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은 어떻게 음원 시장을 좌우하게 되었나

정덕현 문화평론가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 MTV가 열리면서 나온 이 상징적인 말은 영상이 가진 힘이 노래가 가진 힘을 압도했음을 말해 주었다. 음악이 기본적으로 우리의 청력에 소구하는 장르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말은 가히 혁명적이다.

198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마이클 잭슨은 이 음악에 대한 감각적인 변화를 징후적으로 드러낸 인물이다. 마치 인형처럼 꺾어지고 미끄러지는 그의 춤 앞에서 노래는 잠시 뒤편으로 물러서 있었다. 물론 오래전부터 비주얼적인 춤은 늘 노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지만, 이 당시 중요한 변화는 바로 영상이었다. 이 음악에서 비주얼을 증폭시키는 장치(?)는 거꾸로 비주얼에 음악을 종속시키는 단계로까지 나가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80년대의 충격으로 다가온 마이클 잭슨의 비주얼은 90년대 기획사들에 의해 양산된 아이돌들로 무한 복제되었다. 방송은 그 비주얼적인 특성에 걸맞게 이들을 집중적으로 무대에 올렸다. 각종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아이돌들의 각축장이 되었고, 이걸로 음반 시장의 성패 역시 결정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변수가 생겨났다. 음원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음반 시장이 음원 시장으로 재편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방송의 가요 순위 무대에 오르고 그 효과를 통해 음반 판매로 수익을 극대화했던 기획사들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획사들은 음악에 머물던 관심을 타 콘텐츠로 확장시켰고, 시장 역시 국내가 아닌 글로벌을 겨냥하게 되었다. 즉 음원 시장의 핵심은 복제에 있기 때문에 복제가 가진 단점(가격이 싸다거나 불법 복제된다거나)에 머물 것이 아니라 장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장점은 좀 더 편해진 유통과 그로 인해 더 넓어질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었다. 가격이 싸진다면 더 많은 시장으로 나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셈이다.

이즈음 몇몇 대형 기획사들과 방송사들의 밀월 관계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다. 가요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오고 드라마에 출연하는 식으로 기획사에서 양산된 가수들은 방송을 통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아 나선다.


음악이 일상화되면서 스토리가 강조

한편 음원 시장은 디지털적인 성향과 맞물리면서 음악 자체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인다. 이제 음악은 CD나 레코드를 사서 플레이어에 걸고 듣는 하나의 ‘의식’이 불필요해졌다. 언제든 디지털로 다운로드받아 길거리에서든 자동차 안에서든 상관없이 틀어 놓고 들을 수 있는 어떤 것이 되었다. 음악에 대한 신비화는 사라졌고, 당연히 가수들 역시 신화에서 현실로 내려왔다. 음악은 더 이상 그렇게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에 놓인 특정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한도전’이 강변북로 가요제에서부터 시작해 올림픽대로 가요제, 그리고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로 이어지면서 보여 준 것은 바로 그것이다. 음악은 그렇게 일상적인 것이라는 것.

이 일상성을 띠게 된 음악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스토리다. 그 음악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어떤 스토리를 담았으며 누구에 의해 어떻게 불려졌는가 하는 점은 음악 그 자체만큼 중요하게 여겨졌다. 방송은 정확히 이 지점을 파고들었고 그 결과는 바로 음원 시장에서 확인되었다.

2007년 ‘무한도전’ 강변북로 가요제에서 하하가 부른 ‘키 작은 꼬마 이야기’는 그해 멜론 연간 음원 차트에서 68위를 기록했고, 2009년 올림픽대로 가요제에서는 유재석과 타이거JK, 윤미래가 부른 ‘렛츠 댄스’, 박명수와 제시카가 부른 ‘냉면’, 정준하와 윤종신, 애프터스쿨이 부른 ‘영계백숙’이 음원 차트를 휩쓸었다. 이것은 올해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로 그대로 이어져 유재석과 이적이 부른 ‘압구정 날라리’, 정형돈과 정재형이 부른 ‘순정마초’ 등 거의 모든 음원이 차트를 석권하는 기록을 남겼다.

디지털화되는 음원, 그로 인한 음악의 일상화와 맞물려 음악이 노래와 춤 이외에 스토리를 발견하면서 방송은 보다 적극적으로 음악을 소재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음악은 그 감성적인 특성으로 방송의 자극제가 된다. 디지털화가 가져온 피곤함은 좀 더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서의 음악에 대한 갈증을 높여 놓는다. ‘놀러와’의 세시봉 특집은 음악과 과거가 만나 만들어 낸 추억의 감성 스토리로 대중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달라진 감각을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 주는 방송 프로그램이 되었다. 거기에는 음악이 주는 감성이 있고, 추억의 현재화가 만들어 내는 복고적이고 세대 공감적인 분위기가 있으며, 무보통 일반인들에게도 열린 무대와 그들의 스토리가 있다.

물론 이런 변화는 방송이 주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음원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고, 그것이 방송을 만나면서 생겨난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이제 방송이 음원에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하게 되면서 방송은 이를 새로운 수익 사업으로 기획하게 된다. ‘나는 가수다’는 그 첫 번째 실험대이면서 동시에 성공작이기도 하다. 지난 3월 처음 방영된 ‘나는 가수다’는 음원 차트에 직격탄을 날렸다. 경연이 방송된 후 음원이 풀리는 시점에 맞춰져 음원 차트는 일제히 경연 곡 모두를 10위권 내에 랭크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신보를 들고 온 아이돌 가수들마저 순위에서 밀리는 상황이 도래했다. 그러자음반 제작자들은 ‘나는 가수다’ 음원 발매일을 피해곡을 발표하는 것이 상례가 되기도 했다.


‘나는 가수다’, 음원 다운로드 15% 차지

실제로 가온차트 상반기 결산에 따르면 ‘나는 가수다’에서 김범수가 부른 ‘제발’은 다운로드 수만 230만여 건에, 스트리밍 수는 무려 2,300만여 건을 기록했다. 이것은 동방신기와 2NE1의 수치를 훨씬 앞지르는 수치다. 3~6월 ‘나는 가수다’의 전체 음원 다운로드는 3,590만 건으로 전체 다운로드의 15%를 차지했을 정도다. 한 증권회사의 분석에 따르면 ‘나는 가수다’는 전체 디지털 음원 시장 규모를 전년 대비 10% 정도 증가시켰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즉 ‘나는 가수다’의 음원 공개는 방송사의 노골적인 음원 장사로서 시장 자체를 왜곡시킨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것은 시대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변화이기도 하다. 기존 시장에서의 기득권으로서는 방송이 음원을 좌우하게 된 상황이 당혹스러울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것은 새로운 흐름이다. 따라서 이 흐름을 통해 과거 비디오가 죽였던 라디오 스타들을 재발견하게 된 것은 시대적인 아이러니다. 방송이 외면했던 그들이 다시 방송을 통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무한도전’이나 ‘세시봉’이 그 가능성을 발견한 시장에 ‘나는 가수다’가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이제 방송의 음원 시장 진출은 말 그대로 ‘러시’가 되고있다.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같은 전형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그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나는 가수다’와 ‘불후의 명곡2’가 음원 시장을 본격적으로 두드리고 있다. 한편 ‘오페라스타’나 ‘댄싱 위드 더 스타’ 같은 음악을 베이스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음원 시장을 겨냥하고, ‘톱밴드’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지금껏 방송에서 보지 못했던 밴드 뮤지션들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 놓음으로써 역시 이들의 음원 시장 진출에 고무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몇몇 거대 기획사 중심으로 돌아가던 가요 방송은 획일적인 틀을 넘어 다양성을 향해 좀 더 움직이고 있다. 아이돌 중심의 댄스 음악을 주 장르로 삼았던 기획사들과 달리 방송은 장르와 상관없이 스토리를 포착해 내고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음원 시장을 둘러보면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장르적 분포도를 발견할 수 있다. 과거라면 차트에 발을 디디는 것조차 어려웠던 인디밴드들의 음원이 심심찮게 발견되는 건 역시 방송의 영향이다. ‘무한도전’을 통해 주목된 ‘10cm’는 물론이고, ‘놀러와’ 등을 통해 얼굴을 내밀었던 ‘장기하와 얼굴들’ 역시 음원 차트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물론 여전히 아이돌 가수들의 음원이 상당 부분 차트를 차지하지만, 음악적 장르로 보면 록에서부터 R&B, 힙합, 발라드,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이것은 ‘나는 가수다’가 매번 경연 때마다 보여 준 다채로운 장르 경험을 통해 이제는 대중들의 음악적 기호마저 폭넓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비주얼이 강조되던 음악에 치중되었던 가요 시장이 듣는 음악 쪽으로 넘어와 균형을 맞추기 시작한 것도 방송의 영향이다. ‘나는 가수다’가 가져온 가장 큰 효과는 대중들이 음악을 좀 더 집중해서 듣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음악은 결국 그걸 듣는 대중들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좀체 음악을 들을 준비를 허락하지 않는다.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 음원들과 일상화돼 버린 음악은 이제 집중해서 듣는 어떤 존재가 아니라 그저 뒤편에 깔리는 배경음악이 돼 버렸다.

특히 TV라는 매체를 통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라이브 무대에서 들으면 깊은 감동이 몰려오다가도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듣게 되면 그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물론 라이브가 주는 직접적인 음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TV라는 공짜 미디어가 갖는 산만한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돈 내고 음악을 들으러 극장에 가는 사람은 이미 그 귀가 준비돼 있지만, 그저 틀어 놓으면 흘러나오는 TV 음악 프로그램에 귀는 좀체 준비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가수다’는 경연이라는 장치를 통해 그런 귀를 ‘들을 준비를 하는 귀’로 바꾸어 놓았다. 가사가 들리기 시작했고, 노래를 하는 가수들의 진심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아이러니한 일이다. 방송이 만들어 놓은 음악에 대한 산만함을 거꾸로 이제는 방송이 집중하게 만든 것이다.


최대의 수혜자는 가수보다 방송

음악은 기본적으로 감각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체와 생활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즉 음악 시장은 근본적으로 이 감각과 관련 있는 매체 변화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레코드나 CD가 주 매체였던 시절 방송은 음악의 홍보 수단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디지털화된 음원 시장이 열리고 그로 인해 음악이 일상화된 현재, 방송은 이제 새로운 음원을 창출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은 TV라는 매체가 본래 시각 만이 아니라 청각 또한 아우르는 매체였다는 것을 다시 발견하게 만든다. 그러니 이 기본 감각을 강화 한 매체가 스토리를 끼워 넣은 음악을 시장에 내보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따라서 스토리와 감각을 모두 갖춘 TV의 음원 시장 장악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떤 가수들이 수혜자가 될지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방송이 늘 최대 수혜자가 될 거라는 점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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