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4월호 파워블로거의 세계<11>



블로그를 운영한 지 6개월 남짓 지나면서부터 슬슬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반응을 직접 접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또 댓글이나 트랙백 같은 것들을 통해 이슈를 확대해 나가는 재미도 적지 않았다. 어렴풋이 ‘블로그에 대한 책을 한 권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블로그를 하면서 ‘전투를 기록하는 자’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블로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들을 저술이란 형태로 정리해 내는 쪽에 내 블로그 활동의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 블로그를 저렇게 활용할 수도 있구나’란 메시지를 전해 주는 것으로도 가치는 있다고 애써 생각하기로 했다.

 

2003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연히 외신 기사를 통해 살람팍스가 운영하는 블로그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귀가 솔깃했다. ‘이거 완전히 21세기판 안네의 일기구먼’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여러 외신들을 참고하면서 살람팍스 이야기를 제법 그럴듯하게 써냈다. 당시 썼던 기사는 적지 않은 반향을 몰고 왔다. 그리고 그 기사는 내가 블로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자그마한 계기가 됐다. 
 마침 그해 봄부터 서울 시내의 한 대학에 겸임 교수로 출강하면서 온라인 저널리즘 강의를 맡게 됐다. 이런저런 온라인 저널리즘 현상에 대해 소개하면서 난 학생들에게 “앞으로 블로그를 주목하라”고 말했다. 그 무렵 포털 관계자로부터 앞으로 블로그가 유망한 사업 분야 중 하나가 될 것이란 얘길 들었던 터라 자신 있게 블로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 포털들이 블로그 서비스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종강 무렵 몇몇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배웠던 블로그가 진짜로 화제가 되는 걸 보니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도 그때까지는 블로그가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까지 떠오를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연구 대상으로 시작한 블로그


내가 블로그 세계에 진짜로 발을 담근 것은 그로부터 꼬박 1년이 지난 2004년 여름이었다. 2학기 강의를 앞두고 학생들과 함께 실습할 만한 것을 찾던 중 블로그가 떠올랐던 것이다. 방학 기간 동안 네이버에 ‘김익현의 세상 읽기’란 블로그를 하나 개설한 뒤 잡다한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김익현의 세상 읽기’는 크게 온라인 저널리즘에 관한 글들에 일기 형식의 잡다한 일상사 등 두 가지 종류의 글들로 구성했다. 온라인 저널리즘 쪽엔 우선 예전에 썼던 글들을 중심으로 업데이트했다. 잡지에 기고했던 글과 기사들 중에서 블로그에 올릴 만한 것들을 추려냈다. 그러면서 조금씩 관련 글들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초기엔 네이버 블로그의 ‘장점(?)’을 살려서 유용한 자료라고 생각했던 글들을 ‘펌질’한 적도 많았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던 무렵엔 하루 방문자라고 해 봐야 수십 명 수준에 머물렀다. 그마저도 대부분 뜨내기손님들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어느새 블로그를 매개로 ‘사귀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이었지만, 온라인 저널리즘이나 블로그 현상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면서 제법 공감대를 형성했던 기억도 새롭다.
이처럼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는 즐거움도 적지 않았지만, 내게 블로그는 철저하게 연구의 대상이었다. 애초에 ‘강의용’으로 시작했던 블로그 이용 동기는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사람 사귀는 데 서툰 내 성향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이듬해인 2005년 박사 과정에 진학하면서 블로그는 최신 연구 동향을 소개하고, 또 담아 놓는 그릇 노릇을 톡톡히 해 줬다.

블로그 주제로 책을 써보자
블로그를 운영한 지 6개월 남짓 지나면서부터 슬슬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반응을 직접 접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또 댓글이나 트랙백 같은 것들을 통해 이슈를 확대해 나가는 재미도 적지 않았다. 어렴풋이 ‘블로그에 대한 책을 한 권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 내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직장 생활과 박사 과정을 병행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여유를 갖기 힘들었다. 그 무렵 회사에는 절반 정도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시간은 빠듯했다. 그래서 블로그를 저술 작업의 밑거름으로 삼기로 했다. 의도적으로 내가 쓸 책의 주제와 관련된 글들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5, 6개월가량 저술을 염두에 두고 블로그를 운영했다. 외국 자료들을 정리해서 올리기도 하고, 여러 블로그들을 방문하면서 내 나름의 생각들을 정리했다. 또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때그때 업데이트했다. 그 과정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여러 블로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들이 무심코 한마디씩 달아 놓은 댓글이 때론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했다. 특히 그 무렵 블로그 세계의 ‘고수’로 통하던 몇몇 블로거의 글들은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일찍이 댄 길모어가 ‘우리가 미디어다(We the Media)’란 책을 통해 ‘오픈소스 저널리즘’이라고 불렀던 것을 내가 몸소 체험한 셈이었다.
 그해 7월에 접어들 무렵엔 블로그에 제법 많은 단상들이 쌓이게 됐다. 때마침 대학원도 종강을 한 터라 본격적으로 집필 작업에 착수했다. 하루에 원고지 40~50장을 너끈하게 쓴 적도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써 나갔다. 그렇게 속도를 낸 끝에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블로그 파워’다. 쓰기 시작한 지 두 달이 채 안 돼 탈고를 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블로그가 없었더라면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해 책을 한 권 써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블로그 파워’에서 블로그의 원천을 링크, 긴 꼬리, 그리고 신뢰와 평판으로 정리했다. 긴 꼬리는 요즘 자주 사용하는 ‘롱테일(long tail)’을 우리말로 친절하게(?) 번역한 것이다. 그 무렵 몇몇 선구적인 블로거들이 크리스 앤더슨의 글을 소개하는 것을 접했고, 그 글들을 통해 나름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블로그 파워’는 내 나름대로 블로그를 이용하면서 느낀 점들을 학술적으로 약간 치장한 책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내 개인의 생각이라기보다는 블로그를 통한 집단지성의 산물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이런 집필 방식은 1년 뒤 KT문화재단의 저술 지원을 받아서 ‘웹 2.0 시대의 온라인 미디어’를 저술할 때도 똑같이 적용했다. 역시 학기 중에 각종 아이디어들을 블로그에 올리고, 여러 블로거들과 토론을 한 뒤 방학 기간을 이용해 내 생각을 정리해 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블로그는 내 저술 작업을 도와주는 가장 뛰어난 조력자라고 해도 크게 그르진 않다(‘웹 2.0시대의 온라인 미디어’는 그 뒤 판매용으로 재출간하면서 ‘웹 2.0과 저널리즘 혁명’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인기보다는 주제공유하고 싶다
‘김익현의 세상 읽기’가 내 블로그 활동의 1기였다면 2007년 무렵 티스토리에서 새롭게 시작한 ‘하이퍼텍스트’는 2기로 분류할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에 운영하던 ‘김익현의 세상 읽기’와는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주제를 좀 더 집중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생활 속 이야기’ 같은 것들은 완전히 없애 버리고 블로그나 온라인 저널리즘 관련 글들을 집중적으로 업데이트한 것이다. 박사 논문 작업을 할 때는 관련 자료들을 많이 올렸다.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내 블로그엔 트랙백이나 댓글 같은 것들이 폭발적으로 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냥 관심 있는 사람들이 방문해 조용히 놀다 갈 따름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시끌시끌한 맥줏집보다는 조용한 카페 분위기라고나 할까? 나 또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굳이 많은 방문자들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여러 명의 뜨내기손님보다는 관련 주제를 공유하는 한 명의 단골이 내겐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이퍼텍스트’를 시작할 무렵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다시 ‘풀타임 기자’로 복귀했다. 따라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기자들이 흔히 겪는 애환을 많이 경험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블로그에 쏟을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간단한 글 하나를 올리려고 해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를 ‘업무와의 연계’와 ‘마음 비우기’를 통해 해결했다. 가급적 일이나 내가 관심 있는 연구와 관련된 글을 포스팅하는 한편 블로그에 뭔가 대단한 글을 올리겠다는 욕심을 버린 것이다. 그냥 토론의 단초가 될 만한 간단한 화두를 던지겠다는 생각으로 블로그를 운영했다. 그런 점에서 내 블로그는 완성된 공간이라기보다는 ‘진화하는 공간’이다. 내 생각을 남에게 설파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함께 이야기하는 공간이다. 시간 부족과 게으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전략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론 블로그의 메커니즘과 잘 맞아떨어진 것 아니었느냐는 생각을 해 본다.

완성을 향해가는 훌륭한 통로
이제 글을 정리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처음 ‘파워 블로거의 세계’에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는 많이 망설였다. 과연 내가 ‘파워 블로거’로 불릴 자격이 있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최근 들어선 블로그 활동에 더 소홀했던 터라 방문객 수도 뚝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결국 글을 쓰기로 하면서 나는 ‘전투하는 자’와 ‘그 전투를 기록하는 자’란 말로 자기 합리화를 하기로 했다(블로그 활동을 전투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 과했다면, 용서하기 바란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블로그를 하면서 ‘전투를 기록하는 자’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블로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들을 저술이란 형태로 정리해 내는 쪽에 내 블로그 활동의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 블로그를 저렇게 활용할 수도 있구나’란 메시지를 전해 주는 것으로도 가치는 있다고 애써 생각하기로 했다.
여러 사람들이 강조했듯이 블로그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냥 하나의 도구일 따름이다. 쓰기에 따라선 굉장히 개방적인 매체가 될 수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선 아주 폐쇄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따라서 블로그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는 것은, 블로그를 아예 무시하려 드는 것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다. 블로그는 완성을 향해 가는 훌륭한 통로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나는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그 통로의 자그마한 단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여러 글들로 정리해 냈던 그 단서들은 내게 여느 ‘파워 블로거’ 못지않은 자신감을 갖게 해 줬다. 그 자신감이 이 글을 쓰게 된 원천이다.  
 나는 블로그가 던져 준 진짜 중요한 메시지는 ‘개방’과 ‘평등’이라는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대정신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블로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커다란 축복이다. 그 축복을 만끽할 수 있는 한, 나는 블로그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설사 열정적으로 블로그 활동을 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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