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일보 ‘우리 시대의 고졸’

강윤주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그 많던 고졸은 다 어디 갔을까.’

‘우리 시대의 고졸’ 기획은 이 질문에서부터 출발했다. 과거에는 고졸이어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명문 상고 졸업생들은 은행은 물론 웬만한 대기업을 골라 가기도 했고 중소기업에 취업한 고졸도 먹고살 만했다.


고졸자 65명의 현재 삶 추적

하지만 요즘 고졸들은 예전과 처지가 많이 달라졌다.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대한민국에서 고졸은 철저히 소외돼 왔다. 고졸들이 할 일을 대졸들이 꿰차게 되면서 설 자리는 더욱 없어졌다. 고졸자들은 넘쳐 나는 대졸자에 밀려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했고 한 번 빈곤층으로 떨어지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적 악순환이 반복됐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대졸자보다 고졸자의 처지는 더욱 절박했고 과거에 견줘 그 차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언론은 고졸들의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청년 실업 문제는 오로지 대졸자에 한정됐다. 정부는 특성화, 전문계고 육성 정책을 내세우며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살 만하다고 강조했다. 기술 하나만 있으면 경쟁력을 갖춘다고 홍보했다. 실제로도 그럴까 궁금했다. 이에 고졸의 삶,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전문가 및 외국 사례를 참고해 대책을 함께 고민해 보는 기획을 준비하게 됐다.

‘우리 시대의 고졸’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고졸들의 삶을 들어 볼 필요가 있었다. 자칫 누구나 예상 가능한 얘기를 재탕 삼탕식으로 풀어 낼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수집해야 했다.

1회부터 3회까지 고졸의 분류를 세대별(2010학년도 졸업자/IMF 외환위기 이전 및 2010년 이전 졸업자) 및 남녀 성별, 고용형태별(비정규직/정규직)로 나눴던 이유도 각각의 입장에서 처한 고졸자 저마다의 고충을 들어 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당장 주변에서 고졸을 찾기란 힘들었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몇몇의 취재원을 두고 고졸들의 삶 전체를 일반화시키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새로운 형식이 필요했다. 이에 1회(7월 11일 자)에서는 특성화고 2곳을 섭외해 지난 2월(2010학년도) 졸업한 한 학급씩을 표본으로 졸업생들의 현재 삶을 추적했다.

서울과 경기 지역의 고교 2곳이 취재에 응했고 학교 측의 동의하에 졸업생 총 65명(각각 24명, 41명)의 연락처를 전달받아 한 명도 빠짐없이 취재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불가피하게 회사, 실명은 이니셜로 처리했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얘기는 고스란히 담았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대학 진학 희망

두 학교 졸업생들이 전해 주는 현재 모습은 판이했다. 특성화고 내에서도 양극화가 존재했던 것. 명문 상업계고로 알려진 서울의 A고 학생들은 대기업에 취업한 사람도 여럿이었고, 고졸이라서 크게 불이익을 받는 것은 없다고 했다. 어떤 이는 대졸자보다 공부를 덜 했으니 차별은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승진 임금 등 고졸이라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인정했다. 더욱이 고졸로 남지 않고 대학에 가겠다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경기의 B고 학생들은 대개 취업을 하지 못했거나, 일자리를 구했어도 만족하지 못해 그만둘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로지 취업률 높이기에 혈안이 된 학교가 학생들의 전공과 상관없이 ‘묻지 마 취업’을 강요한 탓이다. 3년 동안 컴퓨터 디자인을 공부한 학생이 중소기업 생산직 라인에 취업했다가 못 견디고 그만둔 것처럼 중도 포기를 선언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했다. B고 졸업생들은 고졸만으론 원하는 곳에 적성을 살려 취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말한 특성화고 학생들이 모두 장밋빛 현실에 살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갓 졸업한 학생뿐 아니라 1997년 이전 외환위기 졸업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궤적도 추적했다. 갓 졸업한 학생들과 달리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졸업 앨범에 나와 있는 집 연락처를 바탕으로 수소문했다. 살아 있는 번호가 몇 개 없어서 연락 닿은 사람이 200여 명 중 10명이 채 안 됐다. 그중에서도 당시에 취업을 했던 이는 8명에 불과했다. 그래도 고졸로 살아 온 애로 사항을 담기에는 충분했다. ‘3년 일한 나보다 갓 들어온 신입의 연봉이 더 높더라’, ‘복사 심부름, 영수증 처리 등 단순 업무만 시키고 다른 곳에서 일할 기회는 원천봉쇄됐다’등등 고졸들은 취업을 했어도 여전히 주역으로 일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렇지만 선배들은 고졸 후배들에게 당당하게 살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한 취재원은 업무는 똑같은데 대졸자와 구분을 두기 위해 고졸자들만 유니폼을 입혔던 일을 떠올리며 그때 왜 바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는지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고 했다. 능력이 아닌 학력으로 차별받는 걸 묵인하는 순간 이미 사회의 편견에 동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배들 중 몇몇은 이미 고졸이 아니었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전문대 졸업장이라도 따두었다.

‘우리 시대의 고졸’ 기획 시리즈가 실린 한국일보 7월 11일자 1면.


취재 확대 요청 빗발쳐

결국 갓 졸업한 후배들이나 10년 넘게 고졸로 살아 온 선배들 모두 대한민국에서 고졸로 살아가기는 힘겹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좀 더 심도 있는 취재를 위해 민주노총, 전국여성노조 등에 섭외를 부탁해 고졸 출신 비정규직들의 삶도 밀도 있게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생생한 현실을 돌아보면서 원인 규명에도 힘썼다. 전문 기능 인력 양성을 목표로 세워진 전문계 특성화고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학 진학률 높이기에 혈안이 돼 있는 모순적인 현실을 꼬집었고 임금, 업무능력 등 직장 내 제도적인 차별 문제도 여전함을 지적했다. 고졸 출신들이 겪은 서러움을 절절히 기사에 녹여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벌주의를 생생하게 보여 줬다.

해결책으로는 전문가들의 목소리와 외국 사례를 함께 들여다봤다. 고졸자의 성공 사례를 챙기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모두 나서 학력 인플레를 완화하는 구조를 모색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고졸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를 위한 범국민적 운동 전개 등 인식 개선의 노력부터 고졸 채용 할당제와 같은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했다. 외국사례로는 국가 주도의 마이스터 양성이 자리 잡은 독일뿐 아니라 일본, 미국, 호주 등의 다양한 사례를 제시했다.

한국일보의 ‘우리 시대의 고졸’ 기획 이후 타 매체들도 고졸 관련 기획 및 보도를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냈다. 동아일보의 ‘전문계고 어깨를 펴주자’(7월 25일), 서울신문의 ‘나는 고졸이다’(7월 16일) 기획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고졸 출신의 성공 스토리만 내보내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독자들도 있었다. 오히려 고졸 출신이 겪는 애로 사항을 짚어 준 한국일보 기사에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우리의 얘기”라며 반응을 보내 왔다.

취재를 확대해야 한다는 요청도 빗발쳤다. 1회 기사가 나가자마자 광주의 전문계고에서 취업을 담당하는 한 교사는 메일을 보내 와 교과부, 시교육청, 중소기업청에서 취업 기능 강화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많은 돈을 쏟아붓는 것에 비해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이 부분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보해 오기도 했다.




이 대통령 “정부부터 학력 차별 철폐를”

한국일보의 ‘우리 시대의 고졸’ 기획 1회가 나간 7월 11일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오전 최고위원 회의에서 “학력차별금지법 처리를 조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7월 20일 기업은행을 방문해 고졸 행원들을 격려하고, 26일 “정부가 먼저 학력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공직 사회와 공기업에서도 고졸자 취업이 대폭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주요 공기업과 은행 등에서 고졸 채용 확대를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으면서 고졸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취재를 하면서 고졸 문제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됐다. 고졸과 대졸자를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학벌주의는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학 등록금, 청년 실업난 등도 따지고 보면 고졸로서 살아가기 힘든 대한민국 구성원 모두가 대학의 문을 두드리는 현실에서 따라오는 문제였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졸 출신들이 대우받는 사회가 필요함을 환기시켜 줬다는 점에서 이번 기획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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