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상파 재송신 제도 개선과 대가 산정 방안

노기영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2009년 지상파 3사가 지상파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재송신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소송을 내면서 시작된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TV 방송사 간의 법적 분쟁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현행 방송법은 KBS1과 EBS를 의무 재송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다른 지상파 방송은 별도의 규정이 없기 때문에 사업자 간 자율적 합의를 통해 재송신을 해 왔다. 그러나 방송 시장의 경쟁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방송사업자 간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법적 분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고법 “지상파 방송 재송신 금지” 판결

최근 고법의 판결에서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케이블TV 사업자들의 지상파 방송에 대한 재송신 행위를 금지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2심 판결 직후 지상파 3사는 CJ헬로비전을 대상으로 실시간 재송신을 계속할 경우 하루 1억 원의 배상을 청구하는 간접 강제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는 판결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와 MSO의 재송신 분쟁을 타결 짓기 위해 협의체를 제안하고 운영하려 했으나 대법원 상고로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분쟁 조정과 제도 개선을 위해 논의가 특별히 진전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 MSO의 분쟁이 격화돼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는 지상파 재송신 거래에서 콘텐츠를 제공하는 지상파 방송사와 플랫폼을 제공하는 케이블 MSO가 서로 시장에서 상당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협상력의 수준이 어느 정도 대등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어 시장에서 힘의 우위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시장에서 강자가 방송사와 같은 플랫폼을 가진 사업자로부터 프리미엄 콘텐츠를 제작하고 보유하는 콘텐츠 사업자로 QK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강자가 변하고 있는 것은 방송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프리미엄 콘텐츠의 희소성 커져

프로그램을 제작해도 송출할 수 있는 방송국 수가 몇 개 안 되었던 시장에서는 방송 플랫폼을 가지고있는 사업자가 강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방송 플랫폼이 경쟁하는 시장에서는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는 사업자, 특히 인기 있는 프리미엄 콘텐츠를 통제하고 있는 사업자가 우위에 있게 된다.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플랫폼이 서로 경쟁하면서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더욱 경쟁적으로 되었다. 이러한 프리미엄 콘텐츠는 단기간에 중복해 생산하기 어렵고 규모의 경제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디지털화와 같은 기술적 변화도 방송 콘텐츠의 지배력을 확고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화로 녹화나 편집 처리 비용이 매우 저렴해져 누구나 영상 제작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방송 콘텐츠 제작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최상의 프리미엄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고비용의 새로운 특수효과를 더 많이 사용하게 돼 콘텐츠 제작비는 엄청나게 상승했다. 누구나 영상 콘텐츠를 제작, 편집하고 인터넷을 통해 전송할 수있게 되었지만 시청자들이 즐겨 보는 프리미엄 콘텐츠는 아무나 제작할 수 없는 엄청난 비즈니스가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올림픽, 월드컵 같은 주요 스포츠의 중계권 비용도 상승하면서 스포츠 중계와 같은 콘텐츠의 제작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콘텐츠를 전송하는 능력보다는 프리미엄 콘텐츠 사용권이 희소성을 더 갖게 돼 시장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힘이 된다.

플랫폼이 다양화되고 디지털화돼 과거보다 더욱 풍부한 콘텐츠가 생산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방송 콘텐츠가 경쟁적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희소가치를 고려할 때 시장에서 얻게 되는 수익은 개별 콘텐츠의 입장에서 줄어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방송 콘텐츠 시장을 좀 자세히 살펴보면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되고는 있지만 스포츠나 드라마 같은 프리미엄 콘텐츠와 인기 장르에 대해 시청자들은 더욱 편향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프리미엄 콘텐츠를 통한 수익은 오히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프리미엄 콘텐츠는 사업자 측면에서 플랫폼이 다양화되고 수요가 커지면서 가치가 커졌고, 시청자 측면에서는 다양한 기술과 효과를 구현하고 있는 프리미엄 콘텐츠에 대한 편향성이 더욱 커져 시장에서 엄청난 존재가 됐다. 이들 프리미엄 콘텐츠는 경쟁적인 대체재가 등장하고 시장이 보다 다양화될 때까지 정책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제 시장에서는 방송 플랫폼의 독과점과 같은 시장 구조의 이슈보다는 프리미엄 콘텐츠에 대한 수요의 문제가 중요한 정책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8월 20일 한국케이블TV방송협의회가 서울 목동 방송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갖고 위성방송을 통한 지상파 방송 재송신 금지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쟁의 불완전성 보완해야

경쟁이 활성화되고 있는 방송 시장에서 지상파 재송신 정책은 경쟁 정책의 관점에서 고려돼야 한다. 지상파 재송신 정책도 방송 시장 환경에 따라 공정하고 적절하게 경쟁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제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재송신 정책은 의무 재송신이다. 의무 재송신이란 시청자들이 보편적으로 시청해야 할 중요하고도 공익적인 콘텐츠를 반드시 제공하도록 유료방송 플랫폼에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방송 콘텐츠차원에서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플랫폼을 규제하는것이다. 플랫폼을 규제하는 것은 소수의 플랫폼 사업자가 자기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통해 콘텐츠를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경쟁을 촉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방송 시장은 지상파 방송에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그리고 스마트TV 등이 등장하면서 방송 플랫폼이 더욱 다양화되고 경쟁이 심화돼 프리미엄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사업자가 시장에서 더 큰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단지 플랫폼 사업자를 규제한다고해서 시장에서의 실제적인 지배력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케이블TV나 위성방송, 지상파 방송사 간의 재송신 분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상파 콘텐츠와 같은 프리미엄 콘텐츠는 유료방송 플랫폼이 시장에서 생존하고 경쟁력을 갖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플랫폼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주요 프리미엄 콘텐츠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방송 시장의 경쟁상황은 플랫폼의 통제에서도 어느 정도 시장 지배력 문제가 발생하고 프리미엄 콘텐츠의 통제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발생하는 과도기적 모습을 띠고 있다. 유료방송 시장에서 MSO에 버금가는 경쟁 플랫폼이 성장해 유료방송 시장이 실질적이고 유효한 경쟁 상태가 된다면 의무 재송신과 같이 플랫폼에 프리미엄 콘텐츠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규제는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프리미엄 콘텐츠를 플랫폼 사업자 입장에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콘텐츠에서도 경쟁이 활성화돼 지상파 콘텐츠에 버금가는 PP 채널이 등장하고 경쟁체제를 형성하게 된다면 더 이상 프리미엄 콘텐츠에 규제를 부과할 필요도 없게 된다. 지상파 재송신 정책과 규제는 플랫폼과 콘텐츠 시장에서 발생하는 경쟁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고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상파를 재송신하고 있는 케이블TV 조정실 모습.


재송신 분쟁이 시청권 침해해선 안 돼

지상파 재송신 협상이란 유료방송 가입자들에게 지상파 프리미엄 콘텐츠를 재송신하여 제공함으로써 발생한 전체 이윤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상파 방송 재송신에 대한 적정한 대가 산정 기준을 마련해 사업자 간의 분쟁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지상파 재송신 계약에서는 재송신 대가 관련 산정 기준이 없고, 대가에 대한 당사자들 간의 입장 차가 커서 합의를 도출해 내기 매우 힘든 상황이다.

재송신 협상의 본질적 성격 때문에 지상파 재송신 정책으로 의무 재송신을 확대하든, 다른 제도를 도입하든 어떠한 방식으로 재송신 정책을 만들더라도 궁극적으로 대가 산정을 둘러싼 분쟁은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경우 분쟁이 발생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분쟁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시청권을 볼모로 위협하거나 프리미엄 콘텐츠에 대한 시청권을 침해하는 것과 같은 과도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들어서는 안된다. 시청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콘텐츠 경험은 애청하던 프로그램이 중단돼 보지 못하는 경우이다. 개별적인 분쟁에서 수익 극대화를 위해 혹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기 위해 시청권을 위협하거나 침해하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방송사업자 간의 합리적인 재송신 대가 산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방송사업자의 규모, 방송 콘텐츠의 이용 가치, 재송신 비용 및 수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산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모범 기준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지상파 재송신의 대가 산정을 위한 적정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과 방향이 고려돼야 한다.

제일 먼저 공공재로서의 방송 콘텐츠 성격을 고려해 적정가격을 설정해야 한다. 공공재의 이용 대가는 편익 규모보다는 소요 비용에 입각해 책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지상파 콘텐츠는 유료방송 서비스를 위한 필수적인 콘텐츠로서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현재 시장에서는 꼭 필요한 요소이다. 프리미엄 콘텐츠의 공급 형태는 유료방송 시장의 경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프리미엄 콘텐츠를 차별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시장에서 과도한 이익을 취하거나 특정 사업자의 경쟁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지상파 콘텐츠 재송신의 과도한 대가 정산은 콘텐츠 공급 시장과 소비자 측면에서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플랫폼 사업자의 콘텐츠 구매재원이 특정 콘텐츠에 편중돼 사용되면 다른 소수채널에 대한 수급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시청자 측면에서도 콘텐츠를 다양하게 소비할 수 있는 기회가 감소되는 것이다.

특히 재송신 대가의 협상 과정은 공정하고 차별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화돼야 한다. 당사자 간에는 성실히 협상에 임할 의무를 부과해 위반할 경우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


집단적 협상 필요

지상파 재송신의 대가 산정은 개별 사업자에게 맡길 것이 아니다. 규제기관 등 중립적인 제3자 중재하에 집단적으로 협상하여 일정 기간 동안은 법적·정책적으로 준용하는 등 안정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처럼 특정 사업자들 간의 분쟁 형태가 아니라 매체 간, 산업 간의 분쟁 양상을 보이고 있는 국내의 재송신 분쟁은 협상 과정에서 제3자가 중재하는 정책허락이용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정책허락이용제는 저작권에 대한 법정 허락제와 달리 재송신 대가 산정을 일괄적으로 협상한 후 규제 기관의 고시를 통해 일정 기간 사용하는 방식이다.

지상파 재송신 분쟁이 지속되고 합리적 협상과 계약이 성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계약이나 분쟁 조정에 대한 합리적 절차와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송신 이용 대가를 위한 공정한 협상 절차와 기준을 마련해 지상파 재송신 분쟁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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