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렙의 구성 형태와 장단점


2005년 방송·광고규제개혁 TFT에서도 핵심 쟁점은 미디어렙의 경쟁체제 도입 방법이었다.
1공영 1민영의 제한경쟁론과 1사 1렙의 완전경쟁론, 신고제에 준하는 자유경쟁론으로 갈렸다.
당시 ‘1공영 1민영 도입 3년 후 1공영 2민영’으로 결론이 났다면, 모든 게 질서 있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김민기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누구나 “그때 만약 ~했더라면” 하고 상상이나 후회를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인생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다. 주어진 선택지를 모두 다 해 보는 것은 시간, 공간, 인간의 조건이 허락하지 않는 까닭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선택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에게 ‘만약’이 허락돼 과거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허용된다면 2005년 상반기로 돌아가고 싶다.


개혁안 추구하다 구체제에 안주한 것이 화근

2005년 문화관광부는 방송·광고규제개혁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렸다. 필자는 언론학회 추천으로 참여해 광고분과위원장을 맡아 광고제도 개혁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그 당시의 핵심 쟁점은 미디어렙의 경쟁체제 도입이었다. 1공영 1민영의 제한경쟁론과 1사 1렙의 완전경쟁론, 신고제에 준하는 자유경쟁론 등이 대두됐는데, 주된 흐름은 1공영 1민영과 1공영 2민영(MBC를 민영으로 간주)의 양 갈래였다. 필자는 좌장으로서 “미디어렙 논의는 얇은 유리잔과 같아 조금만 세게 부딪혀도 깨지기 쉽다. 서로 조심조심 양보하며 타협안을 도출하자”며 논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양쪽의 주장은 팽팽히 맞섰다. 도저히 타협안이 마련되지 않아 다수결로 해서 “1사 1렙으로 출발해 3년 후 1공영 2민영을 도입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했다. 그러자 1공영 2민영 내지 자유경쟁을 주장했던 김기원 당시 광고주협회 상무와 박현수 단국대 교수가 반발하며 사퇴했다. 그리고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가 참여했다.

자유경쟁론자들이 사퇴하자 논의의 추가 1공영 1민영으로 기울어졌고, “굳이 1공영 1민영을 도입할 것도 없다.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를 고쳐 쓰자. 코바코에 내부 경쟁을 도입하면 된다. 영업본부를 둘로 나누어 1공영 1민영 효과를 보면 될 것 아니냐”는 새로운 ‘내부경쟁론’ 쪽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나름 학자들과 업계 대표가 중지를 모아 자율적으로 개혁안을 도출하려다 결국은 구체제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 후 김기원 전 광고주협회 상무가 패시픽미디어 설립을 주도하고, 코바코에 출자를 요청한다. 방송법 시행령 제59조 제5항에 “법 제73조 제5항 본문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방송광고 판매 대행사’라 함은 방송광고 판매 대행을 위하여 설립된 주식회사로서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출자한 회사를 말한다”(개정 2007. 8. 7)고 규정돼 있으므로, 코바코의 출자를 받아 온전한 방송광고 판매 대행사, 즉 미디어렙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요청은 코바코로부터 일축당한다. 패시픽미디어는 “코바코가 출자를 거부함으로써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해 결국 2008년 11월 27일 코바코의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 독점 규정은 ‘헌법불합치’라는 판결을 받아 낸다. 패시픽미디어의 승리였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코바코의 독점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미디어렙이 방송의 보도 편성과 광고영업 분리를 통해 방송의 공공성 및 공영성을 담보한다는 미디어렙이라는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했고, 허가제도도 유지해야 한다고 판시
했다. 결과적으로 패시픽미디어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아쉬워하는 것은 2005년 당시 “1공영 1민영 도입 후 3년 후 1공영 2민영으로 가자”는 결론을 도출했더라면, 2006년에는 1공영 1민영의 경쟁체제가 도입되고 2009년에는 1공영 2민영이 됐을 것이며, 이러한 진행이 파열음 없이 질서 있게 진행 됐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

지난 1월 20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방송광고공사 창사 30주년 기념식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축하 떡을 자르고 있다.


미디어렙 체제 5개 방향의 특징

헌법재판소는 코바코 체제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당사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보아 위헌적인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구체적으로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대행 사업을 일정한 요건, 조직, 시설을 갖춘 업체에 한하여 허가제로 하는 방안 ▲중소 방송국에 일정량의 방송광고를 제공하는 경우에만 민영 광고판매 대행 사업자의 설립을 허가하는 방안 ▲방송광고 가격의 상한선을 정한다든지 특정 장르, 특정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쿼터제를 도입하는 방안 ▲방송사의 출연금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공공성이 높은 프로그램 제
작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 ▲허가를 받은 경우에도 방송의 공익성·공정성을 해하는 영업을 할 경우에는 허가를 취소한다든지 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그리고 2009년 12월 31일까지 국회에서 방송법 제73조 제5항과 방송법 시행령 제59조 제5항 등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도 새로운 미디어렙 제도와 관련한 법안이 여럿 제안됐다. 여당에서는 한선교·이정현·진성호 의원 등이 발의하고, 야당에서는 전병헌(민주당)·김창수(자유선진당)·이용경(창조한국당)의원 등이 법안을 발의했다. 2009년 말 방송통신위원회도 정부의 입장을 제시했다. 여섯 의원의 제출법안은 대체로 코바코 조직을 개편해 하나의 공영 미디어렙을 존치시키고, 민영방송인 SBS에는 독립된 미디어렙을 허용하자(1민영)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법안은 공영 미디어렙이 KBS, EBS, MBC를 묶어서 대행하느냐(1공영), MBC에 별도의 미디어렙을 허용하느냐(2공영)로 크게 갈라진다.

의원 제출 법안의 차이를 좀 더 살펴보자. 1공영 1민영 안은 방송광고 시장이 완전 경쟁체제가 되면 사실상 방송사와 광고주 간에 직거래가 이루어져 양자 간의 유착, 방송의 상업화와 같은 폐해 발생을 우려한다(김창수 의원 안). 2공영 1민영을 주장하는 측은 방송광고의 완전 독점체제 해소와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통한 산업 발전에 주목한다(한선교·전병헌·이정현 의원 안, 방통위 안). 중간 안은 일단 1공영 1민영으로 출발하고, 추후 시장 여건 등을 감안해 사업자를 확대하는 방안이다(진성호 의원 안). 1공영 1민영이되 두 개의 미디어렙이 공영과 민영방송에 교차 판매하도록 허용해 각 영역에서의 독점을 방지하고 경쟁을 유도하자는 안(이용경 의원 안), 2공영 1민영이되 교차 판매하자는 안(전병헌 의원안) 등은 경쟁 판매를 주안점으로 삼고 있다.

또 미디어법이 통과됨에 따라 종편의 미디어렙 위탁이 변수로 떠올랐는데, 미디어렙 의무위탁 대상을 기준으로 할 때 지상파만 미디어렙을 이용하고 종편은 자유영업을 하도록 하자는 안(방통위, 한선교·이정현·진성호 의원 안)과 지상파와 종편·보도 PP 모두 의무위탁토록 하자는 안(전병헌·이용경·김창수 의원 안)이 있다.

어느 법안이나 완벽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법안도 문제점만 안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일장일단이 있는 것이다.

자연과학에는 정답이 있으나 사회과학에는 정답이 없다. 사람의 지문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사회제도도 나라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 것도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는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다.


미국식은 상업성, 유럽식은 공익 추구

미디어렙에는 미국식과 유럽식이 있다. 미국의 미디어렙 제도는 상업방송이 주류인 미국에는 맞는 것으로, 상업방송사가 광고주와의 거래 편의와 수입 극대화를 충족시키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유럽의 미디어렙 제도는 보도 편성과 광고영업을 분리해 방송의 공영성과 공익성을 보장한다는 점을 중시한 것이다.

우리는 1981년 이래 공영방송 중심 체제였다가 1991년 SBS를 허가함으로써 민영방송을 가미했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미디어렙 도입 논의의 흐름은 유럽식을 전제로 하게 됐다.

여기에서 미디어렙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 공영중심론, 제한경쟁론, 확대경쟁론, 완전경쟁론, 직접판매제 등 다섯 가지 주장의 특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이진로, 2011).

첫째, 공영중심론은 기존의 코바코 독점 체제와 같이 방송의 공익성을 강조한다. 광고판매제도의 투명성, 공개성, 합리성을 높임으로써 시장 거래 질서의 부작용을 방지한다.

둘째, 1공영 1민영의 제한경쟁론은 방송의 공공 서비스 보장을 우선 보장한다. 공익성을 중심으로하되 시장원리를 부분적으로 도입해 공공성과 효율성의 균형을 꾀한다. 공익성을 강조하므로 광고 소비자, 즉 시청자의 이익에 더 부합하지만 시장의 효율성 측면에서 일부 제한된다.

셋째, 2공영 1민영(MBC를 공영으로 간주)의 확대경쟁론은 지상파 3사에 모두 미디어렙을 허용하자는 안이다.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광고시장과 방송시장 모두의 성장과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시각이다. 지나친 경쟁은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공익성과 시장을 조화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병존한다.

넷째, 1사 1렙의 완전경쟁론은 모든 방송사별로 미디어렙을 설립하도록 하고 방송사 간 경쟁을 보장하는 방안이다. 시장의 자유경쟁 원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시장의 효율성이 광고시장과 방송시장 모두의 성장과 발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논리다. 시장의 발전과 효율성 측면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다섯째, 직접판매제는 미디어렙 제도와 방송의 공영성을 부정하는 시각이다. 광고 를 방송사가 직접 판매한다. 광고의 판매와 구매를 둘러싸고 방송사와 광고주의 상호 영향력 행사가 불가피하다. 방송사는 보도를 내세워 광고주의 광고 구매를 연계 시킨다. 광고주 입장에서 방송사 보도의 부정적인 내용을 줄이고, 긍정적인 방향의 보도를 늘리기 위해 방송광고를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긴 결과 시장의 실패에 직면할 수 있다<표>.


코바코와의 계약은 해제 상태

여기에 더 논의해야 할 사항은 지역방송, 종교방송에 대한 연계판매제도와 전송료 배분 그리고 방송 광고의 균형 발전을 도모할 공적 기구의 설립 운영 등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렙 제도 개편 논의가 코바코 중심의 공영 미디어렙 제도로부터 발전되는 논의가 되기 위해서는 방송에 대한 자본의 영향력 차단, 취약 방송사의 존립과 운영을 통한 방송의 다양성 확보, 적정 방송 판매 단가의 유지로 중소기업의 방송광고 기회 제공, 광고 요금의 인상으로 초래되는 물가 인상의 최소화, 시청자가 양질의 유익하고 공정한 프로그램을 시청할 권리의 침해 방지 등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지상파 방송광고 영업은 일견 평온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광고영업 대행은 아직 코바코가 수행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법률개정 시한의 경과로 코바코의 방송광고 대행권은 소멸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현재는 2009년 12월 31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미디어렙) 임시 운영 권고안’에 기반을 두고 연장되고 있을 뿐이다. 이 권고안은 ▲방송편성·제작과 광고영업 분리, 방송사와 광고주 간의 영향력 행사 방지 등 방송광고의 공공성과 공익성 저해 행위 자제 ▲종교 및 지역방송에 대한 광고판매 지원 유
지 ▲방송광고 거래조건과 요금, 수수료 등의 공정한 결정과 지급 등 거래 안정성 확보 ▲분쟁 발생 시 조속한 해결 등을 담고 있다. 지상파 3사와 코바코는 이 권고안을 준수하는 형태로 광고영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코바코와 MBC나 SBS의 계약 관계도 연장되지 않고 해제된 상태다. 양 방송사는 언제라도 직접 또는 미디어렙을 설립해 광고영업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다. 아직까지는 방통위의 권고안이 준수되고 있으나, 앞으로 종편의 광고영업이 본격화될 때, MBC와 SBS가 방통위의 페널티를 감수하고 직접 영업에 나설 경우 제어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러한 여러 법안과 제도적 검토가 엇갈릴 때, 흔히 받는 유혹 중의 하나가 무의사 결정 즉 어떤 결단도 내리지 않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특히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이 몇몇 관련 당사자들에게 유리할 경우 그런 유혹은 더욱 강해진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로 방송광고 판매대행 조항이 실효된 상태에서 아무런 의사 결정을 하지 않으면 미디어렙 제도는 무법 상태가 된다. 종편은 자유로운 직접 영업이 가능해진다. SBS는 미디어렙을 설립해 운영할 수 있다. MBC가 미디어렙을 설립해 영업하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최선의 안을 도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 성찰할 필요가 있고, 민의의 전당에서 중의를 모아 법안을 성사시킬 필요가 있다.



방송은 개인 아닌 국민 이익 추구해야

광고는 마케팅 수단의 하나로서 최대 기능은 상업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지만, 방송의 특성은 이에 더해 공익적 기능까지를 요구한다. 따라서 방송광고는 상업성과 공익성이라는 두 측면이 조화롭게 수행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자본은 시장과 경제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이익 극대화 속성을 갖는다. 미디어의 공공성이 중요시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방송의 공공성은 여전히 방송이 지녀야 할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방송이 정치적 차원, 법적 차원, 경제적 차원에서 전체 사회 체계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방송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공익(Public Interest)은 이기주의를 제외한 정부의 목적에 관한 일련의 가치 혹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바람직한 수단을 의미한다. 공익성은 공공성이라는 절대성을 지닌 개념이자 공공성을 포함하는 상위 개념이다. 방송의 공공성으로 인해 방송이 특정인의 사적 이익이 아니라 방송의 주인이 되는 수용자, 즉 국민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방송 활동의 기준을 제시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익서비스는 산업화·상업화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소해야 할 당위적 과제이기도 하다. 광고를 경제적 차원만이 아닌, 사회적·문화적 차원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미디어렙과 관련해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도 물질·경쟁·시장 만능주의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와 인권·평등·사회적 약자 보호 등 민주주의를 아우르는 길이요, 경쟁 중시의 자본주의와 평등 중시의 민주주의가 나란히 가는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4.0’, ‘신자유주의에서 따뜻한 자본주의로’, ‘적자생존의 잔혹한 시장 만능주의에서 사회통합적 시장으로의 전환’ 등이 주창되고 ‘공생발전’이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는 지금이야말로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면서, 거기에서 어떤 공통점을 모색해 나갈 때(求同存異) 우리는 더 한층 바람직한 미디어렙 제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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