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제작 시스템 문제점과 개선 방안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드라마 제작환경이 국정감사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드라마가 문제다. ‘쪽대본’과 ‘생방송 드라마’라는 단어가 이젠 익숙하다. 그만큼 오래된 문제이며 구조적인 문제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창조산업이 갖는 속성에 근본적으로 내재돼 있다.

드라마는 복합제품이다. 복합제품은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각 단계마다 고유한 전문성을 가진 생산요소들이 참여해야만 완성된다. 그런데 드라마 생산의 각 단계에 참여하는 생산요소들은 일반 제조업에서와는 다른 예술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작업에 대한 취향 탓에 배고픈 예술가 신드롬에서 나타나듯이 일상적 작업과는 다른, 비상한 노력과 열정을 쏟는 특징을 보인다.



드라마는 여러 전문 생산요소로 완성되는 복합제품

작가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창의적인 직업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한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최선의 노력이 담겨 있는 결과물을 연출자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 연출자도 마찬가지다. 촬영의 여유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주어진 한계 시간을 모두 소모하면서 자신의 전문성인 연출력이 돋보이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 한다.

이처럼 촬영, 조명, 편집, 음악 등 여러 단계마다 투입되는 생산요소들은 자신의 예술가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제품에 담으려 하기 때문에 제작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라마 제작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들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드라마 편성 축소, 드라마 방영 시간 축소, 사전 대본, 반사전제작 등이 그것이다.

먼저 드라마의 수와 방영 시간을 줄이자는 대안은 실효성도 없고 현실성도 없다. 광고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지상파 방송들은 일부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통해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획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라마 편성을 줄인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드라마 방영 시간을 60분으로 줄이자는 대안도 현재의 광고제도가 변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대안의 주장은 반드시 총량제 광고제도 실시를 동반한다. 총량제가 장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광고주는 좋은 프로그램에만 광고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광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선호한다. 따라서 광고 총량제는 역설적으로 드라마 편성의 증가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시간 절약보다 완성도 높이는 데 고민

이 대안의 근본적인 문제는 제작 시장의 고용 문제에 있다. 드라마 수와 시간이 줄어들면 드라마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생산요소들이 실직이나 소득 감소의 불이익을 받게 되고, A급 생산요소로의 쏠림현상은 극대화될 것이다. 즉 A리스트 작가와 연출자, 연기자, 그리고 외주제작사들에게 일이 더욱 쏠리게 됨으로써 시장의 균형 발전은 더욱 어려워지게되고 생산요소들의 수익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으로 인해 그동안 한국 드라마 산업을 헌신적으로 이끌어온 생산요소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또 다른 대안으로 ‘사전 대본’과 ‘반사전제작’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대안들은 ‘사전제작’으로 가는 중간단계로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는 생산요소들이 지니고 있는 예술가적인 자율성 때문에 그러하다.

첫 방송 이후 시청률에 따라 대본을 수정하기 용이한 상황이 전개되면서 작가나 연출자는 당연히 대본 수정에 대한 유혹에 빠지게 된다. 사전 대본이 이루어지면 반사전제작은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이다. 반사전제작 전략을 실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예를 들 수 있다. 50% 정도 제작이 완료된 상태에서 방송이 시작된 드라마들은 제작 완료까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게 된다. 드라마 산업은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시청률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여유 있는 시간은 모두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
는 데 철저하게 소비되게 된다. 결국 반사전제작 드라마도 촬영 마지막 지점에는 시간 부족으로 고생하게 마련이다.


사전제작 방식은 두 종류로 구분

결국 사전 대본은 반사전제작에, 반사전제작은 사전제작에 이르기 위한 전제조건일 뿐이지 사전 대본이나 반사전제작 그 자체가 제작환경 개선의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물론 사전대본이나 반사전제작만 이루어져도 현재와 같은 쪽대본이나 생방송 드라마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아지고, 시간에 몰려 제작환경이 악화된다고 해도 드라마 종영에 다다라서 짧은 기간 동안 겪고 말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생산요소들 모두의 합의에 의해 형성돼 있는 드라마 제작 구조에 우리가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즉 드라마 생산 조직과 생산요소들은 구조적 관성에 따라 경로의존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쉽게 행동양식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사전제작’뿐이다. 필자는 사전제작을 두 종류로 구분하고자 한다.

먼저 방송사의 편성 의사와 무관하게 제작사의 의지대로 제작을 완료한 이후에 편성을 결정하는 방식은 ‘완전 사전제작’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현재와 같은 편성 시스템에서 특정 방송사와 편성에 합의한 이후 방송 전에 제작을 완료하는 방식인데, 이를 ‘선편성 후사전제작’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사실 우리나라 시장 규모에서 ‘완전 사전제작’은 불확실성이 너무 높아지고 매몰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제작사의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하지만 ‘선편성 후사전제작’은 현재와 같은 편성 시스템에서 편성을 결정한 후 사전제작을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완전 사전제작에 비해 불확실성이 낮은 동시에 사전제작이 갖는 장점을 모두 취할 수 있다는 유리함이 있다.


선편성 후사전제작’이 좋은 점

선편성 후사전제작이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현장 전문가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이유는 지연 편성의 문제, 스타 연기자 캐스팅의 어려움, 제작비의 증가, 시청자 트렌드 반영의 불리함 등이다.

종편 상황 이전에는 방송사들이 조기 편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편성을 결정하는 전문가들도 예술가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소모할 수 있는 한계 시간을 모두 소비하면서 기획안을 결정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즉 마음에 드는 기획안이 있더라도 보통 방송 3개월 이전 시점까지는 편성을 결정하지 않는다. ‘혹시’ 남은 시간에 더 좋은 기획안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합리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편성하는 플랫폼이 4개나 늘어난 상황에서 드라마를 편성하는 데 최선의 전략은 경쟁자보다 빠르게 좋은 기획안을 결정하는 것이된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 지상파 방송사들은 보통 방송 시점에 비해 6개월 이전에는 편성을 확정하고 있다.

이미 ‘선편성 후사전제작’의 가장 근원적인 조건이 충족될 수 있는 환경이 자발적으로 조성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스타 연기자 캐스팅의 어려움 문제는 드라마 제작사들의 선택 문제이다. 현재까지는 스타 연기자도 편성 책임자들과 같은 맥락에서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기획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의사를 결정하지 않는다. ‘혹시’라는 기대감은 ‘선편성 후사전제작 작품’이라는 제작 관행이 자리 잡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특히 현재 제작환경의 개선을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제기하고 있는 연기자들의 태도가 바뀌는것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오히려 연기자에게는 선편성 후사전제작 작품 출연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선편성 후사전제작은 제작 기간이 다소 길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의 제작비 증가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현재 제작환경에서 비효율적으로 운용되는 A팀, B팀, C팀의 비용과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논의돼야 한다.

현재 생방송 드라마는 정규 제작팀만 가동해서는 방송 시간을 맞추기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다수의 연출자와 촬영팀이 동원돼 부분 부분을 동시에 찍어 내는 작업 방식이 시행되고 있다.

자원 활용의 비합리성과 더불어 제작비는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이에 비해 선편성 후사전제작은 편성 이후 시점부터 첫 방송 이전 시점까지를 제작 기간으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제작 기간이 제한적이며, 사전대본이 완성된 이후이기 때문에 철저한 촬영 계획을 세우기만 하면 제작비 감소 요인이 많다. 특히 경험이 축적되기만 하면 제작비는 더욱 감소될 가능성이 높다.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트렌드를 따라가야 하는데, 선편성 후사전제작은 제작 시점과 방송 시점의 시차로 인해 트렌드를 맞추기가 어렵다는 지적은 성공한 드라마 상품의 특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성공한 드라마 상품은 시청자들의 취향을 따라 가기보다는 반 발짝 정도 앞서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인간의 정서를 다루는 드라마 장르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6개월에서 8개월 정도의 기간에 시청자들의 취향이 얼마나 바뀔지에 대해 반문해 보게 된다.

소재에 따라 내용 변화가 민감할 수도 있다. 그러한 경우 과연 그 소재가 드라마 장르에 적합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반문해 보아야 한다.

드라마 상품 생산방식은 생산자들이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최적의 시스템을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이고 그만큼 다양하다. 따라서 제작 시스템은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된다.

선편성 후사전제작 시스템을 선택하면 그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극소화하는 방법을 찾아내 적응하게 돼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편성 후사전제작 시스템으로 제작된 드라마의 성공 경험이다. 장점이 많은 시스템이라면 적극적으로 채택해 적응할 가치가 있으며, 이를 통해 성공하는 경험만 만들어진다면 선편성 후사전제작 시스템의 확산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판단된다. 지금의 제작 역량으로 이미 충분히 실천 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일부 미니시리즈에 의무 적용을

선편성 후사전제작의 확산을 위해서는 한시적인 규제 마련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구조적 관성이 있어 경로의존적으로 이전의 제작 관행을 답습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생산요소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그러하다. 선편성 후사전 제작의 대상인 미니 시리즈의 경우 방송사마다 연간 3~4개 작품 정도는 선편성 후사전제작 시스템으로 완성된 작품을 편성하도록 강제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그렇게 되면 드라마 생산자들은 선편성 후사전 제작에 적합한 소재를 기획하고, 협찬과 간접광고를 극대화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방식들을 학습하고, 한계 시간내에 예술가적인 자율성을 최대한 활용해 완성도 높은 드라마 상품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한 번의 성공 경험은 미미한 출발로 시작 하지만 빠르게 전체 드라마 제작환경을 개선하는 큰 흐름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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