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중국 지도자의 건강 이상 혹은 사망을 둘러싼 오보 소동은 비일비재했다.
덩샤오핑이 1997년 죽기 전까지 외신들은 최소 500차례 이상 사망 소식을 보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장쩌민 사망 보도는 언론과 정치 분야에서 ‘죽의 장막’이 여전함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주춘렬 세계일보 베이징 특파원

7월 초 중국 대륙은 장쩌민(江澤民·85) 전 국가주석의 예기치 않은 사망설로 큰 혼란에 휩싸였다. 중국 인터넷에서 장 전 주석의 사망설 혹은 위독설이 급속히 번졌고 홍콩과 대만, 일본, 한국 언론들도 앞다퉈 사망설을 보도했다. 중국 정부와 관영 언론이 장 전 주석의 사망을 부인하면서 사망 보도는 결국 오보로 판명 났다.

원래 중국에서 지도자의 건강 이상 정보는 사회 혼란 및 체제 전복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일급비밀’로 분류돼 ‘금기 중의 금기’로 여겨져 오고 있다. 이처럼 정보 공개가 안 되다 보니 특종 경쟁이 치열해지고 덩달아 오보도 대거 양산돼 왔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개혁개방을 통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번 장쩌민 사망 보도는 정보 공개 및 언론과 정치 분야에서 여전히 ‘죽의 장막’이 걷히지 않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장쩌민 사망설, 대륙을 흔들다

‘장쩌민 전 주석이 6일 0시 상하이 화둥병원에서 간암으로 사망했다.’ (대만 자유시보, 보쉰닷컴 )
‘장 전 주석이 6일 저녁 사망했다. 시신은 베이징 해방군총의원(解放軍總醫院, 301병원)에 안치돼 있으며 사인은 뇌사다.’(일본 산케이신문)
‘장 전 주석이 6일 병으로 서거했다.’(홍콩 ATV)
‘장 전 주석은 최근 건강 악화로 치료를 받아 오다 5일 밤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KBS)

이 보도가 모두 사실이었다면 장 전 주석은 시기나 사인, 장소를 달리하며 사망과 부활을 오락가락했던 셈이다. 원래 장 전 주석 사망설은 지난 6월부터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6월 25일 홍콩의 봉황 위성TV 웹사이트에는 장 주석이 지난 4월 중병에 걸렸다는 글이 게재됐고 대만의 연합보(聯合報) 등이 이 글을 토대로 장 전 주석 와병설을 소개하기도 했다. 지난달 말에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장 전 주석이 ‘생물학적으로 사망했다’,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글이 올라왔다가 삭제되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해 손을 흔드는 장쩌민(江澤民)전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
                                 중국의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지난 7월 6일 장 전 주석이 간암으로 사망했거나 위독한 상태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오보로 드러났다.



사망설은 중국 지도자의 통과의례

이어 장 전 주석이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행사에 불참하면서 중병설 혹은 사망설이 불붙었다. 미국에 서버를 두고 운영되는 중국어 사이트 보쉰(博迅) 닷컴은 6일 오전 장 전 주석이 사망했다고 보도했고, 대만의 자유시보(自由時報)는 이를 인용해 사망 소식을 전했다.

이어 한국과 홍콩, 일본 등에서 번갈아 가며 중
국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사망 보도가 나왔다. 중국 웨이보 등 인터넷에서도 검열 당국의 고강도 통제에도 이들 보도가 중국어로 번역돼 소개되었다가 삭제되는 일이 반복됐다. 또한 ‘장쩌민 생사불명: 후(후진타오 국가주석)가 시진핑을 쓰러뜨릴 시간이 다가왔다’, ‘중국 언론이 사망 보도를 준비하고 있다’, ‘당국자들이 발표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때까지 장쩌민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여겨졌다.

곧바로 중국 당국의 관영 언론이 진화에 나서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관영 신화통신은 7일 낮 복수의 권위 있는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장 전 주석이 병으로 사망했다는 최근의 외신 보도가 순전히 소문일 뿐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는 사망설의 진위에 대한 외신 기자의 질문에 신화통신의 보도를 참고하라고 답했다. 장 전 주석의 가족도 사망설을 반박하면서 단지 장쩌민이 심한 감기에 걸렸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대만의 민영방송인 중국라디오방송(中國廣播公司)이 보도했다.

급기야 장 전 주석의 사망을 보도했던 홍콩의 민간방송 ATV(亞州電視)는 오보를 시인하면서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ATV는 성명을 통해 ‘신화사가 발표한 보도를 접하고 6일 저녁의 장쩌민 선생 별세 보도를 철회한다’면서 ‘시청자 및 장쩌민 선생과 가족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시간이 흐르자 장 전 주석의 건강에 관한 정보도 공개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사망설 보도가 한창 퍼질 때 장 전 주석이 병원에서 퇴원한 뒤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고 13일 중국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신문은 장전 주석이 지난 6월 고열 등을 포함한 증세로 베이징 301병원에 입원했다가 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일(7월 1일) 이전에 퇴원했으며 현재 건강을 회복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에 장 전 주석은 한저이(韓哲一) 전 상하이 시 서기의 장례식에 화환을보내 건재를 과시했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장쩌민 사망설이 인터넷에 나돌자 관영 신화통신 등 중국 매체들은 장 전 주석이 서문을 쓴 러시아 출신 자동차 엔지니어 키레프의 회고록 출판기념회 소식을 보도하는 방식으로 사망설을 불식시킨 바 있다.

과거에도 중국 지도자의 건강 이상 혹은 사망을 둘러싼 오보 소동은 비일비재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1997년 2월 19일 사망하기 전까지 주요 외신들은 최소 500차례 이상 사망 소식을 보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6·4 천안문 사태의 책임을 지고 실각했던 비운의 지도자 자오쯔양(趙紫楊) 전 공산당 총서기도 2005년 1월 17일 사망하기 수년 전부터 사망설이 퍼지기도 했다. 중국 지도자들은 숨을 거둘 때까지 마치 통과의례처럼 사망설과 건강 악화설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입원한 것으로 알려진 상하이의 화둥병원 외부 전경.


예민한 정보엔 언론 자율 인정 안해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걸까. 중국 당국은 ATV의 사망 보도에 대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면서 경고했다. 홍콩 주재 중국 연락판공실(中聯瓣)은 보도와 관련한 규정을 엄중하게 위반한 ATV의 행위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의 지적처럼 과도한 특종 경쟁에 매달리다 사실 확인에 소홀한 일부 언론의 무책임도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언론의 입장에서 장쩌민과 같은 중국 지도자의 건강 이상은 정치·사회적 파장이 큰 데다 중국 당국도 전혀 공개하지 않아 기사 가치가 클 수밖에 없다.

장 전 주석의 경우 이미 10년 전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현재 중국 권력의 최대 실세인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를 기반으로 권력을 다진 정치 세력)의 거두로 아직까지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사망은 상하이방의 구심점이 사라짐을 의미하며 그에 따른 권력 구도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화권 언론에서 사망설과 더불어 그의사후 중국의 권력 판도를 다루는 보도가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망 오보를 온전히 언론의 과도한 특종 경쟁과 직업윤리 탓으로 돌리기에는 사정이 그리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정보 독점에 집착하는 중국 정부와 당의 해묵은 기밀주의가 화를 자초하는 주범이라고 봐야 할 성싶다. 신화통신은 장 전 주석의 사망을 부인하는 기사를 영문으로만 내보냈다. 이마저도 잠시 후 인터넷에서 사라졌고 중문 기사는 아예 작성하지도 않았다. 장 전 주석의 건강이 호전됐다는 소식도 영자지인 SCMP에만 실렸다. 정보 기밀주의에 집착하는 중국 당국의 다급한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중국 선전 당국은 국내에 나도는 각종 사망설 및 사망 보도를 고강도의 언론 및 인터넷 검열로 전면 삭제하고, 해외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는 영문 기사로만 대응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언론은 중국 당국의 서슬 퍼런 통제와 탄압에 입을 다물었고 인민은 이에 관한 어떠한 정보에도 접근할 수 없었다. 지도부의 건강 이상처럼 예민한 정보에 관한 한 중국 언론에는 한 치의 자율성도 허용되지 않은 셈이다.


민주개혁 실패 땐 경제 공든 탑 위태

중국 당국의 정보 독점 관행은 어떤 결과를 야기할까. 정보 공개에 인색하다 보면 미공개 정보를 둘러싼 억측과 소문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또한 허위정보를 흘려 경제 혹은 정치 이익을 챙기거나 언론의 특종 경쟁을 이용하는 이들도 생겨나기 일쑤다. 각종 소문과 설이 나돌고 숱한 정치 음모설도 뒤따르게 마련이다.

또한 기밀주의는 중국 당과 인민 간 불신의 악순환을 야기할 수도 있다. 중국 당국은 지도자의 건강정보가 인민의 동요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판단, 일반 국민이 알아서는 안 되는 ‘특급비밀’로 간주한다. 중국 공산당이 늘 ‘인민 속으로’, ‘인민을 위하여’를 외치면서도 정작 인민의 이성적 판단을 믿지 않는 엘리트 의식의 함정에 빠져 있는 셈이다. 정부와 당이 인민을 믿지 못하니 당국을 불신하는 인민도 늘어나는 게 자명한 이치다.

기밀주의와 언론 통제 및 탄압이 기승을 부릴수록 각종 소문이 난무하고 정부 불신의 골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장 전 주석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에 빗대 ‘개혁개방의 완성자’라 불린다. 그는 이념에 집착하는 대신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확대하며 중국을 경제 대국으로 키운 인물로 평가된다.

더 늦기 전에 중국이 경제 개혁개방처럼 언론의 자율성 확대와 정치 개혁의 정도에 조속히 나서기를 기대해 본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경고한 것처럼 중국이 정치와 민주개혁에 실패할 경우 30년간 쌓아 온 눈부신 경제 도약이라는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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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deira plastica 2012.02.15 0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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