백 번은 싸우고 백 번은 헤어지고 말았을 것 같은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서도, EU라는 틀을 굳건히 이어 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유럽의 저력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유럽은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한 동네가 아니었다. 겉보기로는 근로 윤리도 형편없고, 오직 조상이 남겨준 자산에 기대어 쉽게 살아가고 있지만, 속으로는 세대 간, 인종 간, 국가/문화 간의 물밑 생존 경쟁이 정치와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럽은 근대가 개막한 이후 쌓아온 과학기술의 인프라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이미 아시아와의 경쟁에서 서너발 앞서 시작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도 그렇게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해 문화적, 경제적 경쟁력을 키워 가고 있다는 것이 나름의 결론이다.

돌이켜 보면 이번 연수는 내게 EU와 유럽, 유럽인에 대한 환상을 깨고 날것 그대로의 유럽을 마주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올해 초 윤영신(당시 경제부장) 부장께서 내게 “브뤼셀 가는 석 달짜리 연수가 있는데 한 번 지원해 보라”고 권유해 주셨을 때와 지금의 유럽에 대한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거의 매일같이 EJC 혹은 EJC와 협력관계에 있는 단체들의 세미나를 통해, 또 EU 취재증을 얻어 기자실(Press Room)을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얻은 사소한 깨달음들이 모인 결과다. 부끄러움을 조금만 벗어던지면, EU 관료들이나 다른 나라 기자들을 만나 폭넓은 이야기를 들어 볼 수도 있었다.


“왜 한국에서는 특파원이 안 오느냐”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것은 유러피언 커미션과 유럽의회 고위 간부들의 한국 매체에 대한 인식이다. 이들은 한국 매체의 인터뷰 요청에 상당히 소극적이다. 한국과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브뤼셀에서 한국 매체의 영향력이 거의 미미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국내 주요 신문이나 방송 중 브뤼셀에 상주 특파원을 두고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그나마 연합뉴스가 브뤼셀에 특파원을 파견하고 있어 체면을 살려 주고 있지만, 인원이 3명에 불과하고, 최근 2명으로 다시 줄었다. 일본과 중국은 물론 싱가포르 매체에서도 특파원을 보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기가 찰 노릇이다. 신화통신의 경우 브뤼셀 지국에만 기자와 리포터, 스태프를 포함해 20명 이상의 사람이 있다.

언론매체를 담당하는 간부가 “왜 한국에서는 특파원들이 안 오느냐”고 거꾸로 내게 질문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이런 상황에서 EU의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이 한국 매체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얼마 전 FT에서 특종 보도한 EU의 이동통신(무선 인터넷) 요금 강제 인하 정책 같은 것은 브뤼셀에서 오랫동안 취재한 기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이슈였다. 정부가 이통사의 무선인터넷 요금을 앞으로 3~4년 간 현재의 25% 수준으로 인하하겠다고 발표한 내용은 우리나라 입장에도 충분히 큰 뉴스가 아닌가. 언론사들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지만, 언론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머지않은 미래에 국내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들이 브뤼셀에 특파원을 보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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