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 ‘700MHz 대역 주파수’ 어디로 가나

이정내 연합뉴스 미디어과학부 부장대우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 왕은 페르시아 100만대군을 이끌고 작은 도시국가 스파르타를 쳐들어온다. 이에 맞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300명의 용사들과 함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한판 승부를 벌인다. 2007년 개봉된 대서사극 ‘300’이다.

요즘 방송계와 통신업계 간에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700MHz 주파수 대역을 놓고 서로 ‘내 것’이라며 양보 없는 대결을 펼치고 있다. 두 업계의 공방을 지켜보노라면 영화 ‘300’이 연상된다. 별로 연관성이 없는 기원전 영토 전쟁과 21세기 주파수 전쟁이 오버랩되는 것은 아마도 숫자에 집착한 탓일 것이다. 방송계와 통신업계 간 주파수 전쟁을 다룬 영화에 제목을 붙인다면 일반인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700’이라고 하면 어떨까? 영화 300이 생각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700 고지를 점령하라.’ 이렇게 할 수도 있겠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요즘 방송계와 통신업계가 서로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700MHz 대역의 주파수 108MHz 폭을 말한다.


통신업계, 주파수 부족으로 아우성

내년 12월 31일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고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되면 그동안 아날로그 방송용으로 사용 되던 700MHz 대역 108MHz 폭이 주인을 잃게 된다. 본래 주파수란 국가의 자산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주인을 잃는 게 아니고 사용처를 잃게 돼 국가에 반납되는 것이다.

국가를 대신하는 정부는 여유 주파수를 확보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업자나 기관에 분배하게 된다. 분야에 따라 사용 대가를 받기도 하고 무료로 빌려 주기도 한다. 현재 방송용 주파수는 공익적 차원에서 공짜로, 통신 사업자에게는 막대한 사용 대가를 받고 할당한다.

주파수는 매우 한정된 자원이다. 용도가 늘어날수록 주파수 부족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 통신 업계에서는 주파수 부족으로 아우성이다. 스마트폰 확산으로 데이터 트래픽이 늘어나면서 이동통신용 주파수 용량이 한계에 이른 것이다.이동통신 업체들이 주파수 확보에 혈안이 되고 있는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8월 방송통신위원회가 경매에 부친 1.8GHz대역 20MHz 폭은 9,950억 원에 SK텔레콤에 낙찰됐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주파수 사용 대가가 1조 원 가까이로 치솟은 것도 결국은 주파수 부족 때문이다.



방통위의 ‘모바일 광개토 플랜’

이처럼 이동통신 업체들이 주파수 부족으로 갈증을 겪고 있던 차에 700MHz 대역 주파수 108MHz가 여유 대역으로 나온 것이다. 이통사들로서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방통위는 주파수에 일종의 영토 개념을 도입했다. 북방 개척의 상징인 광개토대왕의 정신으로 주파수 영토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바로 ‘모바일 광개토 플랜’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으로부터 할당받아 사용 중인 주파수 총량은 모두 270MHz폭이다.

모바일 광개토 플랜은 지금보다 2배 이상의 주파수를 확보한다는 것이 기본 목표다. 올해 50MHz를 새로 할당하거나 경매를 통해 배분하고, 내년에는 디지털TV 전환에 따른 여유 대역 108MHz 폭에 2.1기가헤르츠 대역 60MHz 폭을 추가로 공급한다. 또 2015년까지 2.6GHz 대역 140MHz와 3.5GHz 대역 160MHz 폭 등 300MHz 폭을, 2020년에는 3~5GHz 대역에서 200MHz 폭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것이 모바일 광개토 플랜의 골자다.

앞서 방통위는 2008년 말 수립한 디지털TV 채널배치 계획에서 470~698MHz 대역을 디지털TV 대역으로 확정하고, 나머지 698~806MHz 대역을 여유 대역으로 결정했다. 이 여유 대역이 대부분 700MHz 대역에 속해 있으므로 통상 유휴 대역을 700MHz 대역으로 부른다. 이 대역 108MHz 폭이 바로 방송계와 통신업계가 탐내는 주파수다.

미국 등 해외에서 디지털TV 전환에 따른 유휴 대역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보면 다소 참고가 될 것 같다. 해외에서는 대체적으로 통신용으로 재배치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방송계로서는 불리한 소식이다. 2009년 6월 디지털 전환을 완료한 미국에서는 연방통신위원회(FCC)가 경매를 통해 700MHz 유휴 대역을 공공안전과 이동통신용으로 할당했다. 통신업체인 버라이존과 AT&T가 일부를 나눠 가졌다. 앞서 일부는 공공안전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일본도 지난 7월 24일 아시아 최초로 지상파 방송의 아날로그 신호 송출을 중단하고 디지털로 전환했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유휴 대역인 700MHz 대역을 교통, 재난, 통신 등의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자동차 간 통신을 가능케 하는 도로교통 시스템과 긴급 재난 시 사고 현장을 음성이나 영상으로 전송하는 방재 목적으로 사용한다는것이다.

또 독일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도 유휴 대역인 800MHz 대역을 4세대 이동통신인 롱텀에볼루션(LTE) 대역으로 할당하는 방안을 추진하고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표준화 기구도 700MHz 대역을 이동통신 공동 대역으로 표준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방송업계 “최소 54MHz 폭 달라”

그동안 한국방송협회 등 방송 관련 단체들은 각종세미나와 토론회에서 “700MHz 대역을 우리가 써야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방송협회는 방송사 기술본부장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지난 9월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차세대 방송 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주파수 활용방안’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공익적 차원의 주파수 정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하며 ‘700MHz 대역 사수’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들은 방통위가 통신업체들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주파수 정책을 중지하고 보편적 서비스를 위한 주파수 활용 방안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회는 연구 보고서에서 지상파 방송 송·수신 환경 측면에서 차세대 방송 서비스를 위한 주파수 대역은 디지털 방송과 인접한 700MHz 대역이라며 유휴대역의 절반 수준인 54MHz 폭을 방송용으로 할당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손계성 방송협회 정책실장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앞두고 차세대 고선명(UHD) 방송을 위해서는 반드시 방송용 주파수가추가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미디어연구소의 정미정 연구팀장은 ‘700MHz대역의 공익적 활용에 대한 필요성’이라는 연구 보고서에서 “디지털 전환이 완료된 후 그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면서 실제 남는 것으로 확인된 ‘여유’ 주파수를 매각해도 늦지 않다”며 조기에 통신용으로 할당하려는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정 팀장은 “지상파는 제한된 전파를 사용하여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국민 대다수에게 보편적인 방송 시청권을 보장할 수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700MHz 대역을 지역방송을 포함하는 지상파 방송의 차세대 방송 영역에 할당하는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통신학회가 지난 6월 개최한 ‘4세대 주파수 정책 심포지엄’에서 박상호 방송협회 연구위원은 “방송은 4세대인 ‘실감방송’을 준비해야 한다”며 "700MHz 대역을 방송에 할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파수의 효율성과 공익성을 고려해 저소득층과 노인 등 취약계층의 정보 접근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상파 방송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방송계의 주장을 종합하면 700MHz 대역 유휴 대역 108MHz 폭 중에서 최소 54MHz 폭을 방송용으로 배정해 달라는 주장이다. 그 이유로 ▲디지털TV 난시청 해소 ▲차세대 방송(3D TV, UHD TV 등) 도입 ▲차세대 방송 개발을 위한 실험용 주파수 확보 등을 꼽고 있다.

그 외에도 디지털 전환 이후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난시청 해소를 위해 추가적인 주파수가 필요하다는 것도 방송계의 주장이다.


통신업계 “유휴 대역 모두 달라”

통신업계는 700MHz 대역 108MHz 폭을 모두 달라는입장이다. 가장 큰 이유로 모바일 트래픽 급증에 따른 주파수 부족을 꼽는다. 2015년까지 이동통신용 주파수는 240~410MHz 폭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700MHz 대역 전체를 이동통신용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주파인 700MHz 대역은 전파 특성이 우수해 투자비가 적게 든다는 점도 통신업계에는 큰 매력이다. 이들은 또 세계적으로 디지털TV 전환에 따른 유휴 대역을 이동통신용으로 활용하는 추세도 앞세우고 있다.

지난 6월 한국통신학회가 건국대에서 개최한 ‘4세대 주파수 정책 심포지엄’에서 통신 분야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동통신용 주파수 부족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700MHz 대역의 이동통신용 할당을 주장했다.

윤헌구 명지전문대 교수는 “2020년까지 필요한 이동통신용 주파수는 631~789MHz 폭, 또는580~810MHz 폭에 이른다”면서 “올해 7월 기준으로 국내 이동통신 3사가 보유한 주파수는 190MHz 폭에 그친다”며 주파수 부족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여재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전파정책연구 그룹장은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TV(DTV) 유휴대역이 4세대 이동통신인 롱텀에볼루션(LTE)의 핵심대역이 될 것이라며 ‘700MHz 대역의 이동통신 할당’주장에 힘을 실었다.

장재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선임연구원은 700MHz 대역 주파수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한 결과방송보다 통신에 사용할 때 더 큰 경제적 효과가 나타났다며 주파수의 ‘경제적 가치’에 방점을 뒀다. 장연구원은 700MHz 대역을 방송용으로 사용했을 경우 얻게 되는 MHz당 연평균 부가가치액이 51억 원인 반면 통신용으로 사용할 때는 738억 원의 부가가치가 생성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설명했다. 또 아·태지역에서 디지털 방송 유휴 대역을 통신에 사용했다고 가정했을 때 2020년까지 나타나는 국내총생산(GDP) 증대 효과는 6,580억 달러, 방송에 사용했을 경우의 GDP 효과는 710억 달러인 것으로 계산됐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이동통신용 주파수 부족은 이웃 나라와 비교할 때도 심각한 상황이다. 한·중·일 이동통신 표준협회의 자료를 보면 한국의이동통신 주파수 사용량은 320MHz 폭으로 일본 435.9MHz 폭, 호주 360MHz 폭, 중국 375MHz 폭, 베트남 370.6MHz 폭에 비해 적은 편이다. 아·태지역 국가 평균 383.5MHz 폭에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적은 주파수 사용량에도 불구하고 SK텔레콤과 KT의 모바일 트래픽 증가율은 지난해 말까지 각각 232%, 344%에 달해 같은 기간 중국 차이나텔레콤 112%, 일본 NTT도코모 70%에 비해 월등히 높다.

올 연말 이동통신망 용량이 한계에 도달해 트래픽이 밀집된 일부 지역에서는 출퇴근 시간대에 서비스 품질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강충구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는 지난 4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열린 ‘이동통신주파수 정책 토론회’에서 “현재의 트래픽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2015년에는 최소 240MHz가 늘어난 450MHz 폭의 주파수가 필요하고, 2020년에는 390MHz 늘어난 600MHz 폭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방통위, 의견 수렴 본격 나서

방송계와 통신업계 간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도 본격적인 의견 수렴에 나섰다.방통위는 지난 10월 20일 지상파 700MHz 대역 이용 계획과 관련해 방송사와 통신사 등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열어 양측의 의견을 들었다. 방통위는 회의 참여 요청 공문에서 “700MHz 대역에 대한 수요를 제기하고자 하는 기관에서는 관련 자료를 발표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아직까지 700MHz 대역에 대한 할당과 관련해 아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오직 중장기 주파수 계획인 모바일 광개토 플랜만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방송계와 통신업계 간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며 공방이 이어짐에 따라 섣불리 결론을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형국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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