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오브더월드가 휴대전화 음성 사서함을 불법 청취했다는 ‘폰 해킹’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실종 소녀 폰 해킹’이 알려지면서 영국인들은 크게 분노했다. 이전과 달리 해킹 대상자가 평범한 범죄
피해자였기 때문이었다. 여론이 들끓자 뉴스인터내셔널은 서둘러 뉴스오브더월드의 폐간을 발표했다.


황진우 KBS 기자


168년 역사의 신문이 스스로 폐간했다. 전직 편집장들은 줄줄이 경찰에 소환됐고 사주는 의회에 불려 나오는 치욕을 맛봤다. 다 먹었던 큰 먹잇감(BskyB)도 뱉어냈다. 그런데도 파장이 가라앉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당분간은 계속될 것 같다. 이 사건에는 ‘폰 해킹’이라는 잘못된 취재 관행을 넘어서는 사회적 쟁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국민적 공분 산 ‘실종 소녀 폰 해킹’

지난 7월 10일 폐간한 뉴스오브더월드(NoW)는 일요일마다 발행되는 대중지였다. 타블로이드 신문으로 정치인과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의 선정적 소식을 보도하는 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매일 300만 부가 팔린다는 영국 최다 부수 신문의 대중지 ‘더 선’의 일요 자매지로 역시 매주 280만 부가 팔렸다. 168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이어 왔으며 ‘더 타임스’, ‘선데이타임스’, ‘더 선’과 함께 루퍼트 머독의 영국 회사인 뉴스인터내셔널에 속해 있었다. 루퍼트 머독이 처음으로 인수한 영국 신문이기도 하다.

지난 7월 영국은 이 신문 때문에 발칵 뒤집힌다. 이 신문이 2002년 3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실종됐다가 6개월 만에 변사체로 발견된 13세 소녀 밀리 돌러의 휴대전화 음성 사서함을 불법 청취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을 특히 놀라게 한 것은 뉴스오브더월드가 실종 소녀의 음성 사서함을 몰래 청취하면서 새로운 메시지를 듣기 위해 오래된 음성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지워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오래된 음성 메시지를 지우지 않으면 음성 사서함의 용량이 꽉 차게 되고 전화를 건 사람이 새로운 메시지를 남길 수 없게 된다.

뉴스오브더월드가 지난 7월 10일 폐간된 이후 홈페이지도 함께 폐쇄됐다.
‘고마웠습니다, 안녕’이란 문구만 남은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



6년 전 왕세손 부상 기사가 발단

뉴스오브더월드의 이런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 때문에 가족들은 소녀가 살아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 이런 행위는 경찰의 초동 수사에 큰 혼선을 빚게 만들었다. 뉴스오브더월드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불처럼 끓어 오른 이유다. 이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전쟁 전사자 가족들과 2005년 런던 폭탄 테러 희생자 가족에 대한 휴대전화 음성 사서함 불법 청취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뉴스오브더월드는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사실 뉴스오브더월드가 휴대전화 음성 사서함을 불법 청취했다는 ‘폰 해킹’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벌써 수년째 각 매체의 미디어 면을 장식해 오고 있어 진부하다면 진부한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종 소녀 폰 해킹’이 알려지면서 영국인들은 크게 분노했고 이 분노가 뉴스오브더월드 폐간의 도화선이 됐는데 이는 이전의 ‘폰 해킹’과 달리 해킹 대상자가 평범한 범죄 피해자였기 때문이었다. 이전까지는 알려진 ‘폰 해킹’ 피해자는 정치인이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대부분 유명 인사들이었다.

비난 여론이 끓어오르자 뉴스인터내셔널은 서둘러 뉴스오브더월드의 폐간을 발표했다. 비난 여론을 조기에 차단해 이번 일로 BskyB 완전 인수를 그르치지 않겠다는 머독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정이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머독에게 불리한 기사들이 쏟아졌고 상황은 회복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뉴스인터내셔널은 영국 최대 방송사인 BskyB의 지분을 39%에서 100%로 늘리겠다는 계획마저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BskyB의 완전 인수는 루퍼트 머독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일로 문화부 장관인 제레미 헌트의 1차 승인을 지난 3월 받아 놓은 상태였다.

‘폰 해킹’ 사건의 시작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11월 당시 뉴스오브더월드의 왕실 출입 기자였던 클라이브 굿맨은 윌리엄 왕세손이 무릎을 다쳐 치료를 받았다는 기사를 특종 보도한다. 어찌 보면 별 기사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데 영국 왕실은 발칵 뒤집히고 만다. 왕세손의 부상과 치료는 왕실에서도 측근 보좌관 몇 명만 아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영국 왕실은 윌리엄 왕세손과 일부 왕실 직원의 휴대전화 음성 사서함을 누군가 몰래 청취한 것으로 추정하고 런던 경시청에 수사를 의뢰한다. 이것이 ‘뉴스오브더월드 폰 해킹 사건’의 시작이다.

수사 결과 왕실의 의혹 제기는 사실로 드러났다. 2007년 1월 기사를 쓴 클라이브 굿맨과 그를 도왔던 탐정 글렌 멀케어는 왕가의 휴대전화 음성 사서함을 불법 청취한 혐의로 수감되고 당시 편집장이었던 앤디 쿨슨은 편집장직에서 물러난다. 그는 이른바 ‘폰해킹’을 지시하고 지휘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받았지만 끝까지 자신은 전혀 몰랐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편집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한 후에도 음성 사서함 불법 청취가 뉴스오브더월드에 만연한 취재 방식이 아니냐는 의혹은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영국의 신문 규제 감독기관인 언론불만처리위원회(PCC·Press Complaints Commission)가 전면 조사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PCC는 별 다른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다. 이와 동시에 외부 압력에 시달리던 뉴스인터내셔널도 자체 변호사를 동원해 사임한 편집장 쿨슨과 경영진들의 이메일을 조사했지만 “그들이 굿맨의 불법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쿨슨은 사임한 지 넉달 만에 당시 야당 당수였던 데이비드 캐머런 현 총리의 언론특보로 임명된다.


2009년 ‘가디언’의 폭로로 재점화

그렇게 잊혀지는 듯했던 뉴스오브더월드의 폰 해킹 사건은 2009년 7월 일간지 가디언의 보도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가디언은 뉴스오브더월드가 전 축구 선수 고든 테일러 등 3명의 휴대전화 음성 사서함을 불법 청취했고 이에 따른 법정 분쟁을 막기 위해 이들 3명에게 100만 파운드를 줬다고 보도했다. 또한 음성 사서함 불법 청취 피해자가 최대 3,000명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과 뉴스오브더월드가 그동안 탐정을 고용한 ‘폰 해킹’은 물론이고 취재 대상의 납세 기록이나 사회 보장 기록, 은행 잔고 기록 등을 불법 열람해 왔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하지만 뉴스오브더월드는 가디언의 의혹 제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한 런던 경시청도 최정예 형사들이 이미 전 방위적으로 수사했지만 추가 수사의 필요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관련 의혹을 일축했다. 의혹의 중심에 서 있던 전 편집장 쿨슨 역시 자신은 폰 해킹을 용납한 적이 없다며 거듭 결백함을 강조했다.

PCC는 두 번째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이미 드러난 범죄 사실 외에 추가 증거들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이듬해 영국 하원의 문화언론스포츠위원회도 진상 조사에 나섰다. 역시 쿨슨이 폰해킹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 위원회는 다만 수감된 굿맨 외에는 아무도 ‘폰 해킹’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뉴스오브더월드의 주장은 믿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가디언은 뉴스오브더월드가 홍보계의 거물 맥스 클리퍼드의 음성 사서함을 불법 청취했고 맥스의 소송 제기를 막기 위해 100만 파운드를 지불했다는 보도를 한다.

2010년 10월 이번에는 전직 뉴스오브더월드 기자들의 폭로가 이어진다. 주인공 션 호아레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휴대전화 음성 사서함 불법 청취를 하라고 지시받았다고 고백한다. 호아레는 또 BBC와의 인터뷰에서 ‘폰 해킹’은 뉴스오브더월드의 관행 같은 것이었으며 당시 편집장이었던 쿨슨도 자신에게 ‘폰 해킹’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얘기했다. 쿨슨이 그동안 주장해 온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증언이었다. 또 다른 전직 기자인 폴 맥물란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뉴스오브더월드에는 불법적인 취재 기법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거들었다.
여론이 또다시 들끓자 런던 경시청은 두 전직 기자들을 참고인 자격이 아닌 용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벌인다. 하지만 새롭게 드러난 범죄 사실은 없다고 발표한다.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오른쪽) 회장이 지난 7월 19일 아들 제임스 머독과 함께 ‘폰 해킹’ 파문과 관련해 영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했다.


쿨슨의 두 번째 사임 그리고 체포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총리의 공보 책임자가 된 쿨슨은 끊이지 않는 여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지난 1월 사임한다. 하지만 이때에도 쿨슨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폰 해킹’과 자신은 무관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4월 3명의 뉴스오브더월드 기자가 ‘폰 해킹’ 혐의로 체포되고 경찰의 수사망은 쿨슨 쪽으로 빠르게 좁혀 들어가기 시작한다. 마침내 뉴스오브더월드 폐간 이틀 전인 7월 8일 쿨슨은 ‘폰 해킹’에 연루된 혐의와 경찰을 매수해 불법 정보를 빼낸 혐의로 체포돼 9시간에 걸친 집중 조사를 받게 된다. 2005년 처음으로 ‘폰 해킹’ 사건이 불거졌을 때부터 지난 1월까지 시종일관 자신은 ‘폰해킹’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해 왔으나 최근의 경찰 수사에서 이 같은 그의 발언은 완전히 허구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오히려 그는 뉴스오브더월드 전직 기자들의 증언처럼 ‘폰 해킹’을 부추긴 장본인이었다.

지난 1월 쿨슨이 총리의 공보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날 때만 해도 쿨슨을 옹호했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지난 7월 20일 영국 의회에 출석해 쿨슨을 공보 책임자로 임명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또한 ‘폰해킹’ 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쿨슨이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난다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겠다고도 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뉴스오브더월드 소속 기자들이 사설탐정 등의 도움을 받아 약 4,000명의 휴대전화 음성 사서함을 불법 청취했다는 사실과 앤디 쿨슨 등 뉴스오브더월드 간부들이 이를 지휘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뉴스오브더월드가 경찰을 매수해 개인 신상 정보 등을 몰래 빼돌렸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미 런던 경시청의 1, 2인자들이 책임을 지고 사퇴한 상황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등장 인물들이 출연하는 이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친 후에 멎을지 지켜볼 일이다.


*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으로 영국 런던대학교 UCL에서 연수중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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