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탐사보도 ‘불법 다단계 합숙소 현장 가다’


고성표 중앙일보 탐사보도팀 기자

탐사보도 팀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거마대학생 5,000명 슬픈 동거’(9월 20~23일 4회 연속 보도) 첫 기사가 나간 9월 20일 오전부터 탐사팀에는 전화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너무 충격적이라 믿기 힘들 정도다” “불법 다단계에 빠져 연락도 안 되는 아들딸 좀 찾게 도와 달라.”이날 하루에만 취재팀과 송파서에 걸려온 전화가 100통이 넘었다. 인터넷 반응은 더 뜨거웠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걸린 거마대학생 기사는 클릭 수가 폭발했다. “대학가 주변 가판대에 신문이 동났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타 사들도 분주히 움직였다. 지상파 3사 시사 프로그램들은 탐사팀에 취재 도움을 요청해 왔다. 본지 보도 후 ‘거마대학생’의 적나라한 실태가 방송을 통해 다시 한번 안방에 전달됐다.

처음 ‘거마대학생’ 아이템을 고민하게 된 것은 7월 말 한 경찰 관계자와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경찰청 간부 A씨가 “고형, 혹시 대학생 다단계 얘기 좀 들어 봤소?”라고 물어왔다. 기자는 며칠 전 TV 뉴스가 기억났다. 대학생 십수 명이 지내는 좁은 지하방(합숙소)을 경찰이 압수수색하는 장면이었다. A씨는 “수박 겉핥기 보도만 할 거냐”며 “언론이 자극적인 몇몇 장면을 내보내면서 겉으로 드러난 현상 위주로만 보도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중앙일보 탐사보도팀이 제대로 취재해서 심층 보도를 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도
이어졌다. A씨와 헤어진 후 거마대학생과 관련된 최근 보도들을 찾아봤다. A씨 말대로 그동안은 일부 대학생들이 서울 송파구 거여·마천 지역 일대에서 합숙을 하며 불법 다단계에 빠져 있다는 스트레이트성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며칠 후 기자는 팀 후배와 함께 송파경찰서 다단계특별수사팀을 찾았다. 송파서 지능수사팀 황동길 경감은 “몇몇 언론에서 취재하겠다고 찾아왔지만 그냥 단 건으로 보도하고 끝난 게 대부분”이라며 “제대로 할 거 아니면 괜히 수사하는 데 방해만 된다”고 했다. 취재팀은 이날 황경감과 “경찰이 최대한 취재 협조를 해 주면 심층 보도물로 꼭 만들어 내겠다”는 신사협정을 맺었다. ‘거마대학생’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다.



사전에 거여·마천동 현장 탐문 취재

매번 경험하는 것이지만 탐사보도는 사전 취재가 정말 중요하다. 과연 기삿거리가 되는지, 또 어느 정도의 심층 취재가 필요한지, 취재 기간은 얼마나 소요될지 등 전체적인 윤곽이 사전 취재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이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사전 취재는 보통 짧게는 2~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 걸린다. 아이템과 관련된 충분한 자료조사와 1차 현장방문을 통한 주변 조사, 취재 대상자 선정 등 사전취재가 얼마나 치밀하게 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과정이다.불법 다단계 대학생들이 모여 산다는 거여·마천
지역의 주민들을 접촉해 평소 이들의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들어 보기로 했다. 마침 송파서에는 몇몇 주민들의 민원이 접수된 상태였다. “대낮에 정장 차림의 젊은 청년들이 무리 지어 동네를 돌아다니는 게 불안하다”는 내용이었다. 민원인을 직접 만나 보기로 했다. 민원인은 마천동의 3층짜리 다세대 주택에세 들어 사는 50대 남성 B씨였다. B씨는 지난 1년동안 아래층에 살고 있는 젊은 남녀들에 대해 쉴 새 없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18평 정도 되는 공간에서 20명이 집단으로 합숙한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한편에 항상 물건과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어 불편하다. 계단에서 밤늦게까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시끄럽게 한다. 새벽 5시쯤 되면 다들 어디로 가는지 소란스러운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깰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무리 지어 돌아다니며 무슨 사고를 칠까 솔직히 걱정될 때가 많다.”

이런 불편함을 호소하는 주민들은 주변에도 더 있었다. 특히 동네 공터나 공원 등에서 담배를 피우며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고 얘기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취재팀은 실제 대학생들의 하루 일과를 따라가 보기로 하고 오전 5시 30분부터 집단 합숙소 근처에서 이들의 출근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의 증언은 어렵지 않게 사실로 확인됐다. 오전 6시가 되자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20대 초·중반 청년들이 마을버스를 꽉꽉 채웠다. 이들이 주로 가는 곳은 인근 가락동·석촌동 등 사무실 밀집지였다. 또 이들이 퇴근하는 오후 6시를 전후해 합숙소가 있는 거마 지역에서 펼쳐지는 이색적인 풍경도 목격할 수 있었다. 놀이터·공원·골목길마다 전화를 돌리는 청년들이 눈에 띈다. 다세대·다가구 주택 연립주택 중에 엄청난 양의 빨래가 걸려 있는 곳은 예외 없이 이들의 합숙소였다.부동산 중개소를 통해 알아본 사정도 비슷했다. 사전 취재를 통해 왜 거여·마천 지역에 불법 다단계 일을 하는 대학생들의 집단 합숙소가 몰려 있는지 하나둘 의문이 풀려 가기 시작했다. 거여·마천동이 다단계 천국이 된 것은 불법 다단계 업체의 사무실
이 주로 송파구 가락동·석촌동 등지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합숙소는 사무실에서 가까우면서도 방값은 송파구 다른 지역의 절반 정도인 거여·마천동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싼 방값 외에도 ‘강남 3구’라는 상징성 때문에 불법 업체들이 모여 있다고 설명하는 이도 있었다. 불법 다단계 업체가 주로 공략하는 대상은 물정 모르는 20대 대학생, 특히 지방 학생들이다. 이들을 속여 끌어들이려면 번듯한 회사로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한 불법 다단계 업체에서 중간 관리자 역할을 했던 최 모 씨를 통해 증언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최 씨는 “대상자를 모을 때 강남에 있는 회사,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상업중심지에 사무실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했다.




정신과 치료·가족 자살 등 충격 연속

사전 취재를 마치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피해자들을 본격적으로 접촉했다. 그들이 왜, 어떤 과정을 통해 불법 다단계에 빠져드는지 궁금했다. 취재팀이 만난 피해자들은 20명 정도였다.
그중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피해자 아버지가 실의에 빠져 있다가 자살한 이야기였다. 대학생 피해자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아직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취재진과의 만남을 거부했다. 대신 취재진은 피해자의 이모를 수소문해 만날 수 있었다. 이모와 3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불법 다단계가 얼마나 심각하고 중대한 범죄인
지 확인시켜 준 순간이었다. 불법 다단계 업체에서 겨우 빠져나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학생도 만날 수 있었다. 취재과정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은 우연히 찾아왔다.

취재가 시작된 지 일주일쯤 흐른 8월 중순 취재진이 송파경찰서 다단계특별수사팀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숨을 몰아쉬고 사무실로 뛰어들어 왔다. 사연을 들어보니 불법 다단계 업체의 집단 교육장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도망 나왔다는 것이다. 핸드폰과 마을 주민들의 증언은 어렵지 않게 사실로 확인됐다. 오전 6시가 되자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20대 초·중반 청년들이 마을버스를 꽉꽉 채웠다. 이들이 주로 가는 곳은 인근 가락동·석촌동 등 사무실 밀집지였다. 또 이들이 퇴근하는 오후 6시를 전후해 합숙소가 있는 거마 지역에서 펼쳐지는 이색적인 풍경도 목격할 수 있었다. 놀이터·공원·골목길마다 전화를 돌리는 청년들이 눈에 띈다. 다세대·다가구 주택 연립주택 중에 엄청난 양의 빨래가 걸려 있는 곳은 예외 없이 이들의 합숙소였다.

부동산 중개소를 통해 알아본 사정도 비슷했다. 사전 취재를 통해 왜 거여·마천 지역에 불법 다단계 일을 하는 대학생들의 집단 합숙소가 몰려 있는지 하나둘 의문이 풀려 가기 시작했다. 거여·마천동이 다단계 천국이 된 것은 불법 다단계 업체의 사무실이 주로 송파구 가락동·석촌동 등지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합숙소는 사무실에서 가까우면서도 방값은 송파구 다른 지역의 절반 정도인 거여·마천동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싼 방값 외에도 ‘강남 3구’라는 상징성 때문에 불법 업체들이 모여 있다고 설명하는이도 있었다. 불법 다단계 업체가 주로 공략하는 대
상은 물정 모르는 20대 대학생, 특히 지방 학생들이다. 이들을 속여 끌어들이려면 번듯한 회사로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한 불법 다단계업체에서 중간 관리자 역할을 했던 최 모 씨를 통해 증언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최 씨는 “대상자를 모을 때 강남에 있는 회사,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상업 중심지에 사무실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했다.


차별화를 보여 준 탐사보도 개가

이번 보도는 고발에만 그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단속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취재 과정에서 주무 부서인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들로부터 현행법이 허술해 업자들이 법망을 피해 간다는 설명을 듣게 됐다. 취재팀은 현행방문판매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법안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에서 왜 통과되지 않고 계류 중인지 속사정도 들여봤다. 지금 돌아보면 이런 취재 내용들이 타이밍이 맞지 않았으면 그냥 묻혀 지나갔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첫 보도가 나가고(9월20일) 하루 후 마침 경찰청과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국회 행안위와 정무위 소속 의원들은 저마다 ‘거마대학생’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또 법사위에서는 계류 중인 방문판매법 개정안을 최대한 빨리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경찰 수뇌부도 “전국 대도시에 불법다단계 전담 팀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번 탐사보도가 빛을 발한 것은 이전 보도와 비교해 확실한 차별성을 보여 준 데 있다. 청년실업, 대학등록금, 지방대생들이 처한 양극화 현실 등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이번 보도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 달 보름의 취재 기간은 오히려 짧을 정도였다. 열흘간의 사전 취재를 통해 완성된 치밀한 기획안은 기사의 튼튼한 뼈대가 됐다. 단체 합숙소와 교육장 등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현장을 단독으로 동행 취재한 것은 기사의 완결성을 더해줬다. 이전 보도에서는 볼 수 없던 극적인 장면이 지면에 생생하게 녹아들었다. 독자들의 눈길을 잡기위해 제목과 사진을 잘 뽑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거마대학생 5,000명 슬픈 동거’라는 1면 제목은 88만원 세대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또 단체합숙소, 교육장 등 현장을 카메라로 포착하는 일도 중요했다. 이번 보도는 치밀한 기획, 생생한 현장 취재, 사진과 그래픽 등 시각 자료 이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들어간 탐사보도라는 평가를 사내외에서 받을 수 있었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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